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싸우겠다, Me too!
나도 싸우겠다, Me too!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8.03.02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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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too, #with you운동. 사진=뉴시스

고등학교 때까지 배웠던 영어는 어디로 간 것일까? 한국언론재단 단기연수 차 미국을 두 차례 다녀오고, 괌이나 하와이로 여행을 다녀올 때도 웬만하면 영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서툰 영어라도 한마디 내뱉었다가 본토 영어 공세가 쏟아질까 겁이 나서였다.

맥주 두 잔을 시킬 때 ‘Two glasses of beer’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나 일부러 ‘Two beer’라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상대가 알아들으니까, 그래야 쓸데없는 걸 물어보지 않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사용한 표현 중 하나가 ‘Me too’였다. 아시다시피 ‘나도’라는 말인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그걸로 하겠다’ 등 다양한 쓰임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스테이크를 주문하면서 고기는 덜 익힐지, 바싹 익힐지, 소스는 데미글라스로 할지, 샤토브리앙으로 할지 판단이 서지 않으면 그냥 앞사람을 따라 “미투!”라고 하면 ‘만사 OK’였다.

이렇게 가볍고 실용적인 ‘Me too’가 무겁고 의식적인 ‘Me too운동’이 되어 한국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이 운동의 시작은 미국이라고 하나 미국사회를 뒤흔들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하고 지속적인 반향이 예상되고 있다.

‘Me too운동’은 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로 ‘나도 당했다’는 의미로, 할리우드 유명 제작자가 30여 년 동안 신인여배우들을 성적으로 농락한 사실이 폭로되면서 이슈화됐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가해진 성폭력(추행‧강간)의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사례를 잇달아 폭로하면서 ‘혼자가 아니다’라는 심리적 연대를 형성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연대의 범위가 피해자가 아닌 여성, 가해자가 아닌 남성, 심지어는 과거의 경미한 가해를 자성하는 남성에게까지 확장되며 이제는 ‘나도 공감한다’는 수준이 아니라 ‘나도 싸우겠다’는 투쟁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이유는 뭘까? Me too의 저격대상이 권력과 권위로 무장된 최강자이기 때문이다. 성 범죄자를 잡범 취급하며 잡도리해온 검찰 고위간부가 후배 여검사를 주무르고, 그 권위에 눌려 소극적으로 항의하자 되레 인사 상 불이익까지 줬다.

우리나라 최대 연극단체의 연출가는 여배우들을 불러 상습적으로 안마를 시키고, 연극 연습을 빙자하며 여배우의 몸을 노골적으로 만졌다. 심지어는 여배우를 강간해 임신케 하고 낙태에 이르게도 했다. 성폭력이 진행된 기간과 범위를 보면 변명의 여지가 없는 ‘더러운 욕망’의 표출이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돼온 권위 있는 원로시인도 후배 여시인의 시를 통해서 술자리에서 주변의 눈치도 보지 않으며 후배 여시인을 마구 주물러대는, 그래서 빌려 입은 원피스를 구겨놓는 사람으로 묘사됐다.

이밖에 조연이지만 감초 역할로 1000만 관객 동원의 보증수표가 된 인기배우, 대학 선배이면서 성공한 배우가 되어 학교로 돌아온 연예인 교수도 Me too운동으로 인해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났다.

오래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한 피해자의 고백만으로, 가해자를 재단(裁斷)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e too는 피해자들의 정신적 아픔을 치유하고 가해자들이 응당한 처분을 받는 순간까지 기세가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들로서는 피해에 대한 기억을 안고 사는 것도, 그것을 다시 들추어내는 것도, 그로 말미암아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도 온전히 고통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피해자의 고백을 신뢰하고 응원하는 것은 그 처절한 진정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Me too는 파괴적이다. Me too가 부수는 것은 개인의 영육을 송두리째 억압하고 통제하는 은밀한 권력과 그에 짓눌려 즉각 항거할 수 없었던 구조적 모순이다. 그것들을 파괴할 때까지 우리는 Me to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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