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누구냐 넌”… 얼굴 없는 공매도 ‘공포’
[기획] “누구냐 넌”… 얼굴 없는 공매도 ‘공포’
  • 이주현 기자
  • 승인 2017.01.11 1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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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트리온․한미약품 등 공매도 ‘악연’
현행 제도, 개인 투자자가 피해 볼 수밖에 없는 구조
공매도 제도 수술 나선 정치권… 박용진․김태흠 의원 등 법안 발의

[세종경제뉴스 이주현기자] 셀트리온, 한미약품 등 상장회사들이 공매도로 오랜 몸살을 앓고 있다.

공매도로 피해를 보는 기업과 개인투자자가 매년 속출하고 있어 공매도 금지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공매도 주체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기사 내용과는 무관. / 뉴시스

공매도가 뭐길래
공매도는 주가가 내려갈 것으로 분석되는 주식을 빌린 뒤, 주가가 오르고 나면 되갚는 투자기법이다. 쉽게 말해 차익을 챙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A씨가 B회사의 주식을 500주 갖고 있다고 치자. A씨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당분간 주식시세가 변동이 있든 없든 팔지 않고 보유할 생각이다. 반면 B회사의 주식이 없는 C씨는 이 회사의 전망이 흐리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래서 B회사의 주식을 우선 매도하고, 주가가 하락하면 재매수해 이익을 남기고 싶어 한다.

이런 경우 A와 C씨는 거래할 수 있다. C씨는 A씨에게 일정한 대가를 주고 B회사의 주식을 빌린다. A씨 입장에서는 계속 보유할 주식인 데다 잠깐 빌려주고 일정한 대가를 받는 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된다. C씨는 당연히 B회사의 주식이 떨어질 것이라 예상하기 때문에 빌린 주식을 팔 것이다. 이때 B회사의 주가가 하락하게 된다면 빌린 주식만큼 재매수해서 A씨에게 되돌려주는 차익을 얻게 되는 구조다.

만약 B회사의 주가가 더 올라간다면 C씨는 빌린 것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주식을 재매수해서 갚아야 하기 때문에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C씨에게 일정 부분 증거금을 징수토록 하고 있다. C씨 입장에서 보면 B회사의 주식을 하나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결국은 매도하는 형태의 결과가 나타난다. 일반적인 공매도의 형태다.

공매도는 주가가 하락할 때 유동성을 공급하는 순기능도 있지만, 허위 정보나 특정세력에 의한 시세조종, 결제 불이행 등의 문제가 있다. 또, 매도 물량이 집중적으로 시장에 나오기 때문에 주가 하락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공매도 주문이 많을수록 주가 하락 압박은 더욱 커진다. 자본시장법에서 일반채권과 투자계약증권을 제외한 모든 증권의 공매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이유다.

뿔난 개미들, 속타는 상장사들
공매도의 칼끝은 항상 개미, 이른바 소액투자자들을 향하고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유상증자는 시장에서 악재로 해석된다. 주가 하락을 가져온다는 점을 역이용한 일부 투기세력이 공매도를 할 경우 주가가 내려가 애꿎은 소액투자자들만 먹잇감이 되고 있다.

현재 업계에서는 국내 공매도 물량의 80% 이상이 외국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공매도는 주로 외국계 증권사를 통해 이뤄진다. 거래량이 적은 코스닥종목에 공매도가 몰리면 주가는 비정상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현행 공매도 공시제도는 실제 공매도 수량이 얼마나 되는지, 누가 했는지 개인 투자자들은 알 수 없다. 상황이 터졌을 때 기관과 외국인은 도망가고, 정보가 없는 개인투자자만 당하는 구조인 것이다. 불평등성과 개인 비중이 높은 코스닥시장에서 유독 피해가 많은 이유다.

셀트리온 소액주주모임은 지난해 신문광고를 통해 악성 공매도 세력을 비판하면서 공매도 금지법 국회 통과를 촉구하기도 했다. 제일약품 소액주주모임도 지난해 2월 대차거래를 하지 않은 증권사로 계좌를 옮기기 운동을 벌인 바 있다.

속이 타는 건 상장사들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예가 셀트리온이다. 셀트리온은 지난 2012년부터 셀트리온 제약사업에 대한 의구심이 일어 분식회계설, 회장 도주설 등이 돌면서 공매도 물량이 몰렸다. 다음 해 심리적 압박을 받은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보유 지분 전체를 다국적 제약사에 매각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가운데 셀트리온의 판매사인 셀트리온제약은 재고자산이 1조 원을 넘어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었다.

