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향토 설화, AR로 만난다
지역 향토 설화, AR로 만난다
  • 이규영
  • 승인 2022.06.08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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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형 로컬크리에이터를 찾아서 ⑧ 주렁주렁스튜디오
향토문화와 디지털이 만난 ‘이름도둑과 설화탐정의 모험’

작곡가 차이콥스키가 남긴 가장 밝고 쾌활한 곡 ‘현을 위한 세레나데’. 그는 후원자인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세레나데는 내면적 충동에 따라 작곡했고, 자유로운 사고에서 비롯됐으며, 진정한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고 묘사했다.
내면의 열정, 틀에 박힌 사회생활에서 벗어나 자유에서 진정한 자신의 가치를 찾는 사람들은 이곳에도 있다. 충북형 로컬크리에이터는 그들의 진짜 가치를 찾아 도심을 벗어난 낙후상권에 발을 내딛고 미래를 설계한다. 세종경제뉴스는 연재물을 통해 이들이 개척한 삶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용이 물장구치는 마을, 양토끼라 불리는 사내… 강원도 영월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 있었다.

1995년 출판됐지만, 현재는 절판된 방랑 작가의 ‘영월 땅이름의 뿌리를 찾아서’다.

지명유래에 얽힌 민간 설화 등이 기록된 영월 향토 사료로 글과 한자밖에 없는 이 책을 읽고 주수현 주렁주렁스튜디오 대표는 큰 즐거움을 느꼈다.

그는 당장 영월군에 전화해 이 책의 저자를 만나고 싶다고 요청했다. 군 관계자는 영월문화원의 연락처를 알려줬고 그렇게 연락된 영월문화원에서는 ‘일단 문화원으로 와보라’라는 답변을 했다. 그렇게 도착하게 된 영월문화원. 주 대표는 원장의 명함을 받고 매우 놀랐다. 원장인 그가 방랑 작가인 엄흥용 씨였다.


주수현 주렁주렁스튜디오 대표.
주수현 주렁주렁스튜디오 대표.

 

주수현 주렁주렁스튜디오 대표는 엄흥용 원장을 만난 그 자리에서 제안을 하나 건넸다.

절판됐던 ‘영월 땅이름의 뿌리를 찾아서’ 책을 복원해 도서와 함께 AR 제작을 하자는 내용이었다. 

주 대표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애니메이션과를 재학 당시 AR·VR을 이용, 중국과 일본 학생들과 함께 각국의 문화를 증강현실로 만드는 과제를 진행했다. 그 우수성을 인정한 서울시는 과제를 매입했고 그때부터 주 대표의 사업이 시작됐다.

그의 또 다른 관심사는 ‘이야기’였다. 전통문화,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주 대표가 엄흥용 원장을 찾아가게 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향토문화를 어떻게 ‘더 재미있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정답은 ‘콘텐츠화’였다.

주 대표가 가진 AR·VR 기술력은 영월의 향토문화와 디지털화를 융합, 오래된 문화를 오래도록 볼 수 있는 ‘설화탐정’으로 탄생했다.

설화탐정은 설화를 훔치는 정체불명의 도둑과 그 도둑에게 이름을 뺏긴 탐정의 큰 줄기로 이어진다. 이 도둑은 사람, 땅을 가리지 않고 이름이란 이름을 모조리 훔쳐간다. 이름도둑을 쫓는 설화탐정은 그를 쫓아 강원도 영월로 간다. 그곳에서 도난당한 이름을 되찾지만 이름도둑은 약삭빠르게 제주, 충주, 단양으로 도망간다.

책의 곳곳에서는 살아 숨 쉬는 듯 한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등을 이용한 AR 기술이다. 책에 해당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이야기의 흐름과 함께 카메라로 책을 비추면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특히 충주편의 경우 남한강의 특징을 소개하기 위해 ㈜문화예술기획살로메와 협업, 재즈가 흐르는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지역별로 설화를 담아낸 설화탐정은 ‘영월 모험의 시작’ 편과 함께 ‘제주 용궁 올레’ 편, ‘충주 남한강의 노래’편, ‘단양 숲속의 헌책방’편으로 출간됐다.

 

주 대표는 이외에도 AR을 이용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한다. 최근에는 MBC충북과 함께 청남대에서 역대 대통령과 휴일을 즐기는 ‘대통령과의 휴일’ 콘텐츠를 개발하고 나섰다. 내년에 본격적으로 출시되는 이 콘텐츠는 AR을 통해 역대 대통령의 미담을 영상으로 체험하고 그들의 이야기, 취미 생활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지역을 가리지 않는 주 대표가 충북형 로컬크리에이터에 합류하기까지는 심병철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 책임연구원의 역할이 컸다. 설화탐정 영월편을 준비 중이던 당시 사업체들 사이 고립돼 있다고 느끼던 주 대표에게 ‘충북 로컬크리에이터’라는 인프라를 소개했기 때문이다.

이 연결고리에 들어온 순간 협업할 다양한 기회가 생겼다.

충북 로컬크리에이터로서 그는 충북청년창업사관학교에 입교할 기회도 생겼다. 주 대표는 현재 이곳에서 메타버스를 기획하고 내년 2월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주 대표는 “설화탐정을 만들면서 ‘설화’라는 콘텐츠를 다루고, 후배 사업자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이 콘텐츠 하나만으로 엄청난 반향을 기대하지는 않는다.그저 내가 걸어온 길과 작품을 보면서 또 다른 사업가들도 ‘우리나라 전통문화가 아이템이 될 수도 있구나’하고 생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Commentary

주렁주렁스튜디오는 일반적으로 로컬크리에이터가 기술이 배제된 영역에만 국한된다는 편견을 깨고 기술과 로컬의 만남이라는 혁신을 대표하기에 매우 적절한 사례다.

로컬기업이 기술을 만나 그 가치가 미치는 영역이 확대되고 기술기업은 로컬의 브랜딩을 입고 희소성의 특별한 가치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2021년 중기부 충청권 로컬크리에이터 대표기업으로 선정되었고 권역별 대표들이 모여 겨루는 전국대회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는 등 그해 로컬 생태계에서는 주렁주렁스튜디오 주수현 대표의 해였다. 

By 심병철 충북창조경제혁신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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