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피부도 소중합니다 – 직업성 피부질환의 관리
노동자의 피부도 소중합니다 – 직업성 피부질환의 관리
  • 류현철 부센터장
  • 승인 2019.12.0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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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일환경건강센터 부센터장

 

구리빛 피부, 투박하고 거친 손마디는 강인한 노동자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 뿐이랴, 어릴 적 학교 건물에 도색을 마치고 알록달록 각색의 얼룩이 튄 멜빵바지를 걸친 도장공들이 손과 팔에 묻은 페인트를 야릇한 향이 나는 신나(thinner 희석제)를 들이부어 거침없이 씻어내는 광경은 묘한 경외감을 느끼게도 했다.

이제 직업환경의학을 하는 의사로서는 노동자들의 거친 피부는 일터에서 노출되는 온갖 유기용제로 인한 직업성 질환의 전조일 수도 있음을 안다. 신나라고 불리던 희석제에 그 시절에는 벤젠(대표적 발암물질)의 함유량이 얼마나 높았을지도 안다. 그렇게 거침없던 도장공들 상당수는 건조하고 갈라지는 피부 때문에 늘상 괴로웠을 것이다. 혹여 호흡기와 피부로 흡수된 벤젠으로 인해 백혈병에 걸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상상도 한다.

 

피부질환은 노동자들의 매우 흔한 직업성 질환이면서도 간과되고 있는 질환이다. 직업성 질환 중에서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60%까지 차지한다는 보고도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산업재해 통계를 보면 직업성 피부질환은 2016년 전체 업무상 질병 7,068건 중 15(0.21%), 2017년에 는 8,190건의 업무상 질병 중 직업성 피부질환은 15(0.18%)에 불과하다. 이렇게 과소평가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피부질환의 증상이 대체로 국소적으로 나타나고 업무 수행이 가능하며 복잡한 산재절차에 비해서 승인되어 얻는 이익이 높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유해물질을 다루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특수건강진단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피부징후에 대해서 직업적 노출을 확인하여 직업병 의심사례를 면밀히 찾고 사후관리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그러나 직업성 피부질환은 가벼운 증상부터 심한 불편감과 때로는 현저한 삶의 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는 만성 증상,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중증 질환과 피부암까지 범위가 넓다.

 

직업성 피부질환을 유발하는 유해요인은 자극물질, 알레르기 유발물질, 물리적 요인, 생물학적 요인으로 구분된다. 자극물질은 살과 알칼리, 유기용제, 비누와 세제, 소독제 및 살균제, 니켈·크롬·코발트와 같은 금속염 등이다. 이들은 피부의 자극을 통해서 자극성 피부염을 일으키며 노출량에 따라 거의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서 발생할 수 있으며 심한 경우에는 화학적 화상을 유발할 수 있다. 알레르기 유발물질은 감작물질이라고도 하며 니켈·크롬·코발트와 같은 금속염, 고무첨가제, 접착제와 수지, 산업용 효소, 살균제, 화장품 첨가제, 의약물, 식물 등이 있다. 이 물질들은 감수성이 있는 노동자들에게 알레르기성 접촉피부염을 유발하게 된다. 그 외에도 고온으로 인한 화상, 땀띠, 무좀 등 진균 감염, 자외선 노출에 의한 피부염, 페놀류·하이드로퀴논류·타르에 노출되어 피부에 탈색반이 생기는 백반증 역시 직업성 피부질환에 포함된다. 검댕이나 콜타르, 비소, 방사선에 노출되는 경우 피부암이 발생하기도 한다.

 

직업성 피부질환을 관리하고 노동자들의 피부를 소중하게 여기기 위해서는 첫째로, 원인이 되는 물질을 확인하여 노출을 중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작업현장에서 쓰이는 화학물질은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거의 대부분 피부에 자극성을 가진다. 피부표면의 지질피부 자극성이 높거나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물질들에 대해서는 가급적 대체 물질을 사용하거나 밀폐 차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알레르기 유발물질의 경우에는 소량의 노출로도 증상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감수성이 있는 노동자들이 보호구만으로 잘 보호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학적 대책이나 교체가 어려운 경우에는 증상이 심한 노동자들은 업무 전환을 고려해야한다. 업무 전환을 위해서도 먼저 원인이 되는 물질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단을 위해서는 다양한 검사방법이 있으나 확진을 위해서는 의심되는 물질을 이용한 첩포검사가 필요할 수 있으므로 병원 진료 시에 취급물질 시료를 가지고 가는 것이 좋다.

