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식의 여행스케치] 오대산 사찰로 떠나는 명상여행
[강대식의 여행스케치] 오대산 사찰로 떠나는 명상여행
  • 정준규 기자
  • 승인 2017.02.14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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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식 사진작가ㆍ수필가

[강대식 사진작가ㆍ수필가] 매서운 추위가 연신 휘몰아치더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 잠시 주춤댄다. 절기가 입춘(立春)이라 놀라서 그런 것인지 참으로 대견하다. 날씨가 흐리다는 예보를 듣고 서해(西海)로 나가려던 발걸음을 오대산으로 돌렸다. 다른 곳에는 비가 온다고 하니 강원도 오대산으로 가면 눈 속에 파묻히는 행운을 얻지 않을까 하는 바램이 생겨서다.

일찍 출발한 덕분에 길이 밀리지 않고, 이른 시간 강원도 오대산 자락에 있는 상원사(上院寺)에 도착했다. 상원사는 705년 신라 성덕왕 4년 보천(寶川)과 효명(孝明)의 두 왕자가 창건하였다 전한다. 다른 사찰과 달리 상원사는 조선시대 척불정책에도 불구하고 1401년 조선 태종이 권근에게 명하여 불상을 봉안하고 건물을 신축해 주면서 이 인연(因緣)으로 후대에도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번창하였다고 한다. 해방 후인 1946년 선원 뒤에 위치했던 조실(祖室)에서 시봉(侍奉)의 실화(失火)로 건물이 전소되었으나, 1947년 당시 월정사의 주지였던 이종욱(李鍾郁)에 의해 금강산 마하연(摩訶衍)의 건물을 본떠서 중창하였다 한다.
 
상원사로 오르는 길 입구에는 오대산(五臺山) 상원사(上院寺)라는 표석이 크게 세워져 있다. 그리고 조금 더 오르면 좌측에 공(工)자형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이 비석을 ‘관대(冠帶)걸이’라고 한다. 조선 초 세종대왕이 목욕을 할 때 의관(衣冠)을 걸어 놓았던 곳이라고 한다. 왕의 의관을 걸어 놓기 위하여 석공을 불러 돌을 다듬고 세운 후 왕의 의복을 걸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의관을 걸어 놓기에는 불편해 보인다. 이곳부터는 수령 100년은 되었음직한 전나무들이 하늘을 뚫을 기세로 뻗어 있다.

‘번뇌가 사라지는 길’ 입구에는 자기 몸보다 큰 향로를 밀고 있는 동물상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사자모양이면서도 해태 같기도 두 마리의 동물의 얼굴이 악인은 번잡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으름장을 놓는 듯 강인한 모습이다. 위를 쳐다보니 상원사라는 편액을 단 2층 건물이 보이고, 건물로 향하는 돌계단이 천상으로 향하는 길처럼 가지런하게 나를 반긴다.

한발 한발 계단을 오르면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속세에서 가져온 번뇌를 이곳에 털어 버리며 계단을 오를까? 하는 생각을 하니 또 다른 번뇌가 밀려든다. 다 부질없는 것인데 왜 미련을 버리지 못할까. 어제 선거에서 패배한 이유를 분석하고, 누가 도움을 주었고, 누가 배신을 하였나를 생각하며 괴로워했던 지난밤의 부질없음을 털어내기로 했다.

한발 한발 계단을 내디딜 때마다 한 개씩 비워 내리라 마음먹으며 걷다보니 지난 선거에서 서운했던 감정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비우리라 번뇌를. 그리고 마음속에 품고 있던 미움도 씻어 내리라 불어오는 바람에. 억압되어 있던 세속의 잡념을 털어버리고 훨훨 날리라 새처럼. 어느 덧 계단 마지막 자리에 섰다. ‘천고(千古)의 지혜(知慧) 깨어있는 마음’이라는 글귀가 들어온다. 내 마음이 깨달음을 얻었을까? 자문해 보니 오대광명(五大光明)을 받으란다. 세속의 찌든 흔적을 비우며 합장을 해 본다. 부처의 자비가 내 몸속으로 흡수되는 기분이다.

상원사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문수보살을 모시고 있는 사찰이다. 상원사 마당으로 올라가니 좌측 만화루(萬化樓) 건물 앞에 봉황모양의 황금빛 새가 두 날개를 활짝 펼치고 날아오를 듯 당간지주 끝부분에 앉아있는 조형물이 보였다. 산사의 무거운 침묵을 깨며 날아갈 것 같아 생기가 느껴진다. 예전에 왔을 때는 보지 못한 조형물이어서 한참을 둘러보았다.

머리에 왕관을 쓴 모양의 봉황의 긴 꼬리와 당당함이 하얀 눈송이를 맞으면서도 위엄이 있어 보인다. 만화루 안쪽으로 내려가니 머리위에 탱화가 그려져 있다. 문수보살을 그려 넣은 탱화는 생동감 넘치고 아름답다. 거울을 통해 보니 머리를 저치고 보지 않아도 좋다. 가만히 드려다 보면 나 자신이 문수보살 틈에 함께 있음을 알게 된다. 어쩌다 오대산을 찾아드는 나그네 가슴속에 불심이 얼마나 잠재해 있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 이 길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은 찰나(刹那)의 순간이지만 문수보살과 잠시나마 한 공감에서 함께하였음을 느끼리라.

