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악몽, 언제쯤 깰까
응급실 악몽, 언제쯤 깰까
  • 이주현 기자
  • 승인 2018.08.01 22: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의료계는 지금 악몽을 꾸고 있다. 악몽이라도 좋으니 그저 꿈이었으면 한다. 그런데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하다. 괴롭고 힘들다.

악몽의 주 무대는 응급실이다. 촌각을 다투는 이곳에서 의료인들은 응급환자에게 집중하기 어렵다. 일단 주변에 주취자가 있다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잘못하다간 이들에게 욕먹는 건 기본이고 두들겨 맞는다. 술에 취한 사람의 힘이 어찌나 센지 맞으면 어디가 부러지거나 끝내 피를 본다. 맞는 이유? 딱히 없다.

신고를 받고 경찰이 온다. 가해자는 선처를 구한다. 술에 취해 판단이 흐렸다거나 의료인의 불친절을 변명으로 해댄다. 단골 멘트다. 경찰에서도 가해자가 초범이거나 술에 취해 심신미약 등 상태였다며 선처를 호소하면 너그러워지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반성까지 하고 있다고 하면, 그는 자유의 몸이 된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가해자는 일상에 복귀한다.

이후 의료계는 응급실 내 폭행 재발을 막기 위해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외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공허하다. 누가 이 외침을 듣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국민의 공감대를 얻기에 충분한 사안이지만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왜 일까. 이유를 알 수 없다.

아, 맞다. 악몽을 꾸고 있었지. 이제 악몽에서 깨 볼까. 레드선. 어라? 눈을 감았다 떠도 웃고 있는 주취자가 보인다. 꿈이 아니다. 악몽 같은 현실이다. 의료인들의 절규가 귓가에 맴돈다. '언제쯤 악몽에서 깰까.'

각색한 내용이지만 최근 응급실에서 벌어진 폭행사건의 과정과 다를 게 없다. 사건이 터지면 의료계는 분노하고 국민들의 관심을 조금 받는가 싶더니 쉽게 잊힌다. 더 이상 의료계의 문제로 치부될 사안이 아닌데도 이슈화하기가 어렵다.

아쉬워서 하는 말이다. 전북 익산 응급실 폭행 사건을 계기로 의료인 폭행을 엄하게 다스려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끝내 꽃을 피우지 못했다. 지난 3일부터 오는 2일까지 진행되는 이 청원은 마감 하루 앞둔 지금, 청와대 답변을 듣기 위한 20만 명 공감을 이끌어내기에는 한참 모자라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충북의사회, 대전의사회 등 지역의사회는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이런 와중에 의료계는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지난달 31일 구미차병원 인턴을 쇠트레이로 때린 20대 환자가 전과가 없고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불구속 수사를 받는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다. 경찰에 체포된 지 두 시간 만에 풀려나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의료계가 힘이 빠지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그동안 의료계는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등 전방위적으로 움직였지만, 이 같은 결과가 또 나오니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비록 구미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충북의사회도 남 일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다.

충북의사회는 1일 성명을 통해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의료계 및 보건의료 단체들은 유감표명과 재발방지 및 엄벌에 대한 요구를 해왔으나 정부는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적극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마저 응급의료법에 의한 가중처벌로 일벌백계해 재발방지를 위한 경종을 울려야 함에도 단순폭행 건으로 축소시켜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응급실 내 폭력은 단순한 개인 간의 폭력사건이 아니며 절체절명 순간에 꼭 치료받아야 하는 선량한 다수의 환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서 절대 발생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의 허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충북의사회는 "그동안 대한의사협회 주도로 응급실 내 폭력방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변화시키고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캠페인을 벌여왔다"며 "이 제도 요건인 20만 명의 청원 요구가 있어야 청와대 관계자 등이 답하는데, 이런 중대한 문제를 20만 명이 넘으면 해결해주고 안 넘으면 해결을 안 할 건지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주취자 폭력으로 인해 대한민국 응급의료가 고통받고 있는데 20만 명의 숫자에 연연해 청와대가 답을 주느니 마느니 결정한다는 게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라며 "응급실 의료인들의 고통이 충분히 전달됐다고 보고, 응급실 내 폭력은 절대 용납되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얼마나 더 외쳐야 메아리가 들려올까. 의료계는 이제 답을 듣고 싶어한다.

이주현 기자. 지역 의료계 소식을 담당하고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