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농사는 다 망쳤습니다.”
13일, 청주시 오송읍 서평리에서 약 2400평 규모의 복숭아 농사를 짓는 A씨는 오랜 장마와 폭우로 망쳐버린 복숭아 농장 앞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탐스럽게 익은 복숭아가 주렁주렁 달려있어야 할 수확 철이지만 나무엔 온전한 복숭아를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나무 아래 떨어진 수많은 복숭아는 썩고 짓뭉개져 악취를 풍겼다.
긴 장마로 일조량이 부족한 탓에 예년과 비교해 복숭아의 당도마저 크게 떨어진 상태여서 가격 경쟁력도 떨어진 상태다.
A씨는 “7월 말까지는 그나마 복숭아 당도가 있어서 일주일 정도 손님들에게 팔았다”며 “하지만 8월부터 계속 비가 내리면서 복숭아 당도도 떨어지는데다 낙과도 심해 올해 농사는 포기한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인근 정중리에서 비닐하우스 50동에서 토마토 농사를 짓는 B씨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토마토 역시도 한창 수확 철이지만 대부분 터지고, 낙과도 심한 상태였다.
B씨는 “잦은 비로 일조량이 충분치 않아 당도가 낮고, 비로 인해 하우스 내부 습기가 많아 토마토의 발육상태가 좋지 않아 상품가치가 없는 상황”이라며 “하우스 임대료와 인건비를 지불하고 나면 남은 건 빚 밖에 없을 것 같다”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노지작물의 피해도 심각했다. 상복리서 대파 농사를 짓는 C씨도 자신의 밭을 보며 “10년째 대파 농사를 지었지만 올해 피해가 가장 크다”며 망연자실해 했다.
3만평 대파 밭은 물로 가득했다. 보통 이맘때 출하를 앞둔 대파의 크기는 70~80cm정도지만 현재 C씨 대파 밭의 대파 90% 이상은 20~30cm크기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C씨는 “이번 달부터 시작해서 김장철까지 본격 출하 시즌이지만 현재 이 상태론 상품 가치는 전혀 없다”며 “모종을 하고 수확까지 10개월을 기다렸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내년 농사, 또 빚 내야...”
이날 오송에서 만난 대부분의 농민들은 내년 농사를 더 걱정했다. 올해 농사 대부분을 망쳐 수익이 없다보니 내년 농사를 짓기 위해선 또 빚을 내야하기 때문이다.
이들 농민들은 “올해도 어느 정도 수익을 예상하고 빚을 내 농사를 지었다”며 “하지만 예상과 달리 큰 피해를 입어 내년 농사는 또 어떻게 지어야 할지 막막하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올해 긴 장마와 폭우로 이곳보다 큰 피해를 입은 곳이 많다는 걸 잘 안다”며 “특별재난지역과 수해지역 지원은 당연하지만 눈에 보이는 수해는 없더라고 피해를 입은 농가에 대해서도 정부의 지원금 신청 간소화나 저리지원 등 대책을 마련해 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이와 관련해 오송읍 관계자는 “현재 농가들을 대상으로 이번 장마와 폭우로 피해 현황을 접수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실태조사를 더 진행해봐야 알겠지만 일부 농약비 정도만 지원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내일은 새벽부터 경기 북부와 강원 영서를 시작으로 올 여름 마지막 장마가 예보돼 있다. 충북에는 50에서 150mm, 최대 200mm 비가 예상돼 있어 농민들이 한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