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식의 여행스케치] 고창 선운사로의 가을 여행
[강대식의 여행스케치] 고창 선운사로의 가을 여행
  • 정준규 기자
  • 승인 2016.11.10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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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강대식] 가을이 오면 가고 싶은 곳이 어딜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삼천리 금수강산 어디를 가도 가을에는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성하지만 단풍과 고즈넉한 산사의 울림이 있는 고창 선운사를 권하고 싶다.

선운사는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높이 336m인 도솔산(兜率山)에 자리하고 있는 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본사로 사찰의 창건 연대는 명확하지 않으나 신라 진흥왕이 창건하고 위덕왕 24년(577년) 백제의 고승 검단(檢旦, 黔丹)이 중수하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선운사 경내

선운사는 고려말과 조선 초기에 중수와 중창을 거쳐 경내 건물이 189채나 되는 거대한 사찰이었다. 그 밖에 89암자, 24굴을 갖춘 큰 사찰로 억불숭유정책을 내세운 조선 시대에도 성종의 어실(어실)이 있을 정도로 번성했으나 정유재란 때 대부분 소실되어 1613년 광해군 5년부터 재건을 시작하여 수차례 중수되어 현재에 이른다. 그 많던 전각들이 지금은 사라지고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보물들이 존재하는 사찰이기도 하다.

 

천연기념물 367호 송악

 

주차장에서 내려 사찰로 향하다 좌측 도솔천 방향 벽면을 보면 천연기념물 제367호 송악이 보인다. 송악은 잎과 열매가 아름답고 다양한 모양을 만들 수 있어 지피식물로 심는데 이곳 송악은 둘레 80cm, 높이가 15m이며, 수령이 얼마인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노거수로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송악을 지나 도솔천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는 꽃무릇이 지천이다. 가을 추석 무렵이 되면 도솔천과 주변 전부를 수백만 송이의 꽃무릇이 피어 산사를 붉게 물들이면 이곳이 선경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아름답다.

선운사 꽃무릇

 

일주문 입구 못가서 우측에 미당 서정주의 시비가 있다. 이곳이 시인의 고향이기도 한데 시비에는 선운사 동구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라는 시이다.

서정주 시비

 

미당 서정주는 이곳 선운사에서 선술집 여인과 보낸 하룻밤의 추억을 동구라는 시로 남기었는데 그 배경이 동백나무숲이다. 선운사 뒤편쪽 도솔산 자락에는 6백 년 이상 된 3천여 그루의 동백나무숲이 산자락을 감싸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된 동백나무숲은 이른 봄 붉은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나뭇가지에서 붉은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다른 꽃들은 꽃잎이 되어 흩날리듯 떨어지나 동백꽃은 꽃송이를 통째로 떨어드린다. 그래서 동백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꽃송이 채 목이 꺽이듯 툭툭 떨어지는 것이 더욱 애절한 느낌을 들게 한다.

선운사 단풍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 가는 길 좌측에는 도솔천을 따라 양쪽으로 심겨진 단풍나무가 붉은색 옷으로 갈아입고 바람에 춤을 춘다. 고목에서 피어나는 단풍나무의 화려한 군무는 다른 어디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광이다. 가을이 되면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몰려들어 복새통을 이룰 정도로 잘 알려진 선운사 단풍은 비가 내리면 색이 더 짙어져 화사하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물이 만세루이다. 만세루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로 대웅전 앞쪽에 배치되어 사찰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직접 대웅전을 볼 수 없도록 배치하였다.

만세루

 

이곳에서는 차를 마시거나 시화전을 개최하는 등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 강연과 전시를 하는 용도로 현재 사용되고 있다. 만세루를 돌아가면 바로 보물 제290호로 지정된 선운사의 본전인 대웅보전이 나타난다. 평면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긴 장방형 평면을 이루고 있고, 전체적으로 기둥 옆면 사이의 간격이 넓고 건물의 앞뒤 너비는 좁아 옆으로 길면서도 안정된 외형을 지니고 있다.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에, 벽의 양 측면에는 풍우를 막기 위해 널판으로 풍판(風板)을 대었다. 막돌로 허튼 쌓기를 한 얕은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약한 배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을 세웠다. 단청이 빛을 잃어 더욱 고풍스러운 모습으로 당당하게 서 있지만 세월을 이겨내려는 듯 지붕을 받치는 보조대를 세웠다. 세월의 풍상에 시달리며 무거운 지붕을 이고 견디며 서 있는 것이 애처롭다.

