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돈 교수의 치유의 인문학] 너나 잘 하세요
[권희돈 교수의 치유의 인문학] 너나 잘 하세요
  • 권희돈 교수
  • 승인 2020.04.29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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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정문 앞에서 전도사(김병욱 분)가 두부 한 모를 가지고 친절한 금자 씨(이영애 분)를 기다린다. 금자 씨가 교도소에서 나온다. 전도사가 두부를 내밀며 금자 씨에게 대사를 친다. 고생 많았죠? 13년 간. 정말 대단하십니다. 두부처럼 하얗게 살라고, 다시는 죄 짓지 말라는 뜻으로, 먹는 거예요. 그녀가 두부를 으깨자 두부를 올려놓았던 놋쟁반이 땅에 떨어져 팽그르 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금자 씨의 명대사 한 마디가 나오는데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너나 잘 하세요.”

 

박찬욱 감독은 무명시절 고생고생해서 쓴 원고뭉치를 가지고 충무로 영화사를 수도 없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 때마다 번번이 딱지를 맞았다는 것인데. 그 때의 허전함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허망한 시간의 공백을 무슨 말로든지 채워야 스스로 위로가 될 테니까. 퇴짜 맞은 원고 뭉치를 들고 나오면서 영화사를 향하여 던진 말이 너나 잘 하세요.’ 라는 말이었다는 것인데, 언젠가 영화를 만들면 이 대사를 반드시 넣겠다고 결심하였다는데, <친절한 금자 씨>의 명대사 1번이 된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냉소적인 말 같지만 분노의 에너지를 분노로 분출하지 않고, 냉소적인 언어로 자존감을 높여 스스로를 위로하는 치유의 한 방식이라 하겠다.

 

우리는 부정적인 사람이나 상처받은 사람을 도처에서 보게 된다. 그들의 특징은 툭하면 지적하고, 질책하고, 지시하고, 명령하고, 말꼬리 잡고 늘어지고, 남의 말 긁어 잡아당긴다. 특히 절대적 우위에 있는 존재가 갑질을 하든 부정적인 말을 하든 언어폭력을 할 경우에는 박찬욱 감독처럼 대처하는 게 현명하다. 상대가 듣지 못하는 장소에서 타인이 듣지 못하는 장소에서 하늘에 대고 너나 잘 하세요.’ 라고 표현하는 순간 상대가 나에게 쏜 화살이 상대에게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얼마나 통쾌한 자기 위로법인가.

 

부정적이거나 직선적이고 다혈질적인 사람에게서도 이런 말버릇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이기적이고 공감능력이 떨어져 오직 자기감정에만 충실하다. 이런 사람들에게도 상대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너나 잘 하세요.’ 라고 한 마디 던지며 살자. 내가 살고 봐야 하니까.

 

부부 사이에도 이런 사람이 하나 있기 마련인데, 당하는 사람은 참느라고 죽을 지경이다. 졸혼(卒婚)이나 황혼이혼(黃昏離婚)을 감행하게 되는 결정적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부부 중 하나가 이런 말버릇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데도 부부관계를 끊고 싶지 않다면 죽기를 각오하고 상대의 부정적인 말버릇을 고쳐달라고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그럴 용기가 없으면 너나 잘 하세요.’ 하고 유머러스한 말 한 마디 던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의 부정적인 말에 길들여져 낭패를 보게 된다. 상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차곡차곡 쌓여서, 오히려 듣는 자신의 영혼이 파괴될 우려가 있다.

 

상처가 내면에 가득 쌓여 있는 사람도 부정적인 사람 못지 않게 공감능력이 떨어진다. 치료되지 않은 상처덩어리가 내면에 딱딱한 돌덩어리로 굳어져 있어서, 타인의 아픔을 받아들일 자기 안의 공간이 부족하다. 마음의 공간이 없으니까, 아무리 힘든 상황을 보더라도 그저 남의 일일 뿐, 연민의 감정조차 생기지 않는다.

 

선거철에는 상대를 헐뜯는 말이나 자기자랑들이 쏟아진다. 그들이 수 없이 쏟아내는 말들 중 상대의 실체를 바로 보고 하는 말은 한 마디도 없다. 물론 상대를 무너뜨려야 내가 승리하는 전쟁 같은 선거라는 특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 부정적인 말을 부득이하게 들어야 하는 경우에도 너나 잘 하세요.’ 라고 한 마디 해보면 피곤보다는 웃음이 튀어나온다.

 

부정적인 사람, 상처가 많은 사람, 선거 입후보자들, 그들이 주로 지적하고, 질책하고, 비난하고, 명령한다고 하였지만,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타인을 왜곡해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을 칭찬하기보다는 헐뜯기를 좋아한다.

 

선가(禪家)<전등록(傳燈錄)>이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은 전도몽상(顚倒夢想)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본질을 보지 않고 현상을 본다는 것이다. 실제의 산은 본질이고 호수에 뒤집혀 있는 산은 현상인데, 사람들은 호수 속에 뒤집혀 있는 그림자를 보듯 타인을 거꾸로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은 바로 서 있어서 완전한데, 타인은 거꾸로 서 있어서 불완전하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나는 옳은데 타인이 잘못되어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나는 잘못이 없는데 타인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타자를 있는 그대로보지 않고 왜곡해서 보는 습성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주체인 도 물론 그런 습성을 가진 인간의 범주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남을 탓하기 전에 수시로 자기 자신을 향해 너나 잘 하세요.’ 라는 말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자기 자신을 향해 타인을 왜곡해서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보라는 말에 다름이 아니니까.(時雨)

 

 


권희돈 교수는 청주대 명예교수, 문학테라피스트. 대학에서 은퇴하기 전에는 교사로 교수로 초등학생·중학생·고등학생·대학생을 차례로 가르쳐 왔다. 대학에서 은퇴한 후에는 문학테라피스트로 마음이 아픈 이들과 인문학을 통해서 치유하고 소통한다. 이들이 상처를 훌훌 털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낼 때마다, 보람찬 노년을 보내고 있다는 긍지를 갖는다고 한다. 이에 관한 그의 저술 『사람을 배우다』는 장안의 화제작으로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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