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식의 여행스케치] 향긋한 봄 내음이 물씬 풍기는 '통도사(通度寺)'
[강대식의 여행스케치] 향긋한 봄 내음이 물씬 풍기는 '통도사(通度寺)'
  • 정준규 기자
  • 승인 2017.02.2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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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식 사진작가ㆍ수필가

[글ㆍ사진 강대식] 일출을 맞은 울산 강양항 명성도의 아침은 시린 공기보다 더 따뜻하게 아름다웠다.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은 오메가를 만들고, 주변의 삼라만상은 화려한 의식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다. 바다를 열어 제치고 강인한 힘으로 솟구쳐 오르는 태양은 세상을 지배하는 최고의 신(神)이다. 누가 그 거침없는 행동에 이의를 제기할까. 바라만 보아도 흐뭇하고, 따뜻한 존재임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우러러 볼뿐. 언제 보아도 신비스럽고, 온화하며, 거역하지 못한 힘을 가진 지존(至尊)의 존재이다. 그로인하여 명성도의 모습도 후광을 입은 그대로 신비스러운 존재가 되어 나타난다.

아침을 먹고 찾아간 김해공고의 매화(梅花)는 아직 만개(滿開)를 하지 않고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화려한 매화를 기대하고 왔지만 아직 시기가 이른가보다. 서둘러 통도사로 향했다. 통도사의 홍매(紅梅)는 벌써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소식을 접한 터라 마음이 조금 조금해 진다. 시간이 지나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는 것을 보아온 터라 서두르는 것이 최선이다.

양산 통도사 입구가 나타났다. 웅장한 입구가 찾은 이를 외소하게 한다. 한겨울의 추위를 견딘 소나무들이 따뜻한 햇살을 기다리고 있다. 묵었던 지난해의 잎들을 모두 새잎으로 치장하기 위해서다. 도로를 따라 좌측은 모두 소나무 군락지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금강송의 자태가 기분을 좋게 한다.

산문을 지나면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이 이어지는데 이 숲길을 들머리 솔숲이라 하고, 별칭으로는 무풍한송(無風寒松)이라고도 한다. 산문에서 일주문까지 약 1km는 사람만 통행이 가능하다. 포장이 되지 않은 흙길을 걸어 갈 수 있다. 옆으로 흐르는 물소리와 흙냄새를 맡으며 걷다보면 세속의 찌든 껍질 하나를 벗어버리는 느낌이다. 어디를 가든 콘크리트로 덮어 버린 도로를 다녀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흙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소나무들은 아치를 만들 듯 도로로 기울었고, 개중에는 도로를 넘어와 물가로 향한 것도 보인다. 새소리에 발맞추고, 짙은 솔 향을 음미하다보면 어느 덧 발걸음은 일주문(一柱門)에 달한다. 영축총림(靈鷲叢林)이라는 현판이 통도사가 어떠한 사찰인가를 보여준다.

통도사는 선덕여왕 15년(646) 대국통(大國統) 자장율사에 의하여 창건된 산중에 자리 잡은 수행불교(修行佛敎)의 중심도량이다. 통도사는 부처님 사리와 금란가사(金欄袈裟)가 모셔져 있는 불보(佛寶)사찰이며, 우리나라 최초로 대장경을 봉안한 법보사찰이기도 하다. 그리고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설치하여 전국의 모든 승려들을 이곳에서 계를 받아 득도하게 함으로써 승보(僧寶)와 법보(法寶) 등 불교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삼보(三寶)가 이곳 통도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통도사의 대웅전은 실제로 부처님이 살아 숨 쉬고 계시는 공간이기 때문에 다른 사찰의 대웅전과는 다른 종교적 상징성을 갖고 있다.

일주문(一柱門)을 지나면 천왕문(天王門)과 불이문(不二門)이 나오고, 우측에는 통도사의 명물인 자장매(慈藏梅)가 피어 있다. 남녘의 봄소식은 이곳 자장매의 개화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다른 꽃들이 한파(寒波)를 견디느라 몸을 움츠리고 있을 2월에 날씨가 조금만 포근해지면 여지없이 자장매는 제일먼저 봄소식을 알리겠다며 분홍빛 꽃망울을 터트린다.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을 서둘렀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장매를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다. 매화를 바라보고 있자니 뭉클한 감동이 밀물처럼 밀려든다. 일 년 만의 재회이기도 했지만 지난 번 보았을 때보다 더한층 생기 있고 요염한 자태다. 연분홍입술에 달린 작은 물방울이 진주처럼 흔들리며 가슴을 먹먹하게 했고, 숨이 멎을 것 같다. 지체할 수 없다. 촉촉이 젖은 몸매에 카메라 렌즈를 들이댄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매화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담았다. 수십 차례 아니 수백 번 눈과 마음으로 애무한들 어찌 성에 차랴. 이제 헤어지면 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매화의 향기와 모습을 최대한 느끼며 지금을 즐겨야 한다. 오랫동안 나 혼자 소유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조금 물러나니 기다렸다는 듯 내 자리로 중년의 남자가 파고든다. 역시 자장매는 만인의 연인이다. 어찌 나 혼자 소유하리. 진정한 사랑은 소유가 아니다. 사랑은 그리움이고 그저 바라봄이다. 사랑은 상처 나지 않도록 가만히 제자리를 지키도록 놓아두는 것이리라. 이제 떠나지만 내 너를 두고두고 그리워하리라 자장매(慈藏梅)여!

