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식의 여행스케치] 태백 '귀네미 마을'
[강대식의 여행스케치] 태백 '귀네미 마을'
  • 정준규 기자
  • 승인 2016.09.08 1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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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식 사진작가ㆍ수필가

[세종경제뉴스 정준규기자] 지구에 빨간 불이 켜졌다. 특히 한반도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연일 35도를 웃도는 폭염(暴炎)이 지속되고 있다. 도심의 열기는 이글거리는 태양과 유리창 및 도로 표면에서 반사되는 복사열(輻射熱)로 인하여 찜통더위가 지속되고 있다. 예년 같으면 며칠 무더웠다가도 비 한번 내리면서 식었다 다시 더위가 찾아오는 식이었지만 이번 폭염은 30일째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1994년 더위에 버금갈 기세다.

처서(處暑)가 지났지만 앞으로도 몇 일간은 폭염이 지속될 것이라고 하니 숨이 더 막힌다. 폭염은 한낮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밤에도 열대야 현상이 나타나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할 정도이다. 그럼에도 마음 놓고 전기세 무서워 에어컨도 틀지 못하고 있으니 한숨소리에 시름만 더 깊어만 가고 있다.

후끈 달아오른 도심을 떠나 시원한 곳으로 피서(避暑)를 갈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 우리는 흔히 계곡물이 흐르는 시원한 계곡이나 섬 지역 또는 해변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그곳은 이미 사람들로 넘쳐나 오히려 가고 오는 시간 내내 고통이 더 심할 수도 있다.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는 백사장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물놀이를 즐길 수 있지만 지금의 뙤약볕에서는 오히려 더위를 먹을 수 있다. 물이 흐르는 계곡이라면 시원한 그늘과 차가운 물이 있어 좋겠지만 흐르는 계곡물도 적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오히려 계곡물이 더렵혀져 있을 수 있다. 이럴 때 가장 이상적인 피서장소는 강원도 태백의 매봉산 자락의 바람의 언덕이나 귀네미 마을이 좋을 듯하다. 백두대간이 지나는 매봉산은 해발 1,303m나 된다.

 

태백 매봉산 풍력발전단지 바람의 언덕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경이었다. 세상이 모두 잠들었을 것 같은 새벽, 어둠으로 잠긴 산자락에 희미한 불빛들이 어리댄다. 가파른 고갯길로 이어진 배추밭에서 작은 불빛에 의존하여 배추를 수확하는 사람들이 어둠을 밀어내려 애쓰는 중이다. 이미 상차(上車)를 위하여 대기하고 있는 화물트럭과 작업인부들, 그리고 차량이 오가는 소음이 적막한 매봉산 자락을 흔든다. 차창으로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한기(寒氣)가 몸을 오싹하게 만든다. 도심(都心)에서 벌겋게 달아있던 세포들이 수축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몸에 닭살이 돋아나 겉옷을 꺼내 입어야 했다.

 

차량을 멈추고 바람의 언덕을 향해 걸었다. 풍력발전기가 멈추어 서 있다. 고장이 아니라면 바람이 없다는 것이다. 하늘에 떠있는 달 주위에 몰려든 구름들도 별반 움직임이 없다. 바람이 많아 바람의 언덕인데 이 곳 조차 바람이 없는 것을 보면 한반도 상공이 주변 공기로 말미암아 움직이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것이 분명한 듯하다.

 

