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 박상철
  • 승인 2020.11.19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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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산업재해로 2020명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1165명은 일 때문에 병들어서, 855명은 일하다 추락하거나 기계에 말려들거나 사고로 죽었다. 산재 사망사고는 대부분 영세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사망자 다수는 비정규직·사내하청·특수고용직과 같은 불안정 노동자들이다.

생명보다 이윤의 논리로 작동하는 위험의 외주화가 주요인이다. 우리 경제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고용 피라미드 맨 밑바닥에 있는 이들의 육신이 지탱하는 구조인 셈이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를 혹사하지 말라.' 50년 전 전태일 열사의 마지막 외침이었다. 그동안 많이 달라졌다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장시간 기계처럼 혹사당하는 노동자가 많다.

현재 많은 사업장에서 사망 사고 등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한 기업 사업주나 경영자 처벌을 강화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움직임이 거세다. 산업재해 중 사망 등 재해 정도가 심각한 ‘중대재해’는 단순한 개인의 실수에 의한 사고로 볼 순 없다. 생명안전에 대한 위험을 철저하게 예방 및 관리하지 않은 회사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나 책임자 처벌은 극히 미약한 수준이다. 안전관리 책임이 기업의 경영책임자가 아닌 하위 직급의 종사자에게 분산돼, 말단 관리자에게 가벼운 형사처벌을 내리는 것으로 미봉돼 버린다. 즉, 현행법상 재해가 발생하더라도 경영자를 처벌하기 어렵고, 회사에 대해서는 벌금형을 부과하는데 불과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시급한 이유다. 이미 이 법 제정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지난 9월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김미숙 씨가 올린 이 법안 입법 국회 청원이 10만 명 서명을 돌파했고, 이낙연 대표도 직접 이 법안 통과를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 제정 논의는 진전된 게 없다. 노동계에서는 20대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자동 폐기된 선례가 있는 만큼 올해 안에 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지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재계는 우려와 함께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노동 관계법이 늘 그러하듯,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제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고 김용균 씨와 같은 희생자는 없어야 한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한 문장이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

문득 댓글 시인 제페토가 쓴 글 하나가 떠오른다.

광염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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