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안의 할아버지, 알고 보니 ‘실신’
탕 안의 할아버지, 알고 보니 ‘실신’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7.12.10 0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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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한 내과원장, 목욕탕서 의식 잃은 노인 구해
혈류 느려져 일시적 실신…‘응급실에 종종 실려와’

며칠 전 대중목욕탕에 갔는데 온탕 속에서 눈을 감고 기대앉은 할아버지가 있었다. 보기에도 느긋한 자세였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표정이 이상하다. “괜찮으세요?”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다. 실신상태였다. 주위에 급히 도움을 청하고 119를 불렀다.

탕 밖으로 꺼내는데 경기를 한다. 119구급대가 올 때까지 전신을 주무르고 흉부압박을 하는데, 목욕탕의 동네 아저씨들이 의사인 나보다 더 능숙하다. 할아버지의 맥을 잡아 보니 정상을 회복하고 있었다. 119가 도착했고 나는 다시 탕으로 돌아왔다.

목욕탕 이미지 사진 출처=프리큐레이션, pakutaso.com

청주에서 내과를 하는 의사 P원장이 “올해 내가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 같다”며 12월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정리한 것이다. P원장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자랑할 일도 아니다”라면서 기사로 쓰는 것을 극구 만류했다. ‘주의를 환기하는 차원에서 익명으로라도 기사를 쓰겠다’고 하니 “그건 좋다”고 했다.

P원장은 “레지던트 시절 회진을 돌다가 숨을 안 쉬는 환자를 발견하고 주저하지 않고 달려들어 ‘마우스 투 마우스(mouth to mouth)’로 인공호흡을 했던 아래연차가 생각난다. 그 환자는 돌아가셨던 걸로 기억한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P원장은 “사실 대중목욕탕에 간 것은 몇 년 만이었다. 전날 과음을 해서 피로를 풀러 갔던 것인데 뜻밖에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다음날 후배에게 이야기하니 ‘시아버지도 그렇게 탕에 들어갔다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경각심을 주기 위해 글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목욕탕 실신은 왜 발생하고 얼마나 위험한 걸까? 또 발생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하민석 청주 효성병원 응급실 진료과장은 “목욕탕이나 찜질방 등에서 의식을 잃어 응급실로 실려 오는 환자가 종종 있다. 응급실에서는 흔한 환자 중에 하나다.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아 살이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로 오는 경우도 있다”고 운을 뗐다.

하민석 과장은 또 “기저질환으로 인한 경우도 있지만 온탕이나 찜질방에 들어갈 경우 혈관이 이완돼 혈류의 흐름이 늦어지거나 일시적으로 끊겨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간이 오래 경과하거나 의식을 잃고 쓰러질 때 머리 등을 다치게 되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혈액은 산소를 운반하기 때문에 뇌로 가는 산소 양이 적어지거나 끊기게 되면 의식을 잃을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목욕탕이나 찜질방에서는 주위 사람의 상태를 살피는 것이 미덕일 듯하다.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지 않을 정도로만 말이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냉온욕의 경우에는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다. ‘심장질환이나 고혈압 환자, 임산부, 술을 마신 사람들은 이용하지 말라’는 사우나 앞의 문구를 결코 가볍게 보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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