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무 많이 일한다
우리는 너무 많이 일한다
  • 류현철 부센터장
  • 승인 2020.01.1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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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일환경건강센터 부센터장

 

겨울 아침 출근길 고속도로, 달리는 와중에 왼쪽 1차선에서 조금 앞서 달리던 차 한 대가 움찔하고 차선을 침범했다가 다시 돌아간다. 위험하다. 블랙 아이스로 차량이 연쇄 충돌해서 여러 명이 죽고 수십 명이 다쳤다는 뉴스 보도도 엊그제가 아니었던가. 저런 차들은 멀찌감치 떨어져서 운전하는 것이 상책이다. 속도를 줄여 차 간격을 띄울까 얼른 추월할까, 잠깐 고민한다. 하지만 위험하게 움찔하던 차량 운전자의 행동에 필자는 한참을 뒤에서 그 차를 따라갈 수 밖에 없었다. 앞차의 뒷유리를 통해서 보이는 운전석에서는 연신 오른팔과 손이 짧은 간격을 두고 세차게 우에서 좌로 휘둘러졌다. 그리고 잠깐이 지나면 다시 똑같은 행동이 반복되었다. ! 그는 자신의 뺨을 스스로 세차게 걷어붙이고 있었다. 혼자 운전하고 있던 그는 도로 위에서 쏟아지는 졸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리라. 그 서글픈 손 채찍의 속도나 매서움으로 보아 확신할 수 없지만 아마도 삼사십대 남성이었을 듯하다.

 

그의 어젯밤 수면을 앗아간 것은 누구일까? 혹은 무엇 때문일까? 짐작할 수는 없지만 위태로운 사투를 벌이는 그를 앞질러갈 수 없었다. 다시 차가 움찔거리면 빵빵 경적이라도 울려 잠시나마 잠을 깨우고 경고해 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조심스레 한 차선 옆 뒤에서 차를 따르면서 몇 번이나 그 운전자의 자신을 향한 따귀질을 보았다. 스스로 뺨을 후려쳐가며 졸음을 쫓은 탓인지 차는 다시 차선을 침범하지는 않았다. 멀리서 휴게소 간판이 보일 즈음 그 차량은 바깥 차선으로 차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그는 휴게소를 들를 것이다. 차선을 몇 차례 옮겨 제일 바깥쪽 차선에서 서서히 속도를 줄여가고 있었고, 필자도 뒤를 따르며 그가 잠시간의 휴식을 취하고 얼얼해졌을 뺨도 어루만져 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휴게소 입구에서 잠시 우측으로 주춤하던 그 차는 갑자기 맹렬한 속도를 내면서 앞으로 향해 내달렸고, 내 마음의 우려도 내 차도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 위태로웠던 행로는 출근길이었을지 퇴근길이었을지 알 길이 없다. 졸음의 원인이, 그리고 결국 휴게소를 들릴 여유조차 갖지 못했던 이유가 일 때문이었을지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필자는 위험을 안고 멀어져가는 차를 보면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안으로 올라오는 과로사(뇌심혈관질환 산재)와 과로자살 사례들에 등장하는 노동자들의 애닯고 먹먹한 이야기들을 떠올린다. 23일간 퇴근하지 못하는 게임업체 노동자들, 60시간을 훌쩍 넘어가는 노동을 수행하는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 출퇴근의 개념도 없이 수시로 전국을 뛰어다니는 영업마케팅 부서 노동자들, 24시간 격일제 근무로 온종일 아파트의 허드렛일을 하고 밤새 좁은 경비실에서 자다깨다 반쪽잠을 자는 경비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건조한 활자로 전해져도 숨이 막힌다. 그렇게 일하다가 심근경색으로 뇌출혈로 쓰러지는 노동자들, 그들이 쓰러지기 전의 퇴근길이 출근길이 그렇지 않았을까?