지난 해 여름비가 오는 날 이곳에 들렸을 때는 작은 관로에 물이 흐르고 연잎을 쓴 동자가 개구리랑 노는 듯 한가로워 보였었다. 그리고 그 관로 끝에 의젓하게 뒷짐을 지고 선 동자승의 모습과는 대조를 이루었었다. 지금은 관로가 모두 얼어버리고 눈이 쌓여 오가는 물고기는 보이지 않고, 하얀 눈 속에 서있는 동자승의 해 맑은 의젓함이 웃음을 짓게 한다.

 상원사의 보물은 누가 뭐라 해도 동종임을 부인할 수 없다. 국보 36호인 상원사 동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종이라고 한다. 약 1300년이 된 동종을 걸어 놓은 종각 앞에는 ‘천음회향(天音回香)’이라는 푯말이 이를 뒷받침하듯 세워져 있다. 공후(箜篌)와 생(笙)을 연주하는 천상의 여인이 양각된 종의 표면을 보면 얼굴 표정은 물론 천의(天衣)가 흩날리는 모습까지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이렇게 세밀한 부분까지 양각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기술이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 지경이다.

 

표면이 아주 고르지는 않지만 양각으로 된 무늬만큼은 선명하고 도드라져 있다. 가만히 선녀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름다운 선율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나올 듯 시선을 강탈한다. 하대 끝부분은 전부를 빙 둘러 양각으로 아름다운 불교문양과 부처상을 조각해 놓았다.

 

상원사를 내려와 주차장부터 아래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보통 월정사에서 올라오면 이곳이 선재길의 마지막이 될 테지만 이곳부터 시작하면 깨달음과 치유의 옛길인 선재길의 마지막이 월정사가 된다. 선재길로 들어서면 아치형 다리가 계곡을 건널 수 있도록 해 준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녀 다리 위에는 눈이 쌓여있지 않았지만 오솔길을 벗어나면 소복하게 눈이 쌓여 있어 겨울임을 실감하게 한다. 계곡물은 아직 얼음이 얼어 있고 눈이 쌓여 물이 흐르는 계곡인지 여부를 쉽게 알 수 없지만 몇몇 곳에서는 이미 얼음이 녹아 차가운 계곡물이 얼굴을 내밀고 얼음을 조금씩 녹여가며 흐르고 있다. 얼음 밑으로는 봄이 아장아장 소리를 내며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계곡의 물소리와 나뭇가지를 울리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걷다보면 신선골 출렁다리를 만나게 된다. 길게 줄을 이용하여 계곡을 이어주는 출렁다리는 길이가 그다지 길지 않아 흔들리는 공포를 느낄 만큼은 아니지만 아치형 다리를 걷는 것 보다는 조금 더 운치가 있다. 흔들리는 다리 위에서 깡총 깡총 뛰며 몸을 흔들다 보면 일렁이는 파도에 몸이 묻혀 물결에 흔들리는 착각을 갖게 한다.

널찍한 지방도로로 나와 걷다보면 눈 위를 씽씽 내달리는 차량의 위협적인 모습에 놀랄 수도 있겠지만 탁 뜨인 공간을 한적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상원교를 거쳐 동피골 주차장을 지나면 바람에 쓸려나간 눈들이 계곡에 쌓여 온통 하얀 눈 세상을 만들어 놓은 긴 활주로와 같은 평탄한 곳이 나타난다. 그 눈 속에는 지난 해 봄 예쁜 버들강아지를 피워 올렸던 버드나무가 사열하듯 늘어서 있다. 나무들이 길게 한 줄로 사열하듯 서 있는 것이 물길과의 구분을 지을 수 있는 경계처럼 보인다.

선재교를 지나 더 아래로 내려가니 오대산장이 보인다. 입구에는 “나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만나는 여행... 하늘에 별이 지상에 내려와 사는 풍경~ 그 속으로 가시오”라는 글귀가 마치 시끌벅적한 도심에서 허덕이며 살아온 사람들을 꾸짖는 문구처럼 보인다. 이 글을 써 붙인 주인장은 오대산의 정기를 마시며, 아름다운 별과, 시원한 바람과, 상큼한 아침공기와, 달콤한 물을 마시며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데 주인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선재길의 중간 쯤 다다랐을 즈음 섶다리가 보였다. 영월에나 가야 볼 수 있던 섶다리를 보니 반가웠다. 계곡을 가로질러 4곳에 각 2개의 기둥을 세우고, 위를 솔가지를 잘라 만들어 놓은 섶다리는 세멘기둥만큼이나 튼튼하게 보였다. 관광객을 위하여 다리를 지루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형태로 만들어 놓은 배려심이 고맙다.

