소방관들의 47년 숙원 풀었다
소방관들의 47년 숙원 풀었다
  • 박상철
  • 승인 2019.11.20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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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제게 주소서.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 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1950년대 말 미국 소방관 앨빈 윌리엄이 쓴 이 시는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 방영된 후 널리 알려졌다. 우리나라 소방서에도 비치돼 있는 이 시는 일종의 소방관 복무 신조이기도 하다.

직업 만족도 최하위, 임용 5년 내 20%의 이직률, 평균 수명 58세. 인정하기 싫지만 앞서 나열한 것들은 대한민국 소방관들을 설명하는 통계들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소방관의 삶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고달프다.

11월 9일이 ‘소방의 날’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국민은 몇 명이나 될까? 이 글을 쓰는 기자 역시도 그날이 소방인 날인지도 모르고 살아왔다. 그러다 올해 소방의 날이 10일 지난 11월 19일, 희소식이 들려왔다. 전국 모든 소방관들이 숙원인 ‘국가적 전환’이 법안발의가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소방공무원의 신분은 1973년 2월 8일 지방소방공무원법이 제정된 뒤 지금껏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나뉘어 있었다. 올해 6월 말 현재 전국 소방공무원은 5만4875명인데 국가직은 대부분 중앙 행정직으로 687명(1.3%)에 불과하고 나머지 5만4188명(98.7%)은 지방직이다.

수치서도 볼 수 있듯이 절대 다수 소방공무원들이 지방직인 것이다.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형편에 따라 소방인력·장비 충원에 격차가 생기는 고질적인 문제로 대두됐다.

실제로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소방인력 부족률은 25.4%이나 서울은 9.8%, 전남은 39.9% 등으로 지역 간 차이가 심하다. 소방관 1인당 담당 면적도 전국 평균은 1.94㎢이지만 서울은 0.09㎢인데 비해 강원은 5.22㎢에 이른다.

소방관 국가직화는 2014년 소방관들이 불이 난 현장에서 쓰는 장갑을 자비로 구입한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지면서 여론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올해 4월 강원도 대형 산불로 대형 재난 발생 시 소방관들이 유기적인 협조가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되면서 소방관 국가직화에 더욱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국민들도 소방관 국가직화에 공감했다. 최근 리얼미터가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 10명 중 8명이 지방직 공무원 신분인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하는 데 찬성하는 것(찬성 78.7%, 반대 15.6%)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전환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된 지 사흘 만에 20만 명의 동의를 얻은 바 있다.

이번 소방관 국가직화는 소방관들의 눈물을 조금이나마 닦아줄 수 있는 첫 단추를 꿴 것에 불과하다. 시작은 늦었지만 앞으로 방향이 더 중요하다. 이를 통해 소방관 처우 개선 뿐 아니라 인력·장비 등의 지역 간 격차를 줄여 보다 균등한 소방안전 서비스가 더욱 확대돼야 한다.

최근 독도 소방헬기 추락사고로 숨진 동료 시신 앞에서 오열하는 소방관들이 사진이 공개돼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우리는 언제까지 소방관들에게 희생과 의무만을 강요할 것인가. 소방관을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의 건강과 안전도 보장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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