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큐레이터 변광섭의 마을 이야기 ④] - 진천공예마을
[로컬 큐레이터 변광섭의 마을 이야기 ④] - 진천공예마을
  • 변광섭
  • 승인 2020.09.08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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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마을과 사람들풍경에 젖다, 마음에 담다

문자도 활자도 없던 선사시대부터 인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해 왔다. 삶을 윤택하게 하고 가치 있게 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갈망해 왔다. 삶의 최전선에서 꿈과 욕망을 담기 위해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농경사회에서는 보다 실용적이고 유용한 농기구를 만들었으며, 삶이 풍요로웠던 시대에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식으로써의 공예품이 제작되었다. 암울한 시대에는 장식미보다 기능미에 초점을 두었다. 신라의 금관, 고려의 청자, 조선의 백자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공예품을 보면 그 시대상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온기가 서린, 실용과 탐미가 어우러져 싱싱한 생명력을 발산하는 공예의 진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치열한 공예의 현장이 우리 곁에 있다. 바로 진천군 문백면의 공예마을(옥동예술마을)이다. 진천공예마을에는 도자, 목칠, 금속, 섬유, 회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30여 명의 작가들이 둥지를 틀고 창작의 불꽃을 피우고 있다. 마을 입구 조형물부터 예사롭지 않다. 생명의 대합창을 테마로 손부남 작가가 디자인으로 표현하고 김동진 작가가 도자기로 굽고 제작했다.

이 마을의 큰 어른은 벽촌도방의 김장의 도예가다. 그가 만든 백자는 날렵하면서도 단아하다. 맑음이 끼쳐온다. 손끝으로 만져지는 감촉이 아슬아슬하다. 순백의 찻잔은 얼음장을 만지듯 얇고 가녀리다. 말갛게 빛난다. 자신을 드러내는데 이처럼 순결할 수 있을까. 작품은 작가를 닮는다. 멋 부리지 않는 그의 삶처럼 작품도 억지 부리지 않는다. 그저 순수하고 아름다울 뿐이다.

가장 위대한 예술은 자연이다. 자연을 닮아가는 행위가 곧 예술이라는 말처럼 자연 속에서 자연을 소재로 자연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 최고의 예술이다. 고래실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연방희 작가는 충북의 천연염색 최고의 어른이다. 20년 째 염색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수많은 자연의 빛이 있고 색이 있으며 향기가 끼쳐온다. 바람이라도 불면 마당 빨랫줄에 널려있는 오방색 염색으로 물든 천조각이 나풀거린다.

 

진도예 공방의 김진규 은소영 부부작가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필연이고 운명이다. 선천성 청각장애를 가진 김 작가의 전공은 인화분청이다. 인화분청이란 점토에 문양을 조각해 가마에 구운 뒤 도장으로 도자기에 음각을 찍어 장식하는 분청의 한 방식이다. 도자기 위에 인화를 찍는 작가의 모습은 평화롭다. 말없이 작업하는 그의 얼굴에 온유한 빛이 퍼진다. 묵언수행이다. 옆지기 은소영 씨의 백자투각은 영롱하고 은은하다.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손부남 작가는 생명의 내밀함과 고향의 그리움을, 자연의 조화와 상생의 가치를 화폭에 담는 화가다. 여울공방의 손종목 작가의 작품에는 생활미학이 넘쳐난다. 이밖에도 이 마을에는 도예가 김종태·김동진·최규락·강경숙, 옹기공예 서병화, 염색 조삼숙, 알공예 박복남, 섬유공예 김필례, 종이공예 이정순, 목공예가 김세진, 연공예 박덕주 등 수많은 예술인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예술혼을 빚고 있다.

이곳은 중부권 최대 규모의 공예마을, 예술마을이다. 공예의 모든 장르가 모여있다. 마음을 함께하는 공예작가들이 20년 전에 공예마을을 만들었다. 작가들은 자연속의 예술을 마을을 꿈꾸었다. 이곳이다 싶었다. 20년을 살아오면서 아픔과 시련도 있었지만 기쁨과 영광 또한 적지 않았다. 예술인들이 공동체를 일구는 일은 쉽지 않다. 개성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창작의 열정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름의 가치를 인정하고 협력과 상생의 가치로 자신을 키우며 마을을 가꾸어오고 있다.

공예는 삶에 스미고 젖고 물들 때 그 빛과 가치가 더욱 도드라진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옛 선인들의 땀과 지혜의 산물인 공예 속에는 우리 고유의 삶과 멋이 깃들어 있다.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새로움을 탐하면서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어제의 공예로 오늘의 문을 열었으니 오늘의 공예는 내일의 공예가 될 것이다. 일상의 풍경이자 삶의 이유다. 진정한 공예는 전통을 잇고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 숲속의 마을에는 비밀이 많다. 사람들마다 비밀이 있고 공방마다 비밀이 있으며 골목길에도, 숲에도 비밀이 있다. 비어 있는 것 같은데 가득 채워져 있고 고요한 것 같은데 소요스럽다. 서로 갈 길을 가는 것 같은데 같은 방향으로 간다. 빛이 있고 숲이 있고 바람이 끼쳐온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내밀함, 그 속살이 궁금하다.

이 마을은 다양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아직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설렘이 있다. 그곳에 숨어 있는 비밀을 하나씩 캐낼 때마다 감동에 젖고 사랑에 물들며 저마다의 가치에 고개를 끄덕인다. 두리번거리는 삶의 여백을 만들어 보자. 가난한 이들의 삶이란 늘 모자라고 아쉽고 헐겁지만 오늘 하루만이라도 공예의 숲에서 예술로 치유하고 삶의 향기 가득하면 좋겠다. 공예마을의 숨은 이야기, 작가들의 눈부시게 빛나는 창작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변광섭 청주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로컬큐레이터, 에세이스트. 저서 즐거운 소풍길, 생명의 숲 초정리에서, 이 생명 다하도록, 불꽃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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