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구멍 난 하늘, 구멍 난 재난시스템
[기자수첩] 구멍 난 하늘, 구멍 난 재난시스템
  • 박상철 기자
  • 승인 2017.07.20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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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쬐는 햇빛에 시들시들해진 농작물이 힘없이 푹푹 쓰러졌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내린 충북도의 총 강수량은 218.2㎜로 평년 413.1㎜ 대비 52.8%에 수준에 그치며 심각한 가뭄에 시달렸다. 농민들의 노력에도 수확한 감자의 씨알은 작았고 옥수수며 고추의 작황도 예년에 비해 나빴다. 농민들은 비가 내리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마침 7월 1일부터 시작된 장마. 3일 새벽 4시30분에는 세종·청주에 호우경보가 발효되면서 청주에만 97.6㎜의 폭우가 쏟아졌다. 당일 무심천을 지나던 80대 노인이 실족하면서 사망에 이르는 사고도 발생했다. 그렇게 비는 7월1~11일까지 충북 평균 251.8㎜가 내렸고. 특히 청주에는 329.7㎜의 많은 비를 뿌렸다.

그렇게 이번 장마는 순순히 지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16일 한반도 부근에서 오르락내리락하던 장마전선이 북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북태평양고기압에 막혀 충청지방에 머물며 비를 뿌렸다. 아니 퍼부었다. 1995년 8월 25일 하루 이 지역에 293㎜가 내린 이후 22년 만에 가장 많은 강수량 290㎜의 물 폭탄을 맞으며 ‘공포의 휴일’로 기록됐다.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는 참혹했다. 시간당 최고 91.8㎜의 비가 쏟아지면서 청주시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논밭은 황토색 물감을 풀어 놓은 마냥 온통 흙탕물로 뒤덮였다. 마을을 잇던 도로는 엿가락처럼 휘고 끊어졌으며, 하천에는 많은 차들이 물 위를 어지럽게 둥둥 떠다녔다. 주택으로도 흙탕물이 무섭게 쏟아졌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바라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청주 외 괴산 보은 등 5개 시·군에도 피해가 잇따랐다. 7월20일 충북도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인명피해는 사망 7명, 이재민 1892명이 발생했고 도로 27곳, 하천 85곳, 주택 849동(전파1, 반파6, 침수867), 차량침수 1367대 등이 피해를 봤다. 지역별 피해액은 청주 148억20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괴산 70억2000만원, 보은 36억3000만원, 진천 15억3000만원, 증평 13억4000만원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가산단으로 조성중인 총 328만3844㎡ 규모의 오송제2생명과학단지(공동 사업시행자 한국산업단지공단, 충북개발공사) 내 저류지 둑이 터지면서 인근 수 많은 농경지와 주택이 물에 잠겨 주민들의 아우성이 빗발쳤다. 15만톤을 저장할 수 있는 저류지에 배수로가 달랑 한 개만 설치돼 공사장에서 쓸려 내려온 수많은 토사를 감당하기에는 벅찼다. 결국 한꺼번에 몰린 토사에 둑이 무너졌고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이 떠 안게 됐다.

과연 이번 청주 지역 폭우 피해는 천재(天災)일까? 인재(人災)일까? 다수의 시민과 전문가들은 인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당일 기상청이 예보한 청주지역 강수량은 30~80mm로 실제와 큰 차이가 발생했다. 기상예보가 크게 빗나간 것이다. 게다가 3시40분부터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7시10분이 돼서야 ‘청주호우경보 주의하라’는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됐다. 당시는 시간당 100mm에 육박하는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으로 주민들로서는 하나 마나 한 '늑장 통보'였던 셈이다.

또한, 모든 119는 현장으로 나가 전화를 받지 않았고 행정기관도 통화를 할 수 없어 시민들은 SNS와 인터넷에 의존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심지어 재난방송도 10시가 돼서야 전파를 탔다. 특히 청주시는 폭우 발생 이틀 전 트위터를 통해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설치한 충북대 정문 우수저류시설 덕분에 강수량 330mm에도 끄떡없다’는 글을 올렸지만 결국은 폭우 앞에 맥없이 무너졌다. 내덕동도 마찬가지다. 140억 원을 투자해 만든 우수저류시설도 무용지물. 인근 주민들은 침수를 피해갈 수 없었다.

이번 장맛비로 충북도와 청주시 등 지자체의 자연재해에 대한 안일한 대응과 미흡한 대처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금까지 청주시가 다른 지역에 비해 큰 자연재해가 없다보니 어느 정도의 자연재해를 견딜 수 있는지 잘 몰랐다고는 하나 이번 사태는 행정기관의 늦장 대응이 피해를 키웠다는 뭇매는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매번 충북도뿐만 아니라 많은 지자체들이 자연 재해에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지만 이번 폭우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우수저류시설은 재 구실을 못했고 관련 기관은 뒤늦게 대책 마련에 급급한 모습이다. 전문가들 역시도 부실한 긴급재난 시스템이 피해를 기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흙탕이 된 논과 밭을 바라보는 농민의 마음은 어떨까? 주택이 침수돼 오갈 곳 없는 시민들의 마음은 누가 헤아려 줄 것인가? 아직도 많은 피해를 본 시민들은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 천 명의 공공인력과 자원봉사들이 동원돼 복구 작업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루바삐 긴급재난 시스템을 전면 점검해야한다. 또한, 이번에 많은 피해를 본 지역을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해 복구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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