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큐레이터 변광섭의 마을 이야기 ⑨ ] - 괴산 운교리
[로컬 큐레이터 변광섭의 마을 이야기 ⑨ ] - 괴산 운교리
  • 변광섭
  • 승인 2021.01.27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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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천강 따라 풍경에 젖고 풍류에 취하고

선유대의 비경과 호수의 아름다움,
천연탄산수로 치유의 시간을~

 

달천강변 운교리의 겨울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눈보라가 휘날리고 바람이 뼛속까지 파고 들어왔다. 여기가 어디던가, 사람의 땅인가 신선의 나라인가. 내가 내 마음 속을 알 수 없듯이 보이지 않는 것에는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어둠이 그렇고 깊은 바다 속이 그렇고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죽음이 그렇지 않던가. 낯선 여행과 삶에 대한 첫 경험은 또 어떻고.
여기는 괴산 달천강변의 운교리 선유대. 눈에 쌓인 얼음장 위를 달리는 내내 불안했다. 얼음장이 쩍쩍 갈아지는 소리가 날 때마다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깨지면 빠져죽지 하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드넓은 호수에서 바라본 선유대는 의연했다. 깊은 고요속에 바람의 현이 음표를 그리며 숲으로 향하고 있었다. 숲과 기암절벽의 아름다움에 반해 신선들이 내려와 풍류를 즐겼다고 했던가. 낙락장송 끝자락에 신선은 없고 새 한 마리 앉아 있다,
괴산군 청천면 운교리는 달천강변에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사계절 마르지 않는 물길의 발원지가 국립공원 속리산 세조길의 계곡이다. 그 물길은 운교리에서 깊고 느리게 여울지더니 산막이옛길과 괴산댐으로 향하고, 다시 충주를 거쳐 흘러 남한강으로 이어진다. 강폭이 200m에 달하니 그 깊이를 어찌 알 수 있을까. 좌측에는 사모바위 또는 신랑바위라고 부르는 기암괴석이 있고, 우측에서는 족두리모양을 하고 있는 족두리바위가 있다. 신부바위라고도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선유대라고 부르고 있다. 어찌나 그 절경이 아름다웠던지 옛 선비들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저마다의 가슴에 시 한 수 새겼다.
조선 후기 학자 나헌용은 “이 땅에 옛날 신선이 있었다고 일찍이 들었는데/흰 구름이 적막히 정자 앞을 둘렀네.//단약 이룬 화롯불은 저녁을 지낸 듯하고/도끼자루 썩은 나무꾼은 세월을 기억 못하네.//돌에 새겼던 옛 사람들 무수히 있었고/풍미했던 속설이 지금도 전하네.//새장의 학은 아득히 어디로 갔는가/종일 낚시터에 앉아 암담하네”라며 신선놀이에 세월 가는 줄 몰랐다.
괴산댐이 들어서기 전에는 운교리에 목교(木橋)가 있었다. 사람들은 나무로 만든 다리를 아슬아슬하게 걸어 다녔다. 그 옆에 주막이 있었다.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밧줄을 매어놓고 잡아당기며 강을 건너기도 했다. 쏘가리와 민물장어가 많았다. 수달 등 천연기념물의 보고(寶庫)였다. 운교리에는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소중한 자원이 있다. 바로 지하 200m에서 솟구치는 천연약수다.
운교리의 천연약수는 차갑고 톡 쏘는 맛이 일품이며 유리탄소, 게르마늄, 미네랄, 라돈 등이 많이 함유돼 있어 신진대사 및 위장운동을 촉진하는데 효과가 있다. 또한 피부를 탄력있게 하고 각종 피부질환 개선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정약수보다 더 차고 톡 쏘며 물량 또한 풍부하다. 어찌된 일인지 몹시 궁금했다. 마을 주민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운교리와 초정리가 같은 암반과 지질층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초정리는 오랫동안 물을 퍼 올렸기 때문에 그 맛이 예전같지 않은 것이고, 운교리는 아직 개발하지 않아서 천연의 맛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운교리가 치유와 체험과 체류가 있는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달천강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은 기본이다.

운교리 사모바위
운교리 선유대

봄에는 천지가 연분홍 진달래꽃으로 가득하고 여름에는 푸른 하늘과 녹음 가득한 숲의 비밀이 쏟아진다. 가을에는 붉게 물든 단풍과 밤하늘의 달이 호수에 물결치고 겨울에는 순백의 아름다움에 취한다. 유람선을 타고 풍류를 즐겨도 좋고, 발 닿는대로 마을과 강변길을 걸어도 좋다. 운교랜드와 리버빌리지에 머물며 약수와 함께 휴식의 시간을 가져도 좋다.
마을 주변에는 보고 먹고 즐길 수 있는 자원도 풍부하다. 속리산둘레길 선유대~쌍곡구간이 이어져 있고, 충청도양반길과 산막이옛길이 인접해 있다. 산을 좋아하면 삼성봉, 천장봉, 등잔봉 등을 산행할 수 있고 한반도지형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 서면 하늘과 맞닿은 신비에 마음까지 유순해진다.
‘명주처럼 순박하고, 통나무처럼 질박하게~.’ 무위자연을 강조한 노자의 명언이다. 명주는 순백의 상징이다. 그 어떤 것도 덧칠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통나무는 가공되기 전의 원목이다. 본성을 의미하지 않던가. 운교리는 순박하고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마을이다. ‘깊은 산에 홀로 앉았으니 만사가 가볍네./사립문 닫고 종일 생의 덧없음을 배우니/한 생애를 돌아봐도 남은 것 없고/한 잔의 차와 한 권의 경뿐이네.’ 서산대사의 시가 입술을 비집고 나온다.
칼바람에 코끝이 찡하니 곧 봄이 오려는가. 붉은 피를 토하며 시를 쓰던 동백꽃이 지고 나면 봄의 전령 복수초는 얼음장을 비집고 노란 입술을 내밀 것이다. 북풍한설을 딛고 꽃대를 올린 매화는 연분홍 살갗, 알큰한 그 숨결로 내게 로 오지 않을까. 봄볕 가득한 어느 날, 그 자리엔 산수유와 생강나무꽃이, 진달래가 무진장 필 것이다. 일찍 피는 꽃은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운다. 살고자하는 욕망 때문이고 강인한 아름다움을 간직했기 때문이다. 운교리에서 한 나절 유랑했으니 무디어진 내 마음의 현에 음률을 조여야겠다.


변광섭 청주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로컬큐레이터, 에세이스트. 저서 『즐거운 소풍길』, 『생명의 숲 초정리에서』, 『이 생명 다하도록』, 『불꽃의 시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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