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돈 교수의 치유 인문학] 공작새 공감 대화법
[권희돈 교수의 치유 인문학] 공작새 공감 대화법
  • 권희돈 교수
  • 승인 2021.03.29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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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능력을 갖고 있다. 공작새 공감 대화법은 다른 사람이 내가 모르고 있는 나의 능력을 터치해줌으로써  나를 공작새처럼 빛나게 한다. 나를 지지하고 인정하며 격려하고 칭찬해 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일상이 멈춰진 이후 나에게도 시련이 닥쳐왔다. 시립도서관에서 선생님이 하던 강의를 비대면으로 대체하겠느냐는 요구가 왔을 때, 겁도 없이 선뜻 하겠다고 대답하고선 그때부터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개강일이 다가오자 설레임보다는 두려움이 커졌다. 그러찮아도 이런 저런 이유로 꼰대소릴 듣는 나이인데, 줌(Zoom)을 설치하는 일에서부터 비대면에 맞는 강의내용 짜기 그리고 강의하기까지의 시스템이 아무리 익혀도 낯설기만 하다. 결국 한두 번 도서관에서 비대면 강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안 되겠느냐고 요청하였다. 이내 좋다, 는 대답이 왔다. 

  비대면 강의 첫날이다. 이십대의 젊은 사서선생이 문화교실에 먼저 와서 곧바로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세팅을 다 해 놓았다. 나는 정중하게 미안하다는 인사를 하였다.  내 인삿말에 사서선생이 곧바로 말을 받았다.

  “괜찮아요. 다른 강사님들도 여기 오셔서 많이 강의하고 계세요. 강사님 연세에 강사님처럼 비대면 강의하시는 분은 없어요. 강사님은 젊게 사시는 거예요. 비대면    강의는 젊은 강사님들도 어려워하거든요. 강사님께서 비대면 강의를 하시는 것만으 로도 도전정신과 용기가 대단하신 겁니다. 앞으로도 한 학기 내내 여기 오셔서 강    의를 하세요. 저한테 부담감 갖지 마시고요. 저는 강사님 같은 분을 돕기 위해 필 요한 사서교사이니까요.” 

“말을 참 예쁘게 하시네요.”

그 자리에서는 감동을 받았다는 의사 표시로 이렇게 한 마디 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순간 나한테서는 기쁠 때 분비된다는 엔돌핀보다 4,5천배나 강력한 호르몬인 다이도르핀(암세포도 죽인다는)이 팍팍 솟아났다. 나 자신에 대하여 내가 몰랐던 능력을 사서선생이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이 때 받은 감동의 물결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주눅 들어 있는 꼰대가 아니구나. 나는 아직도 힘들다고 멈춰 서지 않고도 전하는 젊음을 가지고 있구나. 내가 하는 강의 내용은 화려하진 않지만 수강생들에    겐 꼭 필요한 것이구나. 누군가에게 필요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전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운 일이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내 가슴은 공작새의 화려한 문양들로 채워진 듯 충만하였다.

남자 군인 장교와 여 간호장교 부부에게 어느 날 시련이 닥쳐왔다. 아내가 시력이 좋지 않아 병원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그만 의료 사고로 실명하고 말았다. 그 후로도 아내는 다니던 직장에 계속 나갔다. 직장에서의 일은 오랫동안 익숙한 일이어서 잘 해낼 수 있었다. 남편은 언제나 출퇴근 시간에 아내의 직장까지 함께 하였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아내가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버스를 타고 직장을 오고 가는 과정을 잘 설명하였다. 남편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버스정류장까지 나와 손을 흔들며 아내를 보내고 맞이하였다. 그러기를 얼마쯤 지났을 때 버스 운전기사가 실명한 부인에게 말을 건넸다.
 
“부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십니다.” 

부인은 이 소릴 듣고 자기 같이 눈먼 사람이 뭐 행복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운전기사가 다시 말을 받았다. 제가 한평생 버스를 몰고 다녔지만 이렇게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남편이 정류장까지 나와서 손을 흔들어주는 부부는 처음 봤습니다. 부인은 그때서야 남편이 매일 자기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음을 알고 자신이 행복한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다. 운전기사의 이 한 마디는 부인에게 불행을 행복으로 바꾼 반전의 언어였던 셈이다.

눈이 멀었다는 사실은 분명 장애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눈을 뜨고 있다고 해서 자기 안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때 누군가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장점을 발견하여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람은 남의 장점보다 단점을 먼저 보는 속성이 있으니까. 

자신 안에 꽃이 피어 있어야 타인의 꽃을 발견하여 말해주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보면 사서선생이나 버스운전기사는 자신들의 내면에 꽃을 활짝 피워낸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時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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