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누가 가래떡 뽑나요, 다들 사먹지”
“요즘 누가 가래떡 뽑나요, 다들 사먹지”
  • 박상철,이재표 기자
  • 승인 2017.01.2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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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대가 돌아가는 청주 괴산방앗간의 한산한 세밑
쌀 한 말 빻아 떡 뽑아주고, 썰어주고 2만원 받아
주인장 황석봉 씨가 곱게 갈린 쌀가루를 찜기에 넣고 찌는 모습 / 사진=박상철기자

설날 먹는 가래떡은 뽑는다고 한다. 김이 가득 서린 방앗간에서 ‘탈탈탈’ 쇠바퀴와 피대가 돌기 시작하면 구형 방아기계에서 희고 둥근 떡가래가 밀려나온다. 우암초등학교 뒤편에서 수암골로 올라가는 초입에 있는 괴산방앗간의 세밑 풍경이다.


아주 오래전에야 가래떡도 빚어서 만들었다지만 지금은 방앗간에서 떡을 뽑는 이들도 드물다. 시장이나 대형마트에 가면 썰어놓은 봉지떡을 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청주시내 한복판에서 이렇게 피대가 돌아가는 옛날 방앗간을 만난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우리나라 최대 명절인 설날 대표음식은 떡국이다. 예로부터 떡국은 ‘한 그릇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라고 해서 첨세병(添歲餠)이라고 불렀다. 희고, 둥글고, 기다란 떡가래의 생김만 보더라고 온갖 좋은 의미만 담겨있을 것 같다. 실제로 가래떡은 무병장수와 풍년기원의 의미를 담고 있단다.

쇠바퀴와 피대가 돌며 기구가 작동해 쌀을 빻는다 / 사진=박상철기자


가래떡의 재료는 약 99%가 쌀이다. 쌀 소비량은 해마다 줄고 있지만 월별로는 설 명절이 있는 2월의 소비량이 가장 많단다. 2017년 정유년 설은 평년에 비해 빨라 1월의 끝자락에 있다.


괴산방앗간은 수암골 초입에 있지만 주소는 수동이 아니라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 144-3번지다. 가게 앞으로 우암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있었고, 이를 경계로 우암동과 수동이 나뉜 까닭이다. 개천은 30여 년 전에 복개됐다. 이름은 괴산방앗간이지만 주인장 황석봉(1951년생) 씨는 보은 탄부사람이다. 60년 전 문을 연 이가 괴산 사람이었으리라.


“최소한 60년은 된 거 같아요. 내가 청주로 나온 게 1983년인데, 그때부터는 쭉 이 동네에 살았거든요. 그때도 당연히 방앗간은 있었고. 그런데 어느 날 방앗간이 문을 닫더라고요. 집사람이 우리가 한 번 해보자고 해서 시작하게 된 거에요. 동네사람들 말로는 내가 네 번째 주인이라고 하더라고요.”


4대 독자이다 보니 동갑내기 아내 김선옥 씨와 열일곱에 결혼해 6남매를 뒀는데 농사로는 여덟 식구가 먹고사는 것이 녹록치 않아 청주로 나왔다. 직장생활도 만만치 않아 10년 전에 시작한 것이 방앗간 일이다. 그런데 명절 밑이라고 해도 예전 같지가 않다.

먹음직스럽게 나온 가래떡은 잘 말린 후 기계로 자른다 / 사진=박상철기자


“요새 누가 떡을 뽑나요? 나이든 사람들이나 떡을 하지 젊은 사람들은 다 사먹으니까요. 5년 전까지만 해도 명절 밑에는 한 열흘씩 밤낮없이 일했어요. 새벽 다섯 시부터 시작해서 밤 여덟 시, 아홉 시까지. 이번 설에는 한 사오 일 일했나? 그것도 저녁 여섯 시면 일이 끝나요.”


취재를 위해 찾아간 26일 오후에는 동네 주민 A씨네 집의 가래떡을 뽑고 있었다. A씨는 “명절에 자식들 주려고 떡을 뽑는데, 가격이 싼 것도 있지만 좋은 쌀로 금방 뽑은 떡과 정부미, 수입쌀로 공장에서 뽑은 떡은 맛이 다르다”고 했다.


“방앗간 계속하다가는 굶어죽겠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지요. 그래도 이 나이에 두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또 있겠습니까? 푸념 같지만 일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한 감사함도 배어있는 한마디다.
 

쌀 8kg 한 말이면 가래떡 11kg이 나온단다. 굳혀서 썰어주는 공임 5000까지 합쳐서 한 말에 2만원을 받는단다. 예전에는 두 말, 세 말을 해가는 이들도 있었는데 요즘은 대개가 한 말이란다.

괴산방앗간 입구 창에는 정겨운 투로 가래떡 판매 홍보를 하고 있지만 예전처럼 직접 쌀을 가져와 떡을 뽑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 사진=박상철기자


“쌀이나 고추를 빻고 기름을 짜는 것은 방앗간일의 절반 정도라고 보면 돼요. ‘사람이 별 사람 있나, 떡이 별 떡이 있지’라는 옛말이 있잖아요. 송편에 꿀떡, 인절미, 백설기, 시루떡, 가래떡, 절편 등 떡이란 떡은 다 만들 줄 알아야 돼요.”


그나마 노년인구가 많은 단독주택가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 괴산방앗간의 경쟁력이다. 방앗간은 유동인구가 많은 대규모 아파트단지보다 오래된 동네에서 경쟁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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