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민 음악칼럼니스트] 가브리엘 포레 - 레퀴엠 라단조 작품번호48
[이영민 음악칼럼니스트] 가브리엘 포레 - 레퀴엠 라단조 작품번호48
  • 이영민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05.02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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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은 세상을 떠나 영면에 든 이의 혼백을 위로하고 지내온 삶을 기리는 남은 자들의 의식으로 로마 카톨릭교회의 장례미사곡을 뜻한다.  이 예식의 정식 명칭은 위령미사곡(Missa pro defunctis)이지만 예식의 첫 기도문이 레퀴엠 애테르남(Requiem aeternam), 즉 ‘영원한 안식’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보통 레퀴엠으로 약칭해 부르게 된다.

레퀴엠의 역사는 다른 교회음악들에 비해 비교적 짧은 편으로 16세기 후반 장례미사에 지금의 입당송과 진노의 날(Dies Irae)을 사용하는 것이 허용된 이후에 많은 작품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18세기가 저물어갈 무렵 대중에게도 친숙한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작곡된다. 모차르트는 전체 작곡을 마치지 못하고 3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이 미완의 작품은 쥐스마이어의 손에서 완성된 이후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걸작의 숲을 이루는 토대가 된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종교음악이 쇠퇴하며 대중의 품에서 멀어졌지만 레퀴엠이라는 장르는 진중하고 장엄함을 가짐과 동시에 떠나보낸 이에 대한 애틋함이 가지고 있는 서정성 때문에 베를리오즈로부터 베르디, 부르크너, 생상스, 브람스, 드보르자크, 포레에 이르기까지 낭만시대 대가들이 명작들을 쏟아내게 된 계기가 되었다. 

 

레퀴엠을 초연한 이듬해인 1889년에 그려진 포레의 초상
레퀴엠을 초연한 이듬해인 1889년에 그려진 포레의 초상

이 많은 레퀴엠 중에서도 독특하고 아름다운 창작물이 바로 프랑스의 작곡가 포레의 작품이다. 보통의 레퀴엠은 장엄미와 엄숙미가 추구되고 특히 진노의 날 부분에선 세상의 마지막 날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을 불러일으킬만한 강렬하고 공포스러운 효과를 만들어낸다. 베르디의 작품이 대표적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포레의 경우엔 심판, 두려움과 같은 어두움은 찾아볼 수 없고 따뜻하고 포근한 악상들이 곡 전체를 관통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비평가들이나 교회로부터 날선 공격을 받기도 했다. 죽음의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지 않았기에 심지어 이교도적이라는 비난까지 서슴치 않았다. 하지만 포레는 죽음이란 고통으로 지친 삶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으로의 도달이라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죽음에 관한 철학을 음악으로 표현해 내었고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으로 찬란히 남아있다.

 

후기낭만시대 서정음악의 거장 가브리엘 포레는 1845년 프랑스 남부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부터 음악에 재능을 드러내 9세 무렵부터 파리로 건너가 음악원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생상스와 인연을 맺게 되어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의 작품을 배우고 여러 과목에서 수석으로 학교를 졸업한 후 작곡가와 오르가니스트로 활약한다. 스승과 마찬가지로 특출한 오르가니스트였던 포레는 마들렌 교회에서 연주를 하게 되는데 레퀴엠은 그 시절의 작품이다. 1888년 첫 초연 이후에 두 차례 개정을 해 판본에 따라 연주형태가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 교회의 예식을 위한 버전이 앞의 판본이라면 콘서트홀을 염두에 두고 개작한 것이 뒤의 판본으로 해석된다. 그가 이 레퀴엠을 작곡하게 된 계기에 대해 포레는 어떠한 특정이유로 만든 것이 아니라 단지 나의 음악적 기쁨을 위해서 작곡했다고 이야기했지만 작곡을 시작하기 몇 해 전에 포레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곡이 진행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부모를 위한 레퀴엠으로 여기고 있다.

 

생상스와 포레가 연주했던 파리 마들렌 성당의 오르간
생상스와 포레가 연주했던 파리 마들렌 성당의 오르간

이러한 작곡의 배경과 그의 작품 경향이 만나 빚어낸 이 곡은 다른 작곡가들의 레퀴엠과 전혀 다른 독보적 기념비로 남게 되었다. 작품은 모두 7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있다. 첫 곡인 입당송에서 오르간과 현, 호른의 육중한 시그널 이후 여리게 시작되는 합창의 도입부터 듣는 이로 하여금 이승의 경계면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든다. 이후 봉헌송과, 상투스, 피에 예수, 아뉴스 데이로 이어지는데 이는 전통적인 미사통상문에 근거해 만들어졌지만 포레다운 자유로운 구성과 서정미를 보여준다. 마지막 두 곡 리베라 메(구원하소서)와 인 파라디숨(천국에서)이 독특한 악장으로 리베라 메의 중간부분에 진노의 날의 가사를 삽입해 극적효과를 극대화하였고 종곡인 인 파라디숨에선 천국에서의 기쁨과 평온함을 온전히 드러내며 사자의 넋을 떠나보낸 남은 이들이 삶의 새로운 원동력을 얻게 만들어준다.

5월에 태어난 프랑스의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가 포근했던 어린 시절의 부모님을 떠올리며 써내려갔을 부드러운 안식으로의 자장가, 레퀴엠을 이달의 감상곡으로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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