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식의 여행스케치] 대관령으로 떠나는 겨울 여행
[강대식의 여행스케치] 대관령으로 떠나는 겨울 여행
  • 정준규 기자
  • 승인 2016.12.08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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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식 사진작가ㆍ수필가

[글ㆍ사진 강대식 ] 겨울이 왔다. 겨울이면 가장 기다려지는 것이 하얀 눈송이 일게다. 솜털처럼 나풀대며 내려앉는 하얀 눈을 보면 마음까지도 깨끗하게 정화(淨化)되는 느낌을 받는다. 내린 눈들은 지붕과 들을 덮고, 잎 새를 모두 떨어트린 나뭇가지에도 살포시 내려 설화(雪花)를 꽃피운다. 눈이 덮힌 세상은 포근하다.

마치 솜이불에 몸을 둘둘 말았을 때처럼. 눈이 내린 아침 산을 바라보면 멋진 수묵화 한 점을 보는 느낌이다. 제아무리 천재적인 화가라 할지라도 자연이 만들어 놓은 풍경을 흉내 내기는 쉽지 않다.

눈은 사람의 감정을 들뜨게도 한다. 눈이 내린 들판을 달려가고 싶은 충동은 꼬마들만의 감정은 아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눈 내린 벌판을 뛰어 다니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면 장화로 바꾸어 신고 눈밭을 뒹굴며 어린 시절을 추억 했을지도 모른다. 신이난 내 옆에는 강아지도 덩달아 뛸 것이다.

어릴적 논 가운데 볏단을 쌓아 놓은 짚더미 옆에는 탈곡이 끝나고 쌓아 놓은 짚 덤불이 있었다. 눈이 내려 세상이 하얗게 변하면 고은 햇살이 쏟아지는 덤불을 헤치며 산비들기나 참새들이 모여들었다. 그곳은 새들의 데이트 장소였다. 먹을 것이 있고 따뜻하기 때문에 새들에게는 그야말로 오와시스가 된다. 눈 내린 그런 아름다운 풍경이 어디쯤 가야 볼 수 있을까. 누구도 밟지 않은 하얀 눈이 끝없이 펼쳐진 곳. 아마도 그런 곳이 대관령이지 않을까.

 

대관령(大關嶺)은 높이 832m, 총연장 13km에 이르는 태백산맥을 넘는 고개의 하나로 영동과 영서를 연결하는 관문이다. 이 일대는 황병산 · 선자령 · 노인봉 · 발왕산에 둘러싸여 있으며, 높이에 비하여 전반적으로 고위평탄면의 지세를 가지고 있다. 연평균기온은 약 6.1℃ 내외로 봄·가을이 짧고 겨울이 길며 적설량이 많은 곳이다. 여름에도 서늘하여 고랭지채소 · 홉 · 씨감자의 산지로 유명하다.

 

겨울철 스포츠의 대명사인 남한 최대의 대관령 스키장이 있어 설원을 달리고 싶은 용감한 사람들은 스키장을 찾는다. 농사를 짓지 못하는 곳에는 넓은 초지를 조성하여 소나 양 등을 사육하는데 대관령 삼양목장, 양떼목장, 하늘목장 등이 있다. 스키를 잘 타지 못하는 사람들이 갈 곳은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스키장 보다는 푹푹 신발을 감추어 버릴 정도로 눈이 쌓인 목장이 제격이다.

 

겨울철 대관령에 가면 많이 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황태덕장이다. 대관령 서쪽 편에는 황태덕장 명소가 늘어서 있다. 황태(黃太)는 차가운 겨울철 눈보라와 청정한 봄바람으로 명태를 말려서 만든다. 대관령은 겨울밤이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다. 눈이 내리고 명태 위에 소복이 쌓인 눈과 더불어 명태는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그리고 낮에는 따스한 햇볕에 녹게 되는데 이렇게 얼다 녹다를 반복한다.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서너 달을 반복하면 명태(明太)는 이름을 바꾸어 황태가 된다. 속살도 황금빛으로 변하고 부드러워진다. 동해에서 잡아온 명태는 비교적 지리적으로 가깝고 낮과 밤의 온도차가 큰 대관령에서 명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황태는 몇 달 동안 자연과 동고동락을 같이하며 풍파(風波)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에 제 가치를 다하지 못하고 불량품도 생겨난다. 날이 너무 추워서 하얗게 된 것은 백태, 날이 따뜻해서 검게 된 것은 먹태(찐태라고도 함)이다. 몸통이 잘려 나간 것은 파태이고, 머리가 없어진 것은 무두태라 한다.

황태덕장을 보았다면 목장으로 가보는 것도 좋다. 대관령 삼양목장의 경우 봄부터 가을까지는 각종 전염병 예방차원에서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기도 했으나 겨울에는 소들을 방목하지 않는 관계로 일반인에게 유료로 개방하고 있다. 이곳에는 눈이 내려도 쉽게 녹지 않기 때문에 눈이 자주 오는 해에는 쌓인 눈이 건물 지붕과 맞닿아 있을 때도 있다.

눈이 쌓여도 목장 측에서 관광객들이 목장을 둘러 볼 수 있도록 정상부분까지 차량이 순환할 수 있게 길을 내 놓는다. 골짜기는 내린 눈이 바람에 날려 가득 덮어 잘 못 들어가면 눈구덩이에 빠져 헤쳐 나오기 어려울 만큼 쌓인 곳도 있어 조심해야 한다. 아무도 들어간 흔적이 없고 골자기가 맞닿아 있는 곳이라면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목장 위로 올라가면 드넓게 펼쳐진 목장뿐만 아니라 날씨가 좋으면 멀리 동해 바다가 보인다. 바람이 불어오면 살을 베어내듯 차가운 바람이 눈을 뜨지 못하게 할 정도로 짖긋지만 바람이 없이 눈송이라도 날리면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린 천상에 온 느낌이 들 정도로 짜릿하다.

영하 20~30도를 오르내리는 산 정상에서 눈을 퍼다 끓여서 먹는 커피 한잔의 맛은 세상의 어느 커피보다도 달콤하고 향긋하다. 얼어버린 몸을 말끔하게 녹여주는 커피의 따쓰함이 몸에 전율을 일으킬 정도로 몸서리치게 달콤하다.

서걱이는 바람 한 줄 달려와 나뭇가지에 부딪혀 울부짖는 소리가 찌렁찌렁 저수지 저 아래에서 터져 나왔던 소리 같다. 서산으로 해가 지고 짧은 노을이 옅은 분홍빛으로 타다가 시들면 동쪽 하늘에 시린 어둠을 밀치며 보름달이 올라온다. 세상에 누구 하나 간섭할 수 없다는 듯 고고하게 세상을 밝히는 하얀 달빛이 무심하다.

속세의 번뇌를 쓸어 담아 지고 왔다면 이곳에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삶이 터전으로 내려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언제고 가슴속이나 머리에 쌓여있던 고뇌와 번뇌를 이곳에 버릴 수만 있다면 그대는 이미 신선이 되어가는 출발점에 서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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