충북 출신으로 충북도민회장을 맡고 있는 서 회장 나름대로 공매도 세력에 맞서기 위해 자사주를 사들였는데, 시세조종 의혹을 받아 몇 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다. 2014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당시 금융당국은 셀트리온 주식에 대한 공매도는 일상적인 거래에서 일어나는 수준으로 보고, 경영진의 조직적 대응이 오히려 불공정 거래 행위였다고 판단했다.

이에 셀트리온은 특정 시간대에 집중해서 공매도가 발생했고, 의도적으로 주가를 떨어뜨리려는 보이지 않는 세력에 대응하기 위한 정당한 주가 방어 행위였다고 설명했다.

서 회장은 2013년 당시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상장폐지도 할 수 있지만, 그건 주주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다”라며 “내가 있는 한 공매도와의 질긴 악연을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로 인해 부당한 제도가 바뀔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됐다”고 밝혔다.

악재가 계속 터지면서 셀트리온은 2012년부터 전망공시를 발표하지 않았다. 실적 전망공시가 의무사항도 아닌데다, 구설수를 피하기 위한 조치인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12월 기준 셀트리온의 공매도 잔고는 1조 357억 원이다. 이는 국내 증시 전체 공매도 잔고의 10%에 달한다.

한미약품도 최근 늑장 공시와 공매도 논란으로 증권가의 융단폭격을 받고 있다.

검찰이 한미약품 본사 압수수색을 하고 있는 모습. / 뉴시스

현재도 호재성 정보 사전 유출, 신약 기술수출 계약 파기, 악재성 정보 늑장공시 등 다양한 의혹을 받고 있다.

앞서 한미약품은 지난해 9월 29일 장 마감 후 로슈의 자회사 제넨텍과 1조 원 규모의 표적 항암제 기술 수출 계약을 맺었다는 ‘호재 정보’를 공시했다. 그러나 다음날 장이 시작하고 30분도 지나지 않아 베인거인겔하임과 맺은 8500억 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이 해지됐다는 악재 공시를 해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큰 손해를 봤다.

지난해 9월 30일 오전 9시 한미약품의 주식은 65만 4000원으로 장을 시작했다. 오후 3시 30분 종가는 50만 8000원이었다. 하루 사이에 18.1%가 폭락했고, 순식간에 1조 1687억 원이 날아갔다. 이날 공매도 수량은 10만 4327주였다.

더 큰 문제는 공시 직전 공매도가 급증한 것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의 수사를 통해 이미 공시 전부터 미공개 정보가 새어 나갔다는 점이 밝혀져 관계자들이 구속기소 되기도 했다.

공매도 제도 수술 나선 정치권
정치권에서도 공매도를 손보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한미약품의 늑장공시 및 공매매 사건 이후 이에 대한 공감대는 더욱 커지고 있다.

박용진 의원.

공매도가 수술대에 오른 이유는 명확하다. 공매도로 인한 기업가치의 왜곡과 소액 투자자들의 피해를 막자는 게 취지다.

박용진 의원은 지난해 11월 8일 공매도 기간을 제한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을 통해 유상증자 시 공매도로 인한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가 최소화되길 기대한다는 게 박 의원의 설명이다.

김태흠 의원도 지난해 12월 5일 코스닥 시장에 한해 공매도를 금지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코스닥 시장에서의 공매도를 폐지하되 유가증권시장에서만 제한적으로 가능하도록 한다는 게 골자다.

김태흠 의원.

김 의원은 "증권 공매도는 주가하락 시 유동성을 공급하고 헤지거래 수단을 제공하는 등 시장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도입됐으나 소유하지 않은 증권을 매도함에 따른 결제불이행 위험이나 투기적 공매도로 인한 공정한 가격 형성 저해 등의 부작용을 유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금융위원회도 거래자의 유상증자 참여를 제한하는 등 제도 정비에 나섰다.

개인투자자들도 공매도 금지에 긍정적인 반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공매도 제도는 외국인과 기관에 지나치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공매도는 주식시장의 유동성을 높여 거래를 활성화시키기 때문에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며 “공시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거나 개인투자자들에게도 공매도 기회를 제공하는 등 제도적인 측면을 개선시켜 개인 투자자들의 시장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귀띔했다.

만약 이 법안들이 통과되면 상대적으로 공매도로 인한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도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난관이 예상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0월 1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주식시장(코스피)은 외국인 비율이 30%를 초과하는 국제적인 곳“이라면서 ”공매도 제도는 어느 시장이나 통용되고 있는데 이를 없애거나 위축시켜 매력을 떨어뜨릴 수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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