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단상
[기자수첩]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단상
  • 이주현 기자
  • 승인 2017.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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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기자

보수적이던 기업 문화가 유연해지고 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요즘, 내부개혁을 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제는 하는 것 없이 책상머리에 오래 앉아 있고, 상사의 눈치를 보며 퇴근시간만 기다리는 분위기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근로자들은 짧은 시간 집중해 성과를 내고, 사측은 ‘저녁 있는 삶’을 존중해주는 풍토가 자리 잡고 있다.

유연해지는 기업 문화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 조직의 업무 유연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기업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최근 주 35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된 IT벤처기업 ‘우아한형제’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지난 2월 17일 월간 전사발표 자리에서 직원 복지제도 확대를 발표했다. 이중 직원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 것은 바로 ‘주 35시간 근무제 도입’이었다고 알려졌다.

현재 우아한형제들은 매주 월요일은 오후에 출근하고 평소 점심시간은 1시간 30분을 활용하는 등 근무시간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앞으로는 기존 퇴근시간을 30분 당겨 오후 6시에 하고, 하루 7시간 30분 근무를 원칙으로 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직원들의 저녁 있는 삶을 존중하고 보장하기 위한 김 대표의 배려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15년 6월 롯데그룹이 인수한 롯데렌탈(구 KT렌탈)도 직원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가족친화인증 기업인 이 곳은 사내 문화 개선을 위한 ‘다양성 위원회’ 활동을 통해 주 40시간 자율출퇴근제와 여성인재 멘토링, 자율형 성과 프로젝트를 고안하는 등 차별화된 복지제도를 만들고 있다.

자율출퇴근제의 경우 하루 4~12시간의 근무 범위에서 주 5일 기준, 40시간 근무 조건으로 출퇴근 시간을 자율적 선택하고 있어 직원들로부터 호응이 좋다. 실제로 자율출퇴근제 시범운영 참여 설문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1.9%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제도 시행 후 ‘삶의 질이 향상됐다’는 응답이 61.8%로 가장 많았고, 어린 자녀를 둔 기혼자들의 만족도가 월등히 높았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300여 개 기업들의 92.8%가 제도시행 결과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대한상공회의소를 통해 확인했다. 근로자 측면에서는 ‘일과 가정 양립에 도움이 됐다’는 응답은 96.7%였고, ‘직무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응답은 96%였다. 기업 측면에서도 '생산성 향상'(92.0%), '이직률 감소'(92.0%), '우수인재 확보'(87.3%) 등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는 것으로 파악됐다.

‘직급 호칭도 없애자’… 수평적 문화 탄생
직원 간 수평적인 문화 확립을 위해 직급 호칭을 없앤 곳도 있다. 삼성전자, CJ, SK텔레콤, 제일기획, 아모레퍼시픽, 넥슨코리아 등이 그 예이다. 직급이 깡패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기업의 대부분은 수직적 구조인데, 직장을 다녀본 사람은 이 구조에서 나오는 ‘갑질 문화’를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호칭을 없앤 것이다.

분명 한계도 있다. 호칭을 통일해 ‘님’이라 불러도 직장 상사의 마음속에 ‘수직적 위계’가 있다면 제대로 된 제도의 안착은 힘들게 뻔하다. 절대 본인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자연스러운 분위기 형성을 위해 직장 상사는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구성원들도 노력해야
개인적으로 회사를 결정하는 데 있어 임금과 복지 혜택보다 건강한 조직문화가 우선이라 생각한다. 사실 어느 직장에 가도 일이 어렵다기보단 사람이 어렵다. 옆 동료직원과 마음이 불편하면 출근하기도 싫어진다.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직원들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요구된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업무에 선을 그어서도 안 된다. 규모가 큰 회사는 파트가 체계적으로 나눠져 있어 본인 할 일만 하면 무리가 없다. 그러나 작은 규모의 회사는 대개 A부터 Z까지 업무를 도맡을 수밖에 없다. 가령 ‘나는 디자이너인데, 왜 이런 일을 해야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회사가 대체 뭐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건강한 조직문화를 위해서는 일정 부분 개인의 희생이 요구된다. 자신만 일하고 남들은 놀고 있다는 오류에 빠지기도 쉽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사측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노력도 요구된다. 또, 구성원 개개인이 자기 존재 가치를 높이기 위한 프로의식을 가졌으면 한다. 누군가 그랬다. 진정한 프로는 일하고 쉬는 구분을 구분할 줄 안다고. 우리 모두가 그랬으면 한다.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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