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돈 교수의 치유의 인문학] 이만하면 됐지, 뭘 더 바라겠는가
[권희돈 교수의 치유의 인문학] 이만하면 됐지, 뭘 더 바라겠는가
  • 권희돈 교수
  • 승인 2020.01.17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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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의 주가가 한창이다.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접수하고, 엘에이 아카데미 골든글러브상 후보에 올라 있다. 한국영화 100년이 되는 해 이룬 쾌거이다. 이 영화에는 수석, , 냄새, 그림, 선 등 상징장치가 도처에 배치되어 있어, 관객의 수만큼 다른 해석이 가능한 영화이다. 그 중 첫 장면에 나오는 수석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물로 작용한다. 거친 자연물에 지나지 않는 돌이지만 인간에 의해 깎이고 다음어지면서 부와 재물을 가져다주는 욕망으로 변한다.

 

욕망의 부풀림은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영화의 인물들이 암시하듯 황금을 숭배의 가치로 여기며 사는 한, 언덕 위에 사는 가족이나 반지하에 사는 가족이나 지하실 밑바닥에 사는 가족이나 모두가 타자를 숙주로 하여 사는 기생충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이쯤에서 욕망을 멈추고 옆도 보고 뒤도 보면서 여유롭게 사는 지혜를 얻었으면 좋겠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너무나도 최고가 되기 위해 오르고 또 올랐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다.

 

충청도 시골의 한 가정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그 집 큰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소읍의 아주 작은 회사에 취직시험을 치렀다. 합격통지서를 받고 가족 모두가 기뻐하였으나, 정작 당사자인 아들은 내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겠다는 말만 던지고 나가버렸다. 저녁에 들어온 아들에게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한 말씀 건넸다. "큰애야, 작은 회사라도 괜찮아. 돈 더 많이 받는 회사에 다녀봐야 몸만 더 고되지 뭐 나을 게 있어. 지금 그 회사는 집에서 다닐 수 있고 가족과 같이 살 수 있잖여. 그러니 큰애야, 너무 욕심 부리지 말어. 너 먹을 것만 벌면 되는겨. 그러닝께 그 회사 그냥 다녀." 곰곰이 생각한 끝에 아들은 어머니의 말씀을 따르기로 하였다.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늘 가슴에 온기로 남아 있다.

 

얼마 전 대학의 아는 교수가 시집 한 권을 보내왔다. 현대소설을 전공한 분인데 시집을 보내와서 깜짝 놀랐다. 시집 첫 장의 자서自序보고서는 더욱 놀랐다. 내가 화두로 삼고 있는 내용과 똑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학기를 끝으로 정년, 환승역에서 새로운 행로로 갈아타기 전에 짐을 부리지 못하면, 무거운 짐을 끝까지 지고 가야 할 것 같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내려놓기로 했다. 마음에 들고 그렇지 않고는 다음 문제이다. 이론공부가 지쳐갈 무렵 선물처럼 다가온 시가 있어 행복했다.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김진석, 첫시집 외등자서 부분) 그분의 시적 성장도 기대되지만 새로 시작되는 노년의 삶은 타는 노을처럼 아름다울 것 같아 더욱 기대된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이 없건마는/사람이 제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양사언, 태산이 높다하되) 정상에는 못 올라갔지만 올라간 것만큼은 인정하였으면 한다. 꼭 정상에 올라야만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헐레벌떡 정상에 오른 사람보다 가는 곳까지 순간순간 행복하게 간 사람이 산을 즐기는 사람이다. 성공한 인생보다 행복한 인생이 아름답지 아니한가.

 

 

시지프스는 땀 뻘뻘 흘리며 올림프스 산에 바윗덩어리를 굴러 올린다. 어느 정도 올리면 바윗덩어리는 들판으로 떼글떼굴 굴러떨어진다. 시지프스는 들판 한가운데로 가서 다시 바윗덩어리를 굴러올린다. 그는 결국 자신이 끝내 바위덩어리를 올림프스 산 정상에 올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바윗덩어리가 들판 한가운데로 굴러가는 모습을 흐믓하게 바라본다. 다시 들판 한가운데로 가서 바윗덩어리를 다시 굴러올리기 시작한다. 그는 평생 무거운 바윗덩어리를 굴러올린다. (알베르 까뮈, 시지프스의 신화)

 

이 신화는 숨겨진 의미의 공간이 커서 다채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무거운 짐을 벗어버릴 수 있는 게 인간이다. 아니다 인간은 결코 무거운 짐을 벗어버릴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 스스로 자신을 과대평가하기보다는 자신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태도를 가질 때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이쯤에서 욕망을 거두고 운명을 받아들여라. 이만큼 올라왔으면 됐지 뭘 더 바래.

 

밥을 먹을 때나, 배우자를 찾을 때나, 공부할 때나, 직업을 고를 때나, 무슨 일을 하든, 2의 인생을 살아갈 때에도 어느 지점에서 자신의 한계를 솔직하게 바라보고 이만하면 됐지, 뭘 더 바라겠는가? 이렇게 받아들이면 마음이 가벼워질 것이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은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알고 넘치는 욕심을 내지 않으며, 자신이 처한 처지를 파악하여 만족하며 살아가는 현명한 삶이다. 집중하되 집착하지 않고 이만하면 됐지, 뭘 더 바라겠는가?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면 삶에 막힘이 없고 가볍고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권희돈 교수는 청주대 명예교수, 문학테라피스트. 대학에서 은퇴하기 전에는 교사로 교수로 초등학생·중학생·고등학생·대학생을 차례로 가르쳐 왔다. 대학에서 은퇴한 후에는 문학테라피스트로 마음이 아픈 이들과 인문학을 통해서 치유하고 소통한다. 이들이 상처를 훌훌 털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낼 때마다, 보람찬 노년을 보내고 있다는 긍지를 갖는다고 한다. 이에 관한 그의 저술 『사람을 배우다』는 장안의 화제작으로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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