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돈 교수의 치유 인문학] 부부싸움의 3단계
[권희돈 교수의 치유 인문학] 부부싸움의 3단계
  • 권희돈 교수
  • 승인 2021.08.2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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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가족)은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의 첫 글자를 딴 단어이다. 자식이 아버지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법정스님은 ‘가족은 부모든 자식이든 몇 생의 인연을 거듭해서 금생에 다시 만난 사이’라고 하였다. 어렵게 맺어진 가족의 인연인데 요즘에는 가족 간의 단절이 타인들보다도 더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
부부싸움은 부부간의 갈등과 관련된 것이어서 어떤 부부든 부부싸움을 피해갈 수 없다. 그만큼 중요한 일로 갈등을 겪는 것이기에 엄밀히 보면 그 갈등 속에 긍정의 에너지와 부정의 에너지가 함께 잠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부부싸움을 잘 하면 긍정적 에너지를 생산해내고 가정의 평화와 행복이 유지되지만, 잘못하면 부정적 에너지가 분출하여 상처의 골을 깊이 파놓게 된다. 부부싸움은 3단계를 거치면 좋다.
첫 단계는 <공약단계>이다. 결혼하기 전에 부부싸움에 대한 공약을 작성하는 거다. 기혼 부부라 할지라도 공약을 작성하면 느낌이 새로워진다. 부부싸움의 공약은 3장 정도면 족하다. 1. 어떤 싸움이든 부부의 관계개선과 관계강화를 위해 싸운다. 2. 싸운 뒤에도 반드시 같은 침대에서 잔다. 3. 싸움의 모습을 절대로 자녀들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연애는 낭만이지만 결혼은 현실이다.

다음 단계는 본격적으로 싸움하는 <싸움의 기술단계>이다. 부부싸움 중 가장 먼저 익혀두어야 할 기술은 ‘주제 중심으로 싸워야 한다.’는 점이다. 싸움의 내용을 확산시키지 말고 갈등의 원인이 된 문제에 집중하라. 자녀의 교육방법에 대한 견해 차이로 싸움이 일어났다면, 그 문제만 가지고 집중적으로 논리적으로 적극적으로 싸워야지, 과거 문제를 되풀이한다거나 타인과 비교한다든가 말꼬리 잡고 늘어진다거나 자기감정에만 충실한 싸움은 상처만 남길 뿐이다.
사소한 일로 싸워도 그냥 덮어두지 말자. 사소한 일이라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은근슬쩍 넘어가면 후일에 반드시 문제가 불거진다. 사소한 일이지만 그 속에 진짜 중요한 이유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찾아서 갈등문제를 풀어 가면,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반드시 싸움 뒤에 부부관계가 개선되고 강화된다.
무슨 일을 하든 타이밍과 장소가 중요하듯이, 부부싸움도 타이밍과 장소가 중요하다. 출퇴근 시간에 싸운다든가, 급한 일이나 중요한 일을 목전에 두고 싸운다든가, 이웃이 잠든 한밤중에 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둘이 충분하게 대화를 끝낼 시간과 장소를 만들어 싸우는 게 좋다. 텔레비전 앞이나 자녀의 앞이나 공공장소는 부부싸움 하기에 적절치 못하다.
국가 간의 전쟁은 승자와 패자가 분명하게 결정되는 싸움이지만, 부부간의 싸움은 서로가 윈-윈 하는 게임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폭력과 비난과 담쌓기, 이 세 가지를 꼭 피해야 한다. 폭력은 폭력을 낳아서 문제가 전쟁수준으로 커진다. 상처를 남기기 때 문에 트라우마가 아주 오래 간다. 신체적인 폭력이 몸에 상처를 남긴다면, 비난은 마음속에 상처를 남긴다. 상대방의 그릇된 행위보다는 상대의 인격을 공격하기 때문에 가장 파괴적이고 비열한 싸움이 된다. 침묵으로 담쌓기도 피해야 한다. 담쌓기는 냉전의 상태이고 소통단절의 시간이며 지옥의 시간이다. 어떤 부부는 치약 짜는 방식의 문제로 8개월이나 담을 쌓고 지냈다고 하는데 사실은 8개월간 지옥에서 보낸 거나 마찬가지이다.
마지막으로 <화해의 기술 단계>이다. 부부싸움을 단계별로 하다보면 어느 새 두려움이 사라지고 즐기게 된다. 부부싸움을 할수록 관계가 단단해지니까 자존감이 생기면서 매사에 자신감이 생긴다.
이 단계에서는 현재의 상태를 직면하는 냉철함과 결혼 전의 낭만성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예컨대 흥분이 고조된 상태라면 그 자리에서 분을 가라앉히는 것도 중요하다. 그보다 더 현명한 행동은 잠시 그 자리를 피해 한 사람이 밖으로 나가는 거다. 인디언들은 나가서 화가 풀릴 때까지 걷다가 화가 풀리는 지점에 막대기를 꽂고 돌아온다고 한다. 돌아오는 시간이 하루해를 넘기기 전이라면 좋겠다. 하루를 넘기기 전에 화해함으로써 다음 날 새로운 활력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 이다.
부부 사이의 낭만은 이성적으로 겪어야 할 많은 과정들을 일거에 뛰어넘는다. 근사한 이모티콘을 날린다거나, 꽃을 선물한다거나, 연애시절의 낭만을 상기시키는 손 편지, 부드럽고 따뜻한 스킨십 등은 냉랭한 분위기를 훈훈한 분위기로 바꾸어준다. 부드럽고 따뜻한 말 한 마디, 진심어린 사과의 말이 화해의 좋은 기술들이다. 그에 못지않게 좋은 화해의 말은 유우머이다. 유머는 무거운 분위기를 가벼운 분위기로 반전시키는 화해의 지름길이다.
‘어떤 부부가 막 싸우는 중에 아내가 남편보고 나가라고 소리쳤다. 남편이 그래 좋아, 하고 밖으로 나갔다. 막상 나가 보니 딱히 갈 곳이 마땅치 않아서 곧 집으로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에 누워 있다. 엄마가 화가 안 풀렸다고 아이들이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신호를 보냈다. 그 때 남편이 한 마디 날렸다. 엄마가 나가라고만 했지 들어오지 말라는 말은 안 했잖아. 아내가 픽하고 웃었다. 그러자 아이들도 따라 웃었다. 남편도 같이 웃었다.’
부부싸움은 부부 사이에 가장 열정적으로 소통을 나누는 시간이다. 갈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공정하게 싸우면 상처를 남기지 않고 오히려 부부관계가 강화된다. 그때 가정은 상처와 불안을 치료해주는 축복의 성소로 다시 태어난다.(時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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