선운사 대웅전 비로자나불

 

고창 선운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塑造毘盧遮那三佛坐像)은 보물 제175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는 법주사와 귀신사의 소조비로자나삼불상과 완주 송광사의 소조석가여래삼불상과 같이 17세기 전반기 각 지역의 대표적 사찰에 조성된 것과 같은 것이다. 형태는 넓고 당당한 어깨, 긴 허리, 넓고 낮은 무릎으로 인하여 장대하고 웅장한 형태미를 보여준다.

보물 제279호 금동지장보살좌상은 조선 초기의 금동지장보살좌상으로 높이는 1m이다. 머리는 고려시대 지장보살상에서 폭넓게 나타나는 두건(頭巾)을 쓴 모습이며, 두건을 묶은 좁은 띠가 이마를 두른 후 귀를 덮고 양 가슴부분까지 내려와 있다.

대웅전 앞에는 커다란 목백일홍 고목 두 나무가 자라고 있고, 앞에는 석탑(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이 세워져 있다. 경내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범종, 부도 및 탑비 등 문화재도 산재해 있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장사송

 

선운사 경내를 지나 한참을 위로 오르면 천연기념물 제354호로 지정된 장사송이 보인다. 한 몸체에서 5가지가 나와 하늘로 솟구쳐 서 있는 소나무는 기품과 당당함이 있다. 그 옆으로는 진흥왕이 왕위에서 물러나 수도했다고 전해지는 진흥굴이라는 동굴이 있다.

새가 집을 짓기 위하여 나무에 구멍을 파 놓은 듯 거대한 바위에 둥굴게 입구를 만든 굴속은 깊으면서도 안락하다. 많은 사람들이 동굴을 찾아 기도하고 용천에서 나오는 감로수를 받아 마시며 각자의 소원을 비는 장소이기도 하다.

더 위로 올라가면 선운사 산내암자 참당암의 대웅전은 보물 제803호조 지정되어 있다. 이 대웅전은 신라시대 의 운화상(義雲和尙)이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전하며, 그 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현존하는 건물은 조선시대의 것이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매 칸마다 4분합문을 달았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고, 지붕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다포양식의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앞면에 짜인 공포는 전형적인 18세기 다포양식인 반면 뒷면 공포는 굽면이 곡선이다. 석가여래를 본존으로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협시한 삼존불을 봉안하고 있으며, 1900년에 후불탱화로서 영산회상도를 조성하였다. 이 건물은 여러 차례의 중수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고려시대 건축 부재(部材)의 양식을 지니고 있어 이채로우며, 조선 후기의 빼어난 건축미를 지니고 있다.

내원궁 가는 길

 

창암담을 지나 S자 길로 올라가면 도솔암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 있다. 이곳 내원궁에는 보물 280호로 지정된 고려 후기의 금동지장보살좌상이 모셔져 있다.

높이 96.9cm의 이 불상은 대좌(臺座)와 광배(光背)가 모두 없어지고 불신(佛身)만 완전하게 남아 있는데, 상체가 늘씬하고 당당하여 고려 후기의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 제337호)이나 문수사 금동불좌상과 흡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내원궁 마당에 서면 멀리 천마봉이 펼쳐진다. “남한 제일의 풍광”이라고 칭찬한 펜화가 김영택의 극찬이 아니더라도 올라오면서 흘린 땀방울을 보상하듯 가슴을 뻥 뚫어낼 만큼 시원하다.

 

칠송대 도솔암마애불

 

내원궁 옆 서편 암벽 칠송대(七松臺)에 가면 보물 제1200호로 지정된 도솔암마애불이 거대한 화강암에 새겨져 있다. 바위를 편편하게 만든 후 새겨진 높이 13m, 너비 3m에 달하는 고려시대의 이 마애불은 「배꼽 속에 들어있던 비결이 햇빛을 보는 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다」는 전설을 간직한 마애불이다.

이 마애불 배꼽 밑 감실에 불상의 조성내력이 들어가 있었을 것인데 동학혁명 당시 손화중이 도끼로 부수고 비결을 꺼내 사라졌다고 한다. 마애불의 생김은 웃는 모습이 아니라 침묵 수행을 하는 듯 근엄한 표정이다. 두 손을 모으고 정좌한 모습에서 어두운 시대상을 반영하듯 생기가 없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자비로움이 뭔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수많은 중생들이 찾아와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를 고대하는 것은 내세를 소중이 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가을바람이 스치고 지난다. 풍요로움을 간직한 바람이기에 좋다. 아름다운 선운사를 떠나며 자비로움이 가득한 속세를 기원한다.

 

 강 대 식 사진작가 · 수필가

 ▶충북사진대전 초대작가

 ▶충북 정론회 회장 

 ▶푸른솔문학 작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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