 

우리는 너무 많이 일한다. 너무 오래 일한다. 2018OECD 통계에 따르면 독일의 연간 노동시간은 1,392시간, 프랑스는 1,520시간이며 우리나라는 1,993시간이다. OECD 국가 중에서는 멕시코 다음으로 노동시간이 길다. 그나마 2,000시간 아래로 떨어진 것도 2018년의 일이며, 2017년에는 2,018시간을 일했다. 40시간으로 환산하면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독일 노동자들에 비해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무려 15주를 더 일한다. 비록 실제 그렇게 되지도 못했고, 정치적 공간에서만 떠돌았지만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이 호소력을 가직 매력적인 슬로건이 되었던 것은 장시간 노동으로 지친 일상은 모든 국민들의 문제였던 탓이다. 하지만 정치적 프로파간다, 꼭 거기까지였다 나라를 나라답게만들고 노동존중 사회실현을 목표로 한다는 현 정부는 공약을 통해서 임기 내 1,800시간대의 노동시간을 실현하겠다고 했다. 연장근로(휴일일 포함)를 포함하여 법정근로시간 주52시간 상한제를 전면이행하고 중소영세 기업 및 노동자에 대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도 했다.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을 위한 칼퇴근법을 도입하기로도 했다. 그러나 이것도 그야말로 공약(空約)이 되어가는 듯 하다.

 

근로기준법상 엄연히 주 40시간 노동을 정하고 있음에도 현실을 고려하여 주 52시간제를 전면 시행한다고 했다. 엄연히 법률이 만들어졌고 시행시기를 정해두고 있지만, 행정부인 고용노동부에서 법 집행을 유예하고 미루고 있는 형국이다. 더구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확대되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서 얻고자 했던 노동자들의 건강이나 일자리 나눔의 의미는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

 

인구집단의 통계에 기반하는 역학적 연구에서 노동시간이 길어지면 사망에도 이를 수 있는 심혈관질환, 뇌혈관 질환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그러한 연구를 기반으로 해서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뇌혈관, 심혈관 질병이 발생한 노동자들에 대해서 기준을 정해서 산재라고 인정하고 있다. 과로로 인정되는 기준이라 볼 수 있는 산재 인정기준은 발병 전 12주 간 주당 업무시간이 60시간을 초과하거나 4주간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이다. 발병 1주간 평균 업무시간이나 업무량이 그전 11주의 평균보다 30% 증가했다면 역시 산재로 인정하고 있다. 업무시간이 기준에 미치지 못해도 일정 예측이 어렵거나 교대근무나 육체적 강도가 높거나 작업환경의 유해성 등을 고려해서 인정하고 있다.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이 6개월로 늘어나면 12(3개월)는 주당 40시간을 일하고 나머지 12주는 64시간 근무하는 노동시간 편성이 합법적으로 가능하다. 40시간 근무에 비해 주 64시간 근무는 당연히 30%이상의 업무량이 증가한 것이다. 사업주가 합법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산재 인정기준을 초과하는 일을 시킬 수 있는 것이다. 2018년 우리나라에서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는 2,142명이었고 그중 질병 사망자수가 1,171명이었다. 그 중 과로 사망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뇌심혈관질환 사망자가 457명이었다. 매일 1명이 넘는 노동자가 과로와 관련하여 사망한다고도 볼 수 있다. 사망을 포함하여 뇌심혈관계 질병으로 산재승인을 받은 전체 인원은 20181,153(전체질병재해 11,473명 중 10%)이었다. 매일 3명의 노동자가 과로나 스트레스로 쓰러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어떤 정치지도자는 주 52시간 노동제가 과도하고 주장한다. “젊은 사람들 애 키우고 돈 쓸 데 많으니 일 더해야 하는데 막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 과로로 쓰러져가는데 최저임금 높이는 것은 안 되고 일을 더 시켜야 한다는 이야기에 의사로서 직업환경의학을 전공하는 이로서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이미 우리는 너무 많이 일하고 있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노동자를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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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환경건강센터는 안전/보건/환경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SK하이닉스의 민간지원으로 설립한 비영리법인인 ()숲과나눔이 지역사회의 일터를 보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설립한 센터입니다.

청주지역을 중심으로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 특수고용 노동자들뿐 아니라 자영업자, 사업주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일터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직업보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배달대행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이동 노동자들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에게 휴게공간과 더불어 건강상담, 근골격계질환 관리, 심리상담, 직업병 및 산재 상담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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