 

둘째, 보호구를 잘 착용해야 한다. 피부는 호흡기와 더불어서 유해 화학물질의 인체 흡수의 가장 중요한 경로이다. 노출된 피부에 대해 적정한 보호구를 잘 착용하는 것은 직업적 노출에 의한 피부질환 만이 아니라 다양한 화학물질 노출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에도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된다. 단순하게 노출된 피부에 직접 접촉 되는 것만을 차단해도 높은 효과를 볼 수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때로는 부적절한 보호구를 사용하여 오히려 노출 수준을 높이거나 증상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현장에서 유기용제 작업을 하면서 손바닥 면만 코팅된 목장갑을 사용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유기용제가 목장갑에 적셔진 채로 지속적인 노출이 발생하여 피부질환이나 인체 내 흡수 높아지게 된다. 따라서 노출되는 물질의 특성에 따라서 보호구의 재질이나 교체 시기를 잘 선택해야 한다.

 

셋째, 건강진단 관리도 중요하다. 특수건강진단 문진 시 의외로 많은 노동자들이 피부증상을 호소한다. 증상을 호소하지 않더라도 노출된 피부에 확인되는 피부병변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수건강진단 대상이 되는 인자들 중 상당수가 피부를 표적 장기로 하고 있으며 임상검사보다는 철저한 문진과 시진이 중요하다. 증상을 호소하거나 피부 병변이 확인되는 경우에는 취급물질이나 작업방법 증상 양상 등을 꼼꼼히 확인하도록 해야 한다. 다수의 증상자가 발생하는 경우는 수시건강진단을 고려해야 한다. 수시건강진단은 사업주가 특수건강진단 대상업무에 종사 또는 법정유해인자에 노출되는 근로자중 직업성 천식, 직업성 피부질환 또는 해당 유해인자에 의한 기타 건강장해의 증상을 호소하거나 소견을 보이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제도이다. 증상이나 소견을 보이는 노동자가 직접 요청하거나, 노동자대표 또는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 요청하는 경우, 산업보건의, 보건관리자, 보건관리위탁기관이 건의하는 경우에 실시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직업성 질환 예방에 있어서 작업환경관리 및 작업관리는 필수이다. 원인 물질에 대해서 각종 환기장치나 설치하고 보호구를 착용하도록 하는 조치를 잘 취하는 것만큼이나 일반적인 작업환경 관리를 잘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물에 젖거나 땀에 젖은 상태에서 장시간 업무를 지속하는 경우나 반복적으로 손을 씻어야 하는 업무는 잘 살펴야 한다. 전자의 경우 피부감염의 위험이 높아지고 후자의 경우에는 각질층의 탈락과 건조, 피부균열 등으로 피부의 방호 능력이 감소할 수 있다. 방수나 배수 조치, 작업화나 피복의 교체, 적정한 휴게 시간 배치, 저자극성 세정제 및 보습제의 비치 등을 고려한다. 전신 노출의 가능성이 있는 곳에서는 반드시 전신을 샤워하거나 세척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 피부 흡수로 인한 급성 중독의 위험을 낮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옥외 작업자의 경우에는 자외선의 노출을 방지하기 위한 적정한 휴식시간과 그늘막 제공, 필요시에는 자외선 차단제의 공급 등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식당, 단체 급식실, 기타 위생 상의 이유로 자외선 살균장비를 이용하는 작업장에서는 반드시 장비의 정상작동 유무를 정기적으로 확인하여 자외선 노출로 인한 피부질환을 예방하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피부도 소중하니까.

 

일환경건강센터는 안전/보건/환경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SK하이닉스의 민간지원으로 설립한 비영리법인인 ()숲과나눔이 지역사회의 일터를 보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설립한 센터입니다.

청주지역을 중심으로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 특수고용 노동자들뿐 아니라 자영업자, 사업주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일터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직업보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배달대행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이동 노동자들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에게 휴게공간과 더불어 건강상담, 근골격계질환 관리, 심리상담, 직업병 및 산재 상담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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