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돈 교수의 치유 인문학] 선한 영향력의 물결효과
[권희돈 교수의 치유 인문학] 선한 영향력의 물결효과
  • 권희돈 교수
  • 승인 2021.02.24 0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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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치유커뮤니티는 해마다 지향해야 할 주제를 바꿔가며 강의를 진행한다. 몇 해 전이었다. 그 해의 주제는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 였다. 대체로 이런 큰 주제 아래 16가지의 소주제를 갖고 16주 강의를 한다. 그러나 어떤 주제든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다보면 이야기가 한없이 길어진다. 이 긴 이야기를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고 비밀을 지키는 게 우리 커뮤니티의 장점이었다. 

그 해 우리 치유커뮤니티에 초로初老에 접어든 한 부인이 찾아왔다. 차림새는 정갈하였으나 얼굴은 납덩어리처럼 무거워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속이야기를 흉허물 없이 털어놓는 것을 보고, 부인도 점점 경계의 벽을 허물었다, 쑥스럽게 말문이 터지기 시작하자 눈물과 함께 가슴 속에 쌓인 이야기가 강물처럼 흘러갔다.

우리 부부는 오랜 세월 한 집에 살면서 떨어져 삽니다. 남편은 사랑채, 나는 안채에 기거합니다. 밥도 따로 잠도 따로 김치도 따로 리모델링도 따로 하며, 둘이 서로 닭쳐다 보듯 살고 있습니다. 자식들은 성장해서 타지로 떠났으나 사철 냉기가 도는 부모 집에 발길을 끊었습니다. 친구, 시댁식구, 친정식구 어느 누구 하나도 우리 집에 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새벽마다 뒷산 절간에서 들리는 종소리는 얼마나 공허한지요.

눈물보다 전염성이 빠른 것은 없다. 부인의 속엣말이 눈물과 함께 쏟아질 때마다 커뮤티의 멤버들도 같이 눈물을 쏟아내며, 붉은 눈시울로 가까이 다가서서 토닥이며 어루만져주었다. 모두가 당신의 말에 100퍼센트 공감한다는 확신이 들었는지, 부인은 부부 사이에 금이 가게 된 사건, 가족의 불행, 사사건건 서로를 탓하는 감정싸움 등에 대해 끊임없이 이어 갔다. 이렇게 속 응어리를 다 쏟아낼수록 그녀의 얼굴이 점차 밝아지기 시작하였다. 

다음 해에는 우리 치유커뮤니티에 남편분과 둘이 참여하였다. 그리고 몇 회차가 지나자 서울 사는 며느리가 참여하였다. 며느리는 회사에 연차를 쓰고 커뮤니티에 온 까닭을 말하였다. 생전 화해하지 않을 것 같은 부모님께서 편안하게 일상생활을 하시는 게 너무 보기 좋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부모님 뵙습니다. 저의 아이들도 할머니 할아버지 뵙는 거 너무 좋아한답니다. 

이어지는 부인의 말에 우리 모두는 또 한 번 놀랐다.

언젠가 리더 선생님께서 탈무드의 한 구절을 툭 던지듯이 소개한 말씀이 생각납니다. ‘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온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다.’ 그 말씀의 파문(波紋)이 저의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 한 사람이 변하니까, 저의 남편이 변하고, 저의 아들 부부가 변하고, 손주손녀가 변하고, 친구들이 놀러오고, 시댁식구와 친정식구들이 때마다 들르십니다.  한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사실은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내가 행복해지니까 남편이 행복해지고, 남편이 행복해지니까 부부가 행복해지고, 부부가 행복해지니까 자식이 행복해지고, 자식이 행복해지니까 손주손녀가 행복해졌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소통이 원활해져 행복의 파문이 멀리 퍼져나가고 있다. 

<행복의 특권>의 저자 손아처의 말을 빌어 보자. 행복한 감정은 무의식적으로 전염된다. 행복한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혼자서 영화를 볼 때보다 극장에서 함께 볼 때 더 많이 웃는다. 거꾸로 내가 행복하면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진다.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지구 반대편에 거대한 폭풍을 몰고 온다. 우리 개인들은 모두 나비와 같은 존재들이다. 한 사람의 날갯짓이 가정과 공동체 전반에 행복의 물결을 퍼뜨릴 수 있다.중요한 사실은 주변을 변화시킬 나비는 주변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대’ 자신이라는 점이다. ‘그대’ 자신이 먼저 변해야 주변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대가 먼저 변할 수 있다면, 그대는 주변사람으로부터 사랑받게 될 것이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게 될 것이며, 그대의 신神으로부터도 사랑받게 될 것이다.(時雨)

 


권희돈 교수는 청주대 명예교수, 문학테라피스트. 대학에서 은퇴하기 전에는 교사로 교수로 초등학생·중학생·고등학생·대학생을 차례로 가르쳐 왔다. 대학에서 은퇴한 후에는 문학테라피스트로 마음이 아픈 이들과 인문학을 통해서 치유하고 소통한다. 이들이 상처를 훌훌 털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낼 때마다, 보람찬 노년을 보내고 있다는 긍지를 갖는다고 한다. 이에 관한 그의 저술 『사람을 배우다』는 장안의 화제작으로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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