어린 시절 청미천을 건너다닐 때 수십 미터나 되는 내를 섶다리로 건너다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다리가 섶다리 형태로 만드는 것인 줄 알았다. 이후 편리성을 더하여 구멍이 숭숭 뚫린 철판을 나뭇가지 대용으로 상판에 올려 다리를 놓기도 했다. 그러나 철판으로 만든 다리는 잘못하면 발뒤꿈치가 구멍에 빠져 고무신이 벗겨지고 운수 나쁜 날은 고무신이 아래로 떨어져 물에 떠내려가기도 했었다.

섶다리를 지나면 강원도 문화재 제42호로 지정된 수십기의 부도가 모여있는 월정사 부도군(浮屠群)이 나온다. 커다란 전나무들이 호위를 하듯 부도를 감싸고 있는 가운데 모셔진 고승들의 부도군은 모양과 형태도 갖가지다. 작고 초라한 것부터 돌거북이 비석을 등에지고 있는 커다란 형태도 있다. 예전에 만든 것보다 최근에 만든 부도가 크고 웅장한 것으로 보아 현대에 와서 허세가 더 커졌나 보다.

이 세상에 와서 다시금 다른 세상으로 돌아가는 윤회를 기본으로 설파하며 살아왔던 분들께서 이곳에 무엇을 남기고 싶어 하신 걸까? 세상에 와서 잘 살다왔다고 표시라도 해 놓아야 다음 생에 다시 돌아왔을 때 자신의 흔적을 알아 볼 수 있기 때문일까? 선승들의 고결하심을 범부가 어찌 그분들의 크고 높은 뜻을 알겠냐마는 눈이 쏟아지는 부도군(浮屠群)을 뒤돌아보며,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차이는 아닌지 우문(愚問)을 던져 본다.

전나무 숲길을 지나 내려오자 ‘마음의 달이 아름다운 절’이라는 월정사가 보인다. 강원도 전통사찰 1호인 월정사는 신라 자장율사(慈裝律師)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의 정골사리(頂骨査利)를 모시어 적멸보궁(寂滅寶宮)에 봉안하고 이곳에 초가를 세워 창건하였다고 한다. 아치모양의 만월교를 건너는데 함박눈 펑펑 쏟아진다. 계곡과 산과 사찰이 쏟아지는 눈 속에 묻혀 편안함을 준다. 아무도 없을 것처럼 고요하다. 눈이 쏟아지는 이 오대산 월정사에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용금루(湧金樓)를 지나 경내에 오르자 함박눈을 맞으며 석탑을 돌며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을 도처에서 볼 수 있었다. 아이들과 같이 사찰을 찾아 즐거워하는 어린 부모들과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이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아른댄다. 카메라 장비를 가져와 촬영에 열중인 외국인도 있고, 사진을 촬영하러 온 동우인도 많다.

높이 약 15.2m로 국보 제48호인 월정사팔각구층석탑은 안정감 있게 자리를 지키며 서 있고, 그 옆에는 높이 180cm로 연꽃 좌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꿇은 듯 앉아 있는 보물 제139호 월정사석조보살좌상은 손에 무엇인가를 잡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는 공양보살상과 비슷하다고 하는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보살상은 근례에 다시 만든 모조품이고 진짜는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내가 처음 진짜 보살상을 이곳에서 만난 것은 20살 시절이다. 당시에도 이 보살상의 모습이 특이하여 보살상 옆에 서서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는데 너무 외부에 방치되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지금은 모조상을 만들어 세워 놓았다. 구층석탑과 하얀 보살좌상의 색감이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언밸런스(unbalance)가 나기도 하지만 전쟁의 포화속에서도 이나마 견뎌온 것이 어디겠는가.

 

 

금강루(金剛樓)로 향했다. 일반적인 사찰에서는 사천왕문 다음에 불이문(佛二門)이 있는데 이곳 월정사는 금강문을 두고 있다. 금강문의 오른쪽에는 부처님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은 움금강역사상이라고 불리는 나라연금강이 있으며, 왼쪽으로는 훔금강역사상이라 불리는 밀적금강이 대문에 그려져 있다. 금강루를 지나면 천왕문이 다가온다.

사대천왕이 눈을 부라리고 나를 응시한다. 선재길을 걸으면서 깨달음을 얻었는지 묻는 듯하다. 잠시 서서 내가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머리에 번쩍 스쳐갈 깨달음은 얻지 못했어도 마음 한 구석에 숨어 있던 번뇌는 씻어내고 왔지 않은가. 다시 고개를 들고 사대천왕을 바라보았다. 험한 얼굴에서 미소가 번져 나오는 것 같다.

그 정도면 되었다는 뜻일까.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이곳 천왕문을 지나면 월정사 일주문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서 선재길이 끝이 났다. 점점 더 쏟아지는 눈송이가 마음을 편하게 한다. 아치다리를 건너 주차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다시 눈 속에 묻힐 오대산의 설경(雪景)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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