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큐레이터 변광섭의 마을 이야기 ① - 문의 두모리
로컬 큐레이터 변광섭의 마을 이야기 ① - 문의 두모리
  • 변광섭
  • 승인 2020.04.29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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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두모리 마을 전경

항상 그랬다. 꽃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피고 지는데 그 꽃을 쳐다보는 사람을 향해서 피어있다. 숲속의 성긴 나무들 사이의 꽃들도 언제나 나를 향해 고개를 쳐들고 맑은 미소로 반겼다. 그날도 그랬다. 소나무 숲 가득한 동산에 오르자마자 숨죽이고 있던 진달래가 일제히 나를 향해 기립박수를 쳤다. 화들짝 놀라 멈칫거렸다. 그새를 못 참아 꽃들은 내게 연분홍 물감을 흩뿌렸다. 나는 그곳에서 알 수 없는 황홀감에 온 몸이 감전되었다. 생애 첫 숲속에서의 오르가즘이었다.

봄꽃이 지천으로 피었다기에 문의 양성산으로 달려갔다. 연분홍 꽃 사이로 펼쳐진 초록빛 들녘의 끝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들녘 끝에 사는 자의 봄은 행복한가. 진한 땀방울 흘리며, 달달한 추억을 만들며 고요한 저녁을 맞고 있는가. 나는 봄의 길목에서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가. 어떤 시를 쓰고 있는가. 내가 흘린 땀은 유용한가.

마음이 쓸쓸할 때는 길을 나선다. 굳이 어디로 가야할지 목적지를 정하지 않아도 된다. 마음 가는대로 차를 몰거나 길을 걷거나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다. 차창 밖의 풍경을 보며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한다. 자연은 그 자체만으로도 치유의 마력을 갖고 있다. 가을은 더욱 그렇다.

두모리 보호수 느티나무와 버드나무
두모리 보호수 느티나무와 버드나무

청주 문의면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20리를 달렸을까. 대청호를 지나고, 산길을 지나고, 두세두세 모여 있는 마을을 지나니 ‘두모리1구 두모실’이라는 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연분홍 물결로 출렁이는 산과 들을 보니 현기증이 난다. 들녘의 끝에 마을이 있다. 꼬창뫼라는 이름을 가진 높고 깊은 산을 품고 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600년 된 느티나무와 400년 수령의 팽나무가 마중 나와 있었다. 신령스러움이 끼쳐온다. 이 마을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 순간이다. 나무는 연초록으로 하나 둘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오랜 세월 이 마을을 지켜왔을 터이다. 마을의 크고 작은 이야기와 상처와 희망을 품고 있다. 이 나무 아래에서 주민들이 다투기도 했을 것이고 사랑의 언약을 맺기도 했을 것이다. 먹고 살겠다며 봇짐을 싸고 마을을 떠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르신나무는 단 한 번도 천기누설을 하지 않았다.

두모리 1구인 두모실은 이런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청나라 지사 두사충이 청나라 장군 이어성을 따라 이 일대를 지나다가 구룡산 자락의 고창산 앞에 펼쳐진 터를 보고 부자터라며 좋아 춤을 추었다. 그 때부터 이 마을을 두무실(杜舞室) 또는 두모실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 마을은 깊은 산속의 마을이지만 앞뜰이 기름지고 먹거리가 풍부해 살만했다. 함씨, 임씨, 허씨, 김씨 등 10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마을의 가옥은 대부분 70년 이상의 옛 모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대문, 안채, 사랑채, 장독대, 텃밭, 외양간 등 충청도의 농경문화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세월의 풍상이 가득한 돌담은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누구일가,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 까치발을 뜨고 낯선 집을 훔쳐본다. 우물과 빨래터와 계곡이 함께하니 애틋하고 정겹다. 고추를 심고, 열무를 심는 손길이 분주하다. 가을에는 붉게 익어가는 홍시와 대추, 고추와 무와 배추 모두 실실하다. 마을 사람들은 농경을 경전처럼 여기며 대대손손 살아오고 있다.

이 마을은 국민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전원일기> 촬영지였다.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를 촬영했다. 낮고 느린 돌담과 정겨운 골목길 풍경과 농경문화 때문이다. 예술인들이 종종 이 마을을 어슬렁거리며 무위자연의 풍경을 자신들의 시선으로 담는다. 사진기를 들고 어슬렁거리며 풍경을 담는다. 화가는 캔버스에 마을의 속살을 그린다. 시인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시심에 담고, 소리꾼은 골목길을 오르내리며 득음의 세상을 펼친다.

이 마을 7부 능선쯤에 건축가 김승근 교수가 둥지를 틀었다. 외갓집이었는데 오랫동안 방치된 것이 안타까웠다. 살림집과 정미소가 함께 있었던 곳인데 살림집은 말끔하게 단장했고 정미소 자리에는 누구나 쉬었다 갈 수 있는 쉼터를 만들었다. 옛 풍경을 오롯이 살렸다. 김 교수처럼 도시 사람들은 고향의 내음 가득한 곳이라며 이 마을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거나 어슬렁거린다. 그리움을 달래고 추억을 쌓는다.

이처럼 오래된 마을은 발길 닿는 곳마다, 눈에 들어오는 곳마다 역사요 문화다. 빛바랜 돌담은 문화를 간직한 돌이다. 신화와 전설을 간직한 돌이며 옛 사람들의 상처깊은 풍경을 담고 있는 돌이다. 나무 한 그루, 솟을대문  그 어느 것 하나 정겹지 않은 게 없다. 저마다의 애틋한 사연과 쓰라린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두모리에 가을볕이 무량하게 쏟아진다. 삶의 향기와 여백과 풍경이 남다르다. 농촌은 언제나 정직하다.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러면서 제 갈 길을 간다. 우리의 삶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변광섭 청주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로컬큐레이터, 에세이스트. 저서 즐거운 소풍길, 생명의 숲 초정리에서, 이 생명 다하도록, 불꽃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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