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경국지색' 양귀비
[포토에세이] '경국지색' 양귀비
  • 문상욱교수
  • 승인 2020.08.11 0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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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아르장퇴유의 양귀비 들판” 1873

 

늦봄에서 초여름 꽃밭에는 꽃양귀비가 만개하여 비단같이 하늘하늘한 꽃잎이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그 자태를 자랑한다. 양귀비꽃은 색깔이 강렬하여 군계일학(群鷄一鶴)처럼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양귀비꽃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가 수련 다음으로 많이 그린 꽃이며, 미국의 표현주의 대가 조지아 오키프도 즐겨 그렸고, 조선시대 화조도에도 양귀비꽃은 빠지지 않는다. 율곡 선생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작품에도 양귀비가 자주 등장할 만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양귀비꽃의 사랑은 대단하다.

꽃양귀비는 줄기에 털이 나 있고 마약 성분이 없어 재배가 가능하지만, 양귀비는 털이 없고 매끈하고 마약 성분이 있어 재배나 복용이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신사임당 ‘양귀비와 도마뱀’ 16C초

원래 양귀비라는 꽃 이름은 당나라 6대 황제인 현종의 애첩 양귀비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애첩 양귀비는 나라를 기울게 하는 미인이라는 뜻의 경국지색(傾國之色)에 이름을 올린다. 알려진 경국지색으로는 춘추전국시대의 미인 서시, 삼국지의 초선, 한나라의 왕소군, 조선 숙종의 장희빈 등이 있다.

양귀비의 본명은 양옥환이고 지금의 중국 사천성 촉주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 부모가 일찍 돌아가셔서 숙부 밑에서 자랐다. 숙부는 조카를 엄격하게 교육하여 사서삼경은 물론 시, 가무에 능통하였고, 어려서부터 미모가 출중하였다고 한다. 양옥환은 17살에 현종의 18번째 아들인 수왕 이모(壽王 李瑁)와 결혼하였다.

그런데 현종은 우연히 궁궐에서 양옥환을 마주한 순간 그녀의 아름다움에 빠져 자신의 며느리임에도 불구하고 아내로 삼았다. 이때 그녀의 나이 27세였고 현종의 나이 61세였다. 현종은 양옥환을 귀비로 책립하여 그녀의 이름은 양귀비(楊貴妃)가 되었다. 황제의 총애를 한몸에 받는 양귀비는 그녀의 일가친척에게 벼슬을 내리고 충신을 죽이거나 내치고 간신배를 등용하는 등 온갖 전횡을 일삼으며 조정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으나 황제는 양귀비와 사랑놀이에 빠져 나랏일에 등한시하였다.

 

구름은 귀비의 옷이요 꽃은 귀비의 얼굴

봄바람이 난간에 스치니 이슬 머금은 모습이 농염하기만 하네.

군옥산 꼭대기에서 본 신선이 아니라면

달빛 아래 요대에서 만난 선녀가 틀림없으리.

* 군옥산 : 중국 신화에 나오는 신성한 산

* 요대 : 신선들이 거주하는 곳

 

이 시는 현종이 침향정이라는 정자 앞에 모란을 심고 그 꽃이 활짝 피었을 때, 밤에 양귀비와 함께 침향정 북쪽 난간에 기대어 모란을 감상하며 잔치를 베풀었는데, 그 모습을 당시 궁중시인이었던 이태백에게 시를 짓게 하고 악사가 연주한 노래이다.

 

안하무인이 된 양귀비는 늙은 황제 대신 멋지고 젊은 절도사 안록산과 사랑에 빠져 황제를 배신하고 안사의 난을 일으켜 천하를 손아귀에 넣으려 했다. 결국 황제의 군사에게 붙잡혀 온 양귀비에게 황제는 자결을 명하였다. 양귀비는 비단 줄에 목을 매어 37년의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현종은 역적임에도 불구하고 시신을 수습하여 무덤을 만들어 주고 죽을 때까지 양귀비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문상욱 “탄생” 2015

 

문상욱 “환희” 2015

 

 


문상욱 작가 중부대 사진영상학과 대학원 졸업, 이마고사진학회 회장, 한국사진교육학회 회원, Light House 한국사진문화원 대표,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 ICA 현대미술협회 부회장, 후기에스펙트 미술협회 운영위원이며, 국제사라예보겨울축제 초청 “한국현대사진전” 감독, 한국흑백사진페스티벌 집행위원장, 충북예총 회장, 한국예총 이사, 청주문화의집 관장 등을 역임하였고, 개인전 8회와 300여회의 국내외 단체전 및 초대전을 개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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