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맑은 고을 공기가 어찌 이리 됐을까
[기자수첩] 맑은 고을 공기가 어찌 이리 됐을까
  • 정준규 기자
  • 승인 2017.01.24 11: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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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경제뉴스 정준규기자] 저 멀리 회색굴뚝이 연신 숨가쁜 연기를 토해낸다. 거침없이 솟구친 백색기둥은 이내 구름장막을 만들어 바람을 타고 흩어진다. 풍경이 가까워질수록 위압감은 더하다. 폭발을 앞둔 화산마냥 포효하는 연기는 외용만으로도 충분히 위태롭다. 기세에 눌려 달리던 속도도 몸도 절로 움츠러든다. 차 안에 번지는 고약한 냄새는 신세계에 왔음을 알리는 또 다른 신호탄이다. 속히 외부공기를 차단해도 한동안 미간이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정준규 취재부장

소설이나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매일 아침 공단과 소각장 주변을 거쳐야 하는 내 출근길 풍경이다. 삭막한 풍경이 내내 낯설지 않았다. 어디서 본 걸까 고심하다 최근에야 답을 찾았다. ‘인더스트리아’였다. 어릴 적 즐겨본 보던 ‘미래소년 코난’의 산업도시 인더스트리아의 모습이었다. 공장과 굴뚝으로 상징되는 인더스트리아는 산업화 부작용으로 지구대변동을 겪는다. 그 여파로 석유가 고갈되자 도시는 혼란에 빠진다. 석유에 의존해 살아온 인더스트리아 사람들은 폐플라스틱을 뒤지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자연생명력으로 산업화를 탈피하려는 코난의 마을 ‘하이하바’와는 영 딴 세상이었다.

요즘 청주에서 파란 하늘을 보는 게 쉽지 않다. 황사철도 아닌데 하늘은 연일 뿌옇고 누렇다. 대기질을 초토화 시킨 주범은 채 10㎛ 안되는 미세먼지다. 공장과 자동차 배기가스가 주 발생원으로 꼽히는데 아황산가스, 질소산화물, 납 등 이름만 들어도 섬뜩한 성분들이 가득하다. 유해물질을 품은 미세먼지는 대기질을 떨어뜨리고 몸속 깊숙히 침투해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 개발일변도의 중국정부가 미세먼지로 연신 특단의 조치를 내놓는 걸 보면 우리가 체감하고 있는 것 이상의 공포가 존재하는 건 분명하다.

그간 여러 환경 평가에서 청주시는 미세먼지 고위험권으로 분류돼 왔다. 심각성이 전국 최상위권에 속할 정도로 청주는 이제 숨쉬는 공기를 걱정해야할 지경이다. 따지고 보면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성장과 산업화가 도시 최우선 과제로 대두된 건 사실 꽤 오래전 일이다. 청주 곳곳에 산업단지가 똬리를 틀고 요지의 산과 들은 공장과 산업시설로 채워졌다. 굴뚝으로 쏟아져나오는 산업화의 거친 숨은 발전이란 미명하에 하늘과 마을을 뒤덮었다. 여기에 대용량 소각시설과 지역난방공사까지 가세해 그렇지 않아도 과열된 ‘굴뚝 레이싱’에 기름을 부었다.

경제성장을 담보로 주민들이 치러야할 대가는 혹독했다. 중국발 미세먼지에 탓을 돌린다 해도 도시 스스로 양산한 귀책사유는 분명하고도 중대하다. 다른 건 차치하고 맑은 하늘과 공기를 잃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보리밭 출렁이던 ‘하이하바’ 청주는 그렇게 ‘인더스트리아’가 돼갔다. 이쯤되니 목놓아 경제성장을 주창해 온 충청북도와 청주시의 의중이 궁금하다. 산업화의 부산물쯤으로 미세먼지를 가벼이 치부하긴엔 상황이 많이 위중해졌다. 산업단지 개발과 공장유치에 열 올려온 양 지차체가 이 사안을 어떻게 풀어갈지 참으로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도시발전을 위해선 분명 경제성장이 필요하다. 경제성장에 수반된 부(富)는 도시를 살찌워 시민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 채워진 도시 곳간은 구성원들을 위해 고루 쓰여 모두가 살고 싶어하는 도시가 된다. 참으로 아름답고 이상적인 이야기다. 도시가 이런 꽃길만 걸어 발전할 수 있다면 누가 경제성장을 마다하랴. 문제는 방식이다. 금보따리가 당장 눈앞에 있다 쳐도 삶의 터전이 위협받는다면 뭔가 탈이 난 게 분명하다. 주객이 전도된 성장은 불을 보듯 부작용을 쏟아낸다. 무엇을 위한 성장이고 발전인지가 명확치 않다면 상황은 더 위태롭다. “발전은 곧 돈”이라는 구태의연한 공식에서 벗어나 진정 잃어선 안될 것들을 먼저 챙기고 다독여야한다. 수중의 돈은 채우든 비우든 운용이 가능하지만 잃어버린 건강과 자연은 그 길로 끝이 아닌가.

산업화가 인류에게 기여한 바는 분명 크다.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고 전례없는 풍요의 시대를 창출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중요한 걸 잃고 있다면 경로수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왜 그렇게 우리는 변화하기를 주저했나?" 문득 영화 '미래소년 코난' 속 대사 하나가 떠오른다. 맑은 하늘이 그립고 맑은 공기가 그립다. 바다 건너 나라 탓은 그만하면 됐다. 각고의 자정(自淨)을 위해 이젠 뜻을 모아야 한다. 결말이 뻔한 비극이라면 어떻게든 피하는 게 상책이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을 들고 안달복달해봐야 그땐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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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인 2017-01-25 09:09:59
곧 봄이오고 또 황사도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