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돈 교수의 치유 인문학] -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구속하지 않는다
[권희돈 교수의 치유 인문학] -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구속하지 않는다
  • 세종경제뉴스
  • 승인 2021.05.2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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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물이 반쯤 담긴 유리컵이 있다. 이 유리컵을 보고 수직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마실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수평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마실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말한다.

수직적 사고는 생각의 가치나 질보다는 외형적인 면을 중시한다. 남녀, 윤리, 이념, 빈부, 직위, 연령 등 전통적인 관습을 기준으로 상대를 평가하며 자기중심적이고 자기감정에만 충실하다. 상대방의 의견은 들으려 하지 않고 무조건 자기만 옳다고 우긴다. 굳어진 생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더 이상 발전하기 힘든 사고 유형이다.

수평적 사고는 외형적인 면보다는 생각의 가치나 질을 중시한다. 어떤 대상이든 나와 평등함을 바탕으로 상대를 대한다. 따라서 수평적 사고는 발상의 전환으로 창조적인 사고가 가능하며 긍정적이고 능동적이다. 유연한 사고로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있으며, 부분을 조합하여 전체로 묶는 통합적 사고능력을 지닌 유형이다.
21세기를 규정하는 말은 무한경쟁 시대, 후기자본주의 시대, 정보화 시대, 디지털 시대, 실용주의 시대 등 다양하다. 그 중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말은 수평적 사고의 시대라는 말이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나 성장을 위해서는 수직적 사고에서 수평적 사고로 변해야 한다. 자기만 옳고 타인은 모두 틀렸다고 하는 꼰대적 사고를 버리지 않으면 매사에 불행을 자초하게 된다.  
2010년 겨울 밤, 서울의 한 아파트.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자기 집 현관문을 열고 비상계단을 통해 내려간다. 학생이 아파트를 빠져나가자, 그의 집이 화염에 휩싸이고 불길이 솟구쳤다. 소방차가 와서 불을 껐지만, 학생의 할머니와 부모와 여동생이 불길에 희생되었다. CCTV에 찍힌 학생은 곧 붙잡혀 경찰의 취조를 받는다. ‘나는 예술 계통의 공부를 하고 싶은데 아버지는 판사가 되어야 한다며 골프채로 마구 때렸어요. 그때마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어요. 할머니와 여동생에게는 미안해요.’ 하며 펑펑 울었다. 취조하던 경찰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어떤 순간도 이기적이었던 아버지와 한 순간만이라도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었던 아들. 아버지와 아들의 어긋난 운명은 역사에 기록될 만한 비극적인 가족의 이야기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사고방식의 차이로 갈등을 겪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아버지가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다고 무지막지하게 폭력을 행사한 대신, 아들의 눈높이에 맞춰 아들의 말에 경청하고 따뜻한 격려의 말과 함께 대화를 시도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아버지는 그 평화로운 기회를 버리고 자식을 통해서 자신의 대리욕구를 채우려 했고, 굳은 사고방식으로 아들을 복종시키는데 자신의 힘을 써버렸다. 무력은 소통이 아니다.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통제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억압이다. 억압받은 아들의 무의식적인 자아는 끝내 거대한 분노로 폭발했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아버지라는 벽 앞에서 끝없이 공포와 분노, 절망을 느낀 아들은 소통 대신에 아예 소통의 대상을 제거하는 길을 택했고, 어린 나이에 패륜을 저지른 극악한 범죄자가 되고 말았다.   

한 가족이나 가정이나 사회나 국가나 수직적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면, 분노가 차곡차곡 내면에 쌓인다. 그렇게 쌓이고 쌓인 분노는 마침내 폭력으로 폭발한다. 우리 사회 여기저기서 폭력이 난무하는 까닭은 알고 보면 수직적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 분노를 폭력으로 표현하는 것은 가장 저열한 표현 방식이다. 분노의 표현이 폭력으로 난무하는 사회는 가장 불행한 사회이다.

얼음이 녹으면 무엇이 될까요? 라는 질문에 A는 ‘물이 된다’ 라고 답하고, 물 이외의 답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B는 ‘봄이 온다’ 라고 답하며, 얼음과 봄의 연관성을 찾아낸다.

고정된 진리는 없다. 변화만이 진리이다. 영원한 진리는 변화뿐이다. 초록 이파리가 가을이면 낙엽이 되어 떨어지듯 인간사회도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한다. 이렇듯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개인도 변화해야 한다. 변하는 시대에 맞게 생각도 변해야 한다. 그러나 변화의 주체는 언제나 ‘나 자신’이어야 함을 잊지 말자. ‘나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함을 잊지 말자. 

‘나 자신’이 수평적 사고방식으로 변할 때 모든 인간관계는 새롭게 변한다. 조건을 따지지 않고 ‘나 자신’이 먼저 사랑을 주는 관계로 변한다. 그럴 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구속하지 않는다. 이미 만들어진 길을 따라가는 인생길이 아니라, ‘나 자신’만의 새로운 인생길을 찾아 나서게 된다.(時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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