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민의 보들보들 클래식] ​​왈츠(Waltz) 새해를 여는 희망의 메신저
[이영민의 보들보들 클래식] ​​왈츠(Waltz) 새해를 여는 희망의 메신저
  • 이영민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1.12.2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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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빈의 시민공원에 들어서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황금빛 동상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왈츠의 황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동상이다. 기개 넘치는 자세로 우뚝 서서 활을 긋고 있는 그의 모습은 지금이라도 당장 멋진 연주를 들려줄 것만 같다. 요즘은 거의 보기 힘들지만 오케스트라의 악장(Concert Master)이 지휘단에 올라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간간히 활로 지휘를 하며 악단을 이끄는 포어가이거(Vorgeiger)형식의 연주회가 과거에 많이 있었는데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이런 스타일의 연주회를 이끌며 빈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음악의 수도 빈을 중심으로 작곡활동을 했던 작곡가들은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을 필두로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있지만 요한 슈트라우스에 대한 빈 사람들의 애정은 요즘의 아이돌 가수들의 팬덤이 무색할 정도로 그 누구보다 각별하다. 

해마다 1월 1일 정오가 되면 빈 필의 신년음악회가 무지크페어라인(Wien Musikverein) 황금홀로부터 전 세계로 중계되고 우리나라의 많은 교향악단의 신년음악회들도 왈츠로 채워지게 된다.  경쾌하고 우아한 왈츠의 선율이 마치 희망찬 한 해가 되길 기원하는 들뜬 마음을 대변해 주는 걸까? 80년 전통의 이 신년음악회의 레퍼토리는 슈트라우스 가문의 작곡가들인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그의 아들들인 요제프 슈트라우스, 에두아르드 슈트라우스 그리고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음악들로 채워지는 것이 기본적인 틀이라 할 수 있다. 90년대 이후 다양한 작곡가들의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지만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나 ‘라데츠키 행진곡’같은 슈트라우스 가문의 대표 작품들은 거의 빠지지 않고 연주된다. 클래식음악이 대부분 그렇듯 왈츠도 지휘자에 따라 느낌이 전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현재 빈 필 신년음악회의 지휘자는 매년 새롭게 선정되고 있다. 하지만 빈 필 신년음악회의 간판으로는 무려 25년간 가장 오랫동안 빈 필의 신년음악회를 이끌었던 빌리 보스코프스키가 단연 선두로 손꼽힌다. 그는 전문 지휘자 출신이 아닌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당시 악장으로 활동하던 중 예정된 지휘자가 급서하게 되자 마치 요한 슈트라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바이올린을 들고 포디엄에 올라서게 되는데 긴 세월동안 음반과 영상으로 전 세계인들에게 왈츠를 각인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하였다.

왈츠(Waltz)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바흐가 세상을 떠난 지 30여년이 지난 1780년대 이후부터이다. 바로크시대를 풍미했던 귀족들의 사교춤이었던 미뉴엣, 가보트, 지그 등을 단숨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하고 감상용 음악으로만 남기고 왈츠는 역사의 전면에 등장해 시민계층의 비호를 받으며 전 유럽인들을 사로잡게 된다. 왈츠의 원형은 13세기 이래 남부 독일과 오스트리아 지역의 농민들이 추었던 시골 춤이라는 뜻의 렌틀러(Ländler)로 알려져 있다. 서민들의 소박한 민속음악이 19세기 유럽의 주류음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베버의 수작 ‘무도회에의 권유’이후로 슈트라우스의 세대가 도래했을 때 빈과 파리와 같은 대도시의 사교계는 왈츠에 열광했다. 심지어는 출산을 앞둔 임신부가 무도회에 참석해 의료진이 곁에서 대기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 인기가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무도회의 춤곡으로 시작되었던 이 왈츠는 연주회용 순수음악 분야에서도 적극 활용되어 쇼팽과 브람스의 피아노 독주곡으로, 베를리오즈와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의 한 악장으로 또는 오페라의 삽입음악으로도 활약하며 정통 클래식 레퍼토리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후 라벨의 ‘라 발스’나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등도 독립된 악곡으로써 왈츠의 지위를 보여주며 사랑받고 있는 작품들이다. 난해하지 않지만 정체성이 뚜렷하고 다양한 변형이 가능한 왈츠의 특징이 아마도 이런 유명세의 타당한 이유가 될 것이다.
​​여러 나라의 작곡가들이 왈츠를 만들어내고 영국의 슬로우 왈츠도 스탠다드 왈츠로 널리 연주되지만 빈 왈츠만의 특징은 독보적이다. 템포자체가 여타의 왈츠들보다 빠른 이유도 있지만 3/4박자 중 두번째 박이 약간 앞서 나오고 마지막 박이 살짝 뒤로 밀려나게 연주되는 빈 왈츠만의 연주전통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쉽게 따라하기 힘들 정도이다. 빈 필의 신년음악회가 특별한 이벤트로 다가오는 것은 이러한 빈 사람들만의 정서를 고스란히 즐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정서를 빈 기질(Wiener Blut)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1871년 당시 경제공황으로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있었던 빈 시민들을 독려하기 위해 동명의 오페레타를 작곡하기도 한다.
​​한낱 시골서민들의 춤곡이었지만 많은 걸출한 작곡가들의 노력으로 200여년에 걸쳐 음악애호가들에게 사랑받아왔고 지친 시민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선사해 온 왈츠였기에 지금까지도 새해의 첫 시작을 알리는 희망의 메신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제 그 대표적인 몇 작품을 이달의 감상곡으로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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