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의 눈물
프리랜서의 눈물
  • 박상철
  • 승인 2020.02.14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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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4관왕을 석권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연일 화제를 낳고 있다. 그중 작품 뿐 아니라 외적인 면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이 있는데, 바로 영화 제작 과정에 관한 것이다.

기생충은 제작 당시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해 화제가 됐다. 영화계 ‘표준근로계약서’는 스태프의 장시간 노동과 임금 체불 등 부당한 처우를 방지하기 위해 임금액 및 지급 방법, 근로시간, 4대 보험, 시간외수당 등을 약정하고 있다. 표준근로계약서의 작성과 준수만으로도 그간 영화업계에 만연했던 임금 체불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부당함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봉준호 감독과 제작사의 배려는 이뿐만이 아니다.

배우 송강호씨는 한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밥 때를 너무 잘 지킨다. 식사 시간, 정확한 시간, 저희들이 굉장히 행복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시는 분이다.” 밥 때를 잘 지키는 봉준호 감독과 제작사가 배우, 스태프들의 노동시간을 어떻게 준수했을지, 얼마나 인간적으로 대했을지 미루어 짐작이 되는 대목이다.

결국 노동자들의 희생이 아닌 정당한 대우를 제공하고 그들의 권익을 지켜준 봉준호 감독과 제작사의 배려가 이번 아카데미 4관왕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영화 기생충의 기쁜 소식에 앞서 지역에서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지난 2월 4일 청주방송에서 14년간 몸담았던 이재학(38) PD가 목숨을 끊은 것. 자신과 동료들의 인건비 인상을 요구했다가 2018년 4월 해고당한 뒤 복직을 요구하는 1심 소송에서 패한 뒤 2주 만에 세상을 떠났다. 프리랜서 PD였던 그는 정규직 직원보다 더(?) 정규직처럼 일했다.

과도한 업무량으로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근로계약서조차 쓰지 못했다. 2017년부터 2018년 매주 목요일 1시간 방영되는 ‘아름다운 충북’의 책임 PD였던 그가 받은 돈은 160만원. 이마저도 월급이 아닌 제작비에 포함돼 있었다.

비정규직이나 취약한 환경에 놓인 방송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진 지역 방송의 노동 환경 문제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방송 스태프들의 노동 환경이 열악하다는 점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9년 방송제작 노동 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표준계약서를 작성한 방송 노동자 비율은 10명 중 4명이 채 되지 못했다. 계약서가 없다는 건 노동자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설사 표준계약서를 작성하더라도 방송국이나 제작사의 이해관계에 맞춰 임의대로 수정하거나 계약내용 위반, 노동착취는 흔히 있는 일이다. 이처럼 최소한의 권리는커녕 관행이라는 이유로 노동 사각지대로 몰리는 노동자가 우리 가족, 또는 친구일 수도 있다.

고 이재학 PD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다. ‘오늘은 회사 소속 노동자, 내일은 회사 소속 노동자가 아닌’ 호떡 뒤집듯 방송사 입맛에 맞게 바뀌는 프리랜서 방송인들의 현실이 바뀌지 않는 이상 제2의 이재학 PD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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