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스트레스, 개인의 문제인가요? 조직의 문제인가요?
직무스트레스, 개인의 문제인가요? 조직의 문제인가요?
  • 성유선 일환경건강센터 심리상담사
  • 승인 2020.03.0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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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유선 일환경건강센터 직무스트레스예방실 심리상담사

“젊었던 시절 세상과 나라, 가족을 변화시키고 싶었지만 실패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변화시켰다면 그 변화로 인해 내 가족, 나라, 세상이 차례로 변화되었지 않았을까!” 어느 영국 성공회 주교 무덤의 묘비명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이 묘비명은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낸 대가로서 얻어진 지혜로, 세대를 넘어 칭송되고 있으며, 이는 상담 심리학에서 주로 말하는 주제와 얼추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삶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면 그 것은 당신의 문제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높으며, 의식 뿐만 아니라 무의식에 잠재된 무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사람에 대한 미시적 관점은 유명한 심리학 이론 중 하나이다.
 
그러나 상담사로서, 실제로 상담 장면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그러한 이론과 지혜가 얼마나 현실적일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상담을 하다 보면 개인적인 요인도 중요하나, 환경적인 요인이 바뀌지 않으면 개인이 아무리 변화한다 하여도 그 것이 안정적으로 고착되지도 않을뿐더러, 거기에서 외부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 어려운 것을 목격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상담소에는 상담을 받아야 할 사람은 정작 오지 않고, 상담을 받아야 할 사람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이 온다.” 는 이야기가 맞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직무스트레스 예방 상담실에는 철옹성 같이 변하지 않는 직장 및 사회 구조로 인하여, 개인이 희생을 하다 하다 못해 피폐해져 오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직무 스트레스, 또는 심리적 문제에 대한 시선은 개인이 관리해야 하는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우울증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나아져요.”, “원래 세상이 다 그런거야, 그냥 받아들여 봐.” 하고 쉽게 내뱉는 말은 무력한 위로가 되어 버리고 만다. 혹은 애써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제가 조직 체질은 아닌 것 같아요.” “저한테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와 같이 스스로 내부 귀인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개인을 힘들게 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개인의 생각 변화나 노력의 여부는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미약할 뿐이지만, 개인에게 모든 원인을 돌리는 것이 간편하고 쉽기에 사람들은 편한 방식으로 현상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때때로 그 원망의 화살이 자신에게 꽂히게 되기에 굉장히 주의할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신호는 산업 현장에서는 직무스트레스를 조직적인 차원에서 검토 및 관리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장세진 등에 의해 개발된 한국인 직무 스트레스 측정도구는 ‘직무 요구, 직무 자율성 결여, 관계갈등, 직무 불안정, 조직체계, 보상부적절, 직장 문화, 물리 환경’ 총 8개의 영역에서 조직의 직무스트레스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고안되었다. 직무 요구가 높은지 낮은지, 직무 자율성이 많이 주어지는지 아닌지 등을 통하여 회사의 다양한 영역이 스트레스 생성 및 관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를 확인하여 팀 단위별로 혹은 조직 전체를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문제의 소지가 있는 팀이나 조직을 영역별로 개입할 수 있게 되어 직무스트레스 문제 해결과 관리가 조금 더 용이해지는 측면이 있다.

 이렇듯 직무 스트레스와 관련하여 조직적인 접근을 하고자 하는 작은 시도들이 하나하나 모여 산업현장의 변화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한 예로, 지난 7월 직장 내 괴롭힘 문제가 발생하여 제대로 처리되지 못할 시 사업주의 처벌을 통하여 문제 해결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변경 보완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도 성공적인 출범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사업장에서나 노동자 개인의 ‘직무 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영역’에 멈춰있으며, 한 개인의 희생이 크게 조명이 되어야만 천천히 바뀌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트레스는 개인 내적인 것을 보는 것도 맞지만, 환경이 변하지 않으면 진저한 변화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시작이 반이다.” 라는 명언처럼 이러한 일단 조직적 접근에 대한 생각이 변화하고, 전문가뿐만 아니라 개별 노동자들도 힘을 합쳐 조직의 문화와 환경을 바꾸어 나가려는 노력을 지속할 때, 직무 스트레스를 가장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이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 일환경건강센터는 안전/보건/환경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주)SK하이닉스의 민간지원으로 설립한 비영리법인인 (재)숲과나눔이 지역사회의 일터를 보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설립한 센터입니다.
청주지역을 중심으로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 특수고용 노동자들뿐 아니라 자영업자, 사업주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일터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직업보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배달대행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이동 노동자들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에게 휴게공간과 더불어 건강상담, 근골격계질환 관리, 심리상담, 직업병 및 산재 상담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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