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든 기후재앙, 호주 산불 속에서 빛난 웜뱃의 이타심
인간이 만든 기후재앙, 호주 산불 속에서 빛난 웜뱃의 이타심
  • 임해성 대표
  • 승인 2020.03.03 1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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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일부터 10일까지 8일간 호주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호주 퀸즐랜드주의 그리피스대학에 유학 중인 딸 아이의 짧은 방학을 틈타 가족여행을 계획한 것은 작년 가을부터의 일이었다. 대략 6개월 전에 날짜를 정하고 티켓을 끊었다. 그 때부터 때마침 호주에는 산불이 시작되고 있었다.

곧 해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무심했지만 6개월이 다 흐르도록 산불은 잡히지 않았고 우리가 비행기를 탈 무렵에는 호주는 그야말로 불덩이가 된 상태였다. 호주의 환경보호국은 아예 서부지역에 3~5년마다 일부러 체계적인 통제 아래 인위적으로 제한된 산불을 낸다. 대형산불로부터 숲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 인위적인 산불과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국지적인 자연산불로 인해 그동안 호주의 많은 야생동물들은 산불에 대처할 수 있도록 적응해왔다.

산불이 시작되려면 연료가 되는 숲과, 낮은 습도 즉 건조한 날씨 그리고 산소가 필요하다. 최근 5년간 산불빈도가 40%나 늘어난 가운데, 광범위한 가뭄과 매우 낮은 습도, 많은 지역에서 나타난 평균 온도 보다 높은 기온, 그리고 ‘남반구 극진동(Southern Annular Mode)’에 의해 유발되는 강한 서풍은 모두 인간에 의해 야기된 기후변화로 인해 이전보다 더 심각해 졌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번 산불은 긴 기간, 너무 큰 규모로 확산되었기 야생동물의 피해가 늘어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까지 10억 마리 정도의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웜뱃의 습성이 주목을 받았다. 웜뱃은 호주에만 서식하는 대형 쥐 같이 생겼지만 캥커루처럼 주머니를 갖는 유대류 동물이다. 웜뱃은 평소에 땅굴을 파고 생활하는데, 생태학자들의 기록에 따르면 화재 같은 대형 재해가 닥쳤을 때 다른 동물이 자신의 굴로 피신하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혹은 나아가서 오히려 ‘양치기 행동’이라고 부르는, 위험에 처한 작은 동물들을 자신의 동굴로 안내하는 그런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는 식으로 호주인들의 SNS를 중심으로 널리 퍼져나갔다. 하지만 웜뱃이 실제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확인된 바가 없다.

기후변화와의 관계를 부인하고, 적극적인 산불진화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 호주 연방정부가 이번 화재와 관련해서 곳곳에서 구멍을 드러내고 무책임한 태도를 드러낸 데 실망한 호주 시민들이 웜뱃 같은 동물을 통해 일종의 슈퍼 히어로를 기대하는 그런 심리가 반영된 것이리라.

박쥐면 어떻고(배트맨), 외계인이 무슨 상관이고(수퍼맨), 거미라도 괜찮고(스파이더맨), 돌연변이(엑스맨), 악마의 자식이라도 상관없다(헬보이). 우리를 구해줄 수 있다면. 하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구하는 행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를 둘러싼 행동은 바로 우리 스스로를 구원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여행 기간 내내 비가 왔다. 여행 마지막 날에는 아예 외출을 포기할 정도로 많은 폭우가 쏟아졌다. 그리고 우리가 귀국한 후 호주정부는 산불이 자연의 힘을 빌어 비로소 완전 진화되었음을 공식 선언했다.


임해성 대표는 한국능률협화와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을 거쳐 GBC에 이르기까지 20년 이상 경영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토요티즘’ ‘남자라면 오다 노부나가처럼’ ‘도요타 VS 도요타’ ‘워크 스마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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