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사진(寫眞)은 진실을 베끼는 것인가?
[포토에세이] 사진(寫眞)은 진실을 베끼는 것인가?
  • 문상욱교수
  • 승인 2020.03.03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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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寫眞)을 한자식으로 풀이하면 베낄 으로 진실을 베낀다.”는 뜻인데 사진을 寫眞이라는 용어로 쓰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 유일하다. 중국은 빛의 조각이라는 뜻으로 照片 또는 그림자를 취한다는 뜻으로 撮影이고 쓴다. 사진의 영문 표기 photography는 그리스어의 이라는 “phos”그린다“graphos”의 합성어이다. 프랑스는 photographie 독일은 fotografie 이탈리아는 fotografia로 사용하여 모두 빛으로 그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19세기 사진발명 초기에는 초상사진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가족이나 인물의 초상화를 그려서 집안에 걸어 두려면 미술가에게 많은 경비를 지출해야 했기 때문에 일반인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러나 사진이 발명되면서 저렴한 비용으로 그림보다 더 실재와 똑같은 초상사진을 얻을 수 있으므로 인기는 대단하였다. 나폴레옹도 전쟁에 나가면서 사진관에 들러서 사진을 찍고 갈 정도였다. 사진은 찍히는 순간의 모습을 영원히 간직시켜 주기 때문에 가족사진을 찍어 두면 가족이 없는 상태에서도 그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게 해 준다. 당시 사진은 찍히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를 재현시켜 주기 때문에 진실이라고 믿었다.

 

나다르(프랑스, 1820 ~1910)파리에 최초로 초상 사진관을 열어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나다르(프랑스, 1820 ~1910)파리에 최초로 초상 사진관을 열어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필름, 인화지, 카메라 등 사진 재료와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진가들은 미술작품처럼 풍경사진, 정물사진, 누드사진 등을 촬영하면서 예술가로 인정을 받고 싶어 하였다. 사진가들은 화가의 작품처럼 만들기 위해 콜라주, 합성, 변형 등을 통하여 회화와 비슷한 사진을 탄생시키면서 사진이 진실이 이라는 개념을 무너뜨렸다. 당시 회화를 모방한 사진만이 예술로서 인정을 받았다.

 

1857 레일렌더 (영) “인생의 두 갈래 길”인물을 각각 촬영하여 30여장의 사진을 합성하여 만든 회화주의 작품으로 도덕적 사람과 타락한 사람을 표현하였다. 이 작품을  빅토리아 여왕이 구입해 유명해졌다.
1857 레일렌더 (영) “인생의 두 갈래 길”인물을 각각 촬영하여 30여장의 사진을 합성하여 만든 회화주의 작품으로 도덕적 사람과 타락한 사람을 표현하였다. 이 작품을 빅토리아 여왕이 구입해 유명해졌다.

 

시대는 변하여 회화를 닮은 사진에 지루해진 20세기 초 근대 사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미국의 알프레스 스티글리츠는 사진은 촬영 당시 시간을 멈추게 하여 역사적 기록이 된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회화풍의 사진에서 벗어나 사진만이 갖는 새로운 미학을 발전시킨다. 이후 사진은 인간의 삶의 환경을 다룬 다큐멘터리, 신문, 잡지 등의 뉴스용으로 촬영한 보도사진 등은 변형하거나 합성하는 것을 철저히 배격하여 사실성, 기록성, 역사성에 바탕을 둔 사진이 주를 이룬다. 사진을 진실을 베끼는 것이라고 용어를 만든 것은 아마도 사진 초기 초상사진이나 다큐멘터리, 보도사진에 무게를 둔 것이 아닌가 싶다.

1893 알프레스 스티글리츠(미국) “종점” 마차 역에 있는 말과 마부를 사실대로를 촬영한 작품으로 회화주의 사진의 종말을 알리고 사실적 사진의 미학을 제시하였다.
1893 알프레스 스티글리츠(미국) “종점” 마차 역에 있는 말과 마부를 사실대로를 촬영한 작품으로 회화주의 사진의 종말을 알리고 사실적 사진의 미학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찍은 디지털 사진을 간단한 앱으로 이미지를 변형시키거나 조작이 간편하다. 따라서 사진이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면 조작하지 않거나 변형시키지 않은 사진은 진실인가? 변형시키지 않거나 조작을 하지 않은 사진도 진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같은 상황을 촬영해도 찍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상황인식이 다르므로 사진은 다르게 나온다. 예컨대 데모하는 사진을 신문에 실었다고 하자. 데모대가 경찰에게 맞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실었다면 경찰이 폭력으로 선량한 시민을 진압하고 있다고 할 것이고, 데모대가 경찰에게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사진은 실었다면 데모대를 폭도라고 할 것이다. 이는 데모를 바라보는 주관적 시각에 따라 다르므로 두 사진 모두 데모의 본질이 아니다. 그래서 사진은 진실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사진은 진실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있었던 것들을 재현할 뿐이다.

 

 

 

 

 

문상욱 작가 중부대 사진영상학과 대학원 졸업, 이마고사진학회 회장, 한국사진교육학회 회원, Light House 한국사진문화원 대표,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 ICA 현대미술협회 부회장, 후기에스펙트 미술협회 운영위원이며, 국제사라예보겨울축제 초청 “한국현대사진전” 감독, 한국흑백사진페스티벌 집행위원장, 충북예총 회장, 한국예총 이사, 청주문화의집 관장 등을 역임하였고, 개인전 8회와 300여회의 국내외 단체전 및 초대전을 개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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