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아 미안해
정인아 미안해
  • 박상철
  • 승인 2021.01.1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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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전쟁 영웅 아킬레스(Achilles). 그의 어머니 '테티스'는 아들을 불사신(不死身)으로 만들기 위해 그를 '스틱스' 강물에 담근다. 그러나 '테티스'가 쥐고 있던 발뒤꿈치는 물에 젖지 않아 그 부위는 아킬레스 급소(急所)가 돼 버린다.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아킬레스는 결국 적장인 파리스 화살에 급소를 맞아 죽고 만다. 바로 여기서 '치명적인 약점'을 일컫는 '아킬레스 건(Achilles 腱)'이라는 말이 유래됐다.

유래 없는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속에서 우리 사회 곳곳에서 고질적인 ‘아킬레스건’이 드러나고 있다. 그 중에서 수차례 지적에도 개선되지 않는 사회 문제가 있다. 바로 아동학대다. 2020년은 유독 아동 학대 사건이 많았다.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증가하며 자연스레 아동폭력, 가정폭력의 비중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창녕 아동학대, 라면 형제 화재사건은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무엇보다 양부모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숨진 '정인이' 사건에 대한 공분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국회에서는 아동학대를 막기 위한 아동학대범지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통과됐고, 국민은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에 동참하며 추모의 뜻을 함께 하고 있다.

'정인이'가 하늘의 별이 된 것은 3개월 전인 지난해 10월13일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사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 세상 빛조차 제대로 보지도 못했을 조그마한 아이가 견디기에는 너무도 큰 고통을 받았을 거라 생각하니 화가 치민다. 마치 그 고통이 국민적 분노로 전이된 듯하다.

정인이 죽음 이후 부랴부랴 부모의 징계권을 삭제하는 민법 개정안과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의 신고가 접수되면 수사기관이 즉각 수사에 착수하는 법안 등이 현실화됐다. 여당은 아동학대 관련 예산 및 인력확보 등 후속 대책 마련에도 나섰다. 하지만 당시 법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조급하다는 우려가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사람의 생명, 그것도 약자 중 약자인 어린아이 생존을 다루는 문제라면 더더욱 세심하고 차분하게 원인을 찾아야 한다. 현장 전문가들을 통해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꼼꼼히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형식적 법이나 그럴듯한 제도에 가려진 실상을 확인하고 허점을 찾아내야 한다. 가정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공적 개입의 한계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지난 1월 13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정문 앞은 소란스러웠다. '정인이' 입양부모 첫 재판을 방청하러 온 이들, '엄벌 촉구' 시위대, 경찰, 그리고 기자들이 한데 뒤엉켰다. 흐느낌과 안타까움, 탄식과 고성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모여 있지 않은 길가는 70개가 넘는 근조화환이 자리해 정인이 억울함을 대변했다.

정인이 사건은 개인의 악행 문제와는 별도로 학대받는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제2, 제3의 정인이가 나오지 않도록 온 마을, 사회, 국가가 ‘일시적’ 관심이 아닌 ‘지속적’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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