조금 더 올라가면 대웅전이라 할 수 있는 건물의 남쪽문인 금강계단에 이르게 된다. 정자형(丁字形) 법당 사면에는 각각 다른 이름의 편액(扁額)이 걸려 있고, 동쪽은 대웅전(大雄殿),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은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쓰여 있다. 이 건물의 바로 뒤쪽에는 통도사의 중심이 되는 금강계단 불사리탑(佛舍利塔)이 있다.

통도사 경내 곳곳을 돌아보면 역사가 흐른 만큼 덕지덕지 세월의 무게도 쌓여 있다. 퇴색된 단청이 오히려 더 귀하고 값져 보인다. 아무리 문명이 발전하고 첨단으로 치닫는다 하여도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편안하게 해 주는 기술은 없는 듯하다. 천천히 거북이 걸음걸이로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면 오랜 시간 선조들의 손길이 어루만져진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이 존재하다가 바뀐 것처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모해온 이 사찰의 내력만큼이나 이야기 거리가 숨겨져 있을 것인데 그 비밀을 모두 풀어헤치기 어렵다는 것이 아쉽다.

오층석탑으로 올라가기 위하여 통도천(通度川) 위에 설치된 아치형 돌다리인 일승교를 건넜다. 오층석탑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른 계단으로 되어 있다. 돌계단 하나하나를 세며 걷다보면 소나무에 가려진 오층석탑을 만날 수 있다. 바람이 불어오면 솔잎이 바람에 떨며 일렁이는 잔가지에서 솔 향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온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통도사 경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웅장하며 아름다운 기와의 곡선이 이어진 경내가 이렇게 매력적인 모습을 갖추었는지 처음 알았다.

하늘을 치켜 받들고 서있는 소나무는 표피가 붉은 금강송이다. 우리 토종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그 사잇길로 걸음을 옮기면 솔잎 새로 흩뿌리듯 쏟아지는 햇살이 나그네의 근심을 덜어 준다. 선승(禪僧)이 말없이 부처님 전에 목탁만 두드려도 속세의 불자(佛子)는 목탁소리를 들으며 번뇌(煩惱)를 씻고, 선승의 염불이 경내(境內)에 울려 퍼지면 불자는 두 손은 합장으로 불심(佛心)을 지핀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요, 마음에 쌓여있는 욕심과 미련을 정화하는 요소가 되어 참된 진리를 실천하라 알려주니 불심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라 선(善)한 마음을 갖기를 원하는지 여부에 달린 듯하다.

석탑을 내려와 서운암(瑞雲庵)으로 향했다. 서운암은 삼천불전을 모신 곳이다. 암자치고는 크고, 보통 절집 치고는 규모가 크지 않은 곳이지만 매화가 피는 계절에 가면 아름다운 매화와 된장을 만들기 위한 수백 개의 장독이 줄을 맞추어 나열한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때가 이른지 서운암의 매화는 아직 꽃봉오리가 작은 것이 한참을 더 기다려야 꽃망울을 터트릴 것 같다.

바람이 대나무를 간지르며 달아난다. 큰 몸통이 휘도록 바람을 쫓던 대나무도 장난처럼 힘에 겨운지 제자리로 돌아오고, 심술 난 바람은 다시 또 대나무를 희롱한다. 아무리 쫓아도 대나무는 바람을 잡지 못하고, 화가 났는지 서걱이는 날선 소리를 쏟아내며 아우성을 쳐도 바람은 그저 장난처럼 희롱을 멈추지 않는다. 남녘의 봄이 다가온다는 소식이라도 전해주며 놀아주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무심한 장독대는 미동도 하지 않고 속으로 웃고 있을 뿐이다. 봄이 한 움큼 내려앉았음을 알고 있기에.

 

     강 대 식 사진작가 · 수필가

      ▶충북사진대전 초대작가

      ▶충북 정론회 회장 

      ▶푸른솔문학 작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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