매봉산 풍력단지 주변을 둘러보니 17기의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현재 발전량이 8.8MW급으로 연간 12,000MWH의 전력생산이 가능한데 태백시는 이를 개인 업체에 매도하였고 새로 매수한 업체에서는 현재의 시설을 모두 철거한 후 다시 용량증대사업을 하여 2019년 상반기부터는 11,00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16.5MW급으로 용량을 증대한다고 한다. 이러한 계획대로라면 새로 풍력발전기가 세워질 때까지 3년간은 이곳에서 풍력발전기를 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아침 05시 20분쯤 되자 동녘 하늘에 조금씩 붉은 기운이 서리기 시작한다. 산자락을 휘감아 돌고 있는 하얀 구름 띠 위로 넓게 펼쳐진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옮겨 붇기 시작한 여명(黎明)이 조금씩 어둠을 밀어낸다. 어둠에 잠겼던 풍력발전기의 모습도 희미하게 윤곽이 보이고, 라이트 불빛에 의지해 올라왔던 좁은 길도 보인다. 6월부터 파종하여 심어 놓은 배추들이 수확할 만큼 자랐다. 약 40만평에 달하는 광활한 경사지를 개간하여 만들어 놓은 고랭지 배추밭은 한 폭의 그림이다. 너무나 온도가 높은 까닭에 다른 지역의 배추들은 대부분 썩어 수확을 못해 배추 값이 너무 치솟아 금배추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배추 값이 지난 해 같은 기간보다 약 80% 정도 비싸다고 하니 이 넓은 산자락에 심겨진 배추들이 노다지 같아 보인다. 물론 매봉산 자락의 고랭지(高冷地) 배추들도 예년에 비하여 온도가 높아 생육상태는 크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배추 겉잎이 누렇게 타거나 속이 썩어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것들이 많아 보인다. 상차를 하여 운송하고, 배추 묶음 작업을 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줄어들고 값이 많이 오른 것이 도움이 되겠지만 상품 상태가 떨어져 상대적으로 가격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곳에 오면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이 돌밭에서 어떻게 배추가 잘 자랄 수 있는지 였다. 배추밭에 주먹만 한 돌들이 흙보다 많이 널려있어 밭을 갈기도 힘들고, 경운기나 트랙터를 이용하여 로타리(rotary)를 치기도 어려워 소나 사람이 직접 노동력으로 밭을 갈아야 한다. 그런데도 농부들은 그 돌을 밭 밖으로 주워다 버리지 않았다. 매년 그대로 농사를 짓는다. ‘농부들이 게을러서 그럴게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실은 돌들이 배추를 보호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배추 밭의 돌들은 한 낮에는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받아 돌을 데워 놓았다가 기온이 내려가는 저녁에는 달구어진 몸을 식히면서 일정 시간 토지의 온도를 유지해줘 배추의 생육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농부들의 농사에도 과학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햇살이 매봉산 자락 전부를 점령한 후에도 더위를 느낄 수 없다. 배추 밭에서 작업을 하는 인부들의 옷차림은 한겨울 같다.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 온 젊은 외국 노동자들이었다. 작업을 하는 인부들 중 여자를 제외하고 한국 남자를 찾는 것이 더 힘들었다. 젊은 사람들 일자리가 없어 걱정이라며 취업준비생에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취업수당 명목으로 돈을 지급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참 세상이 아이러니(irony)하다고 느껴진다. 노동력(勞動力)이 없어 외국에서 노동력을 수입하여 사용하는 현실에서 놀고먹는 청년들에게 그냥 지급하는 돈의 의미가 무엇일까. 선거를 의식한 정치인들이 젊은 층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그럴듯한 내용으로 포장한 독(毒)이든 사과는 아닐까. 놀지 말고 노동으로 땀을 흘려서라도 살아가라고 충고해야 할 어른들이 젊은이에게 놀아도 돈을 준다는 허황된 꿈을 심어줘 오히려 실업자로 오래 있으라고 지원해 주는 것은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매봉산 입구로 내려오자 바람의 언덕 풍력단지 위로 차량이 올라가는 것을 막으려는 차단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차량을 이용하여 찾아오니 배추 작업을 하는 차량들과 엉키어 작업이 어렵게 되자 차량 출입을 통제하기 위하여 차단막을 설치하고 주민들이 경비를 서고 있는 것이다. 새벽에 올라갔기 때문에 출입 통제를 받지 않았지만 관광객과 농부들 사이에서는 간혹 고성(高聲)이 오가고 충돌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바람의 언덕에서 귀네미 마을까지의 거리는 약 15km가 못된다. 주 도로에서는 마을까지 약 3km를 더 들어가야 한다. 마을 입구에는 ‘일출이 아름다운 마을 귀네미’라는 글씨가 쓰여진 석비(石碑)가 세워져 있다.

 

좁은 마을 진입로 입구에는 대형 화물트럭에 용달 자동차로 싣고 내려온 배추들을 옮겨 싣는 작업이 한창이다. 차에서 차로 배추를 옮기는 작업을 하는 사람도 외국인이다.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TV프로인 1박 2일에서 ‘이승기 나무’로 불려 인기가 높았던 나무도 보인다. 귀네미 마을도 해발 1,200m 정도이다 보니 아침 공기는 선선하다. 올라가서 보니 마을과 채소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비탈마다 심겨진 싱싱한 배추들을 수확하는 곳도 있고, 김을 매는 아낙들의 모습도 보인다.

 

꼬불꼬불 만들어진 길은 이 지역의 밭고랑이 얼마나 험하고 농사짓기가 어려운 지역인지를 느끼게 한다. 고온으로 해충이 늘어나자 병충해를 예방하기 위하여 농약을 살포하는 농부의 모습이 측은해 보이기까지 하다. 줄을 끌고 보조해 주는 아낙은 마스크 하나 달랑 쓰고 배추가 다치지 않도록 줄을 잡고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농촌의 삶이 고달픈 이유는 모두 육체를 이용하여 힘든 작업을 수행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각시취, 개미취를 비롯한 야생화도 지천이다. 높은 곳에서 꽃을 피운 까닭에 꽃잎의 색감도 선명하고 곱다. 하늘과 맞닿은 이곳 정상에서 이슬을 머금고 피워낸 아름다운 꽃들이 무리지어 천상의 화원을 만들고, 바람에 실려 가는 구름들도 바쁘게 움직인다. 모든 것이 생동감 있게 살아 숨 쉬는 풍요로움이 가득하고, 세상 어디보다 조용하고 평온하다. 사계절 뚜렷한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늦은 봄부터 시작되는 농부들의 몸짓이 고난스러워도 그들에게는 가난을 벗어 던질 만큼의 결실을 가져다 준다. 다른 지역보다 일찍 찾아오고 늦게 물러가는 겨울이라 겨울이 길다. 그렇지만 긴 겨울은 어쩌면 고된 노동으로 힘들게 보냈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인지 모른다. 힘든 노동으로 피곤해진 심신을 다소나마 오랜 시간 쉬도록 배려해 주는 자연의 섭리가 고맙다. 귀네미 마을에서는 한여름의 뜨거움을 느낄 수 없다. 이곳에 집을 하나 얻어 여름을 보내려고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으나 매물(賣物)로 나오는 집이 없다고 한다. 하루 밤 묵어갈 숙소가 없어 다시 뜨거운 도시로 향했다. 영월 단종 유배지인 청령포(淸泠浦)에 이르자 용광로의 화염 속에 놓인듯하다. 겨우 1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뒤돌아 가고 싶다. 매봉산 바람의 언덕으로...

 

강 대 식 사진작가 · 수필가

 ▶충북사진대전 초대작가

 ▶충북 정론회 회장 

 ▶푸른솔문학 작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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