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돈 교수의 치유 인문학] 때(Timing)
[권희돈 교수의 치유 인문학] 때(Timing)
  • 권희돈 교수
  • 승인 2021.04.2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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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 낙화, 부분) 

이별 뒤의 아픔을 통해서 성숙해지는 과정을 꽃이 떨어지는 순간에 빗대어 읊은 시이다. 표면적으로는 아픔 뒤의 성숙을 주제로 삼고 있지만, 한 번 더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이 시의 진정한 주제는 ‘때’이다. 매사에 때가 있어 무슨 일이든 ‘제때’에 해야 아름답다는 뜻이겠다. 

백석(白石) 시인이 사랑하던 자야(子夜) 여사는 고급 요정을 팔아서 절을 짓기로 하였다. 그 일 일체를 법정 스님께 맡겼다. 기자가 물었다. 그 많은 돈을 모두 절 짓는데 쓰다니 아깝지 않습니까. 자야 여사가 답하였다. “내가 번 돈 모두 합해도 백석의 시 (詩)한 줄만 못해요.” 법정스님은 절을 다 짓자 곧바로 그 절을 떠났다. 그 절이 서울 성북동에 있는 길상사(吉祥寺)이다.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섭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백석, 여승, 부분) 

백석 시인과 자야 여사의 사랑도 아름답고, 자야 여사 가 번 돈의 합계보다도 가치 있다는 한 줄 백석의 시도 아름답다. 어렵게 번 돈을 절 짓는데 다 쓰고 떠나는 자야 여사의 뒷모습도 아름답거니와, 절을 짓자마자 절을 떠나는 법정 스님의 뒷모습도 아름답다. 한량없는 물욕으로 허구한 날 지구촌 곳곳이 전쟁터로 변해가는 이 시대에, 떠나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떠난 두 분의 삶이 참으로 경외스럽다. 


인생은 백 년을 살기 어려운데, 사람은 천 년의 근심을 끌어안고 산다. 근심은 집착이고, 집착의 뿌리는 욕심이다. 그 뿌리를 끊어내지 못하는 한 새로운 삶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잘 사는 것(Well-Being)도 잘 죽는 것(Well-Dying)도 잘 내려놓음(Well-Down)에서 비롯된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화엄경>), 나무가 꽃을 버리고 강물이 강을 버리는 일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버려야 하는 ‘때’이다. 모든 일은 다 때가 있다. 내려놓고 비워내는 것도 때가 맞아야 한다. 때가 맞지 않으면 작은 일이라도 낭패를 보게 된다. 

한 스님이 제자 스님을 데리고 만행(萬行)을 떠났다. 한참을 가다가 개울을 만났다. 거기에는 이미 한 아낙이 와서 개울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서 있었다. 스승 스님이 아낙을 덥석 등에 업고 개울을 건넜다. 개울을 건너자 곧바로 내려놓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걸었다. 둘이 한참을 걷는데 제자 스님이 따지듯 물었다. 

 

“스승님은 여자를 가까이 하지 말라고 늘 가르치셨잖아요? 그런데 왜 아낙을 업고 개울을 건너신 거예요?” 

스승 스님이 껄껄 웃으며 대답하였다. 

 “너는 아직도 아낙을 내려놓지 못하였느냐? 나는 개울을 건너자마자 곧 내려놓았느니라.”

스승 스님은 아낙을 업어야 할 때와 내려놓을 때를 분별할 줄 알았다. 개울을 건너기 위해서 아낙이 업혀 있을 때는 업혀 있는 게 진리지만, 개울을 다 건넜을 때에는 아낙을 내려놓는 게 진리이다. 그 때를 놓쳐버리면 등에 업힌 아낙은 근심 덩어리로 변하고 말았을 것이다. 집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였을 것이다. 스승 스님이 개울을 건너자마자 아낙을 내려놓은 것은 근심 덩어리를 내려놓은 것이며 집착을 끊어버린 것이다. 

제자 스님은 그런 분별력을 갖지 못한 상태였다. 개울을 건넌 다음에도 여전히 아낙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즉 근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집착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제자 스님의 생각이 바로 과거의 업보로 지은 근심 걱정을 태산같이 쌓아놓고 사는 범인(凡人)들의 초상이다. 스승 스님처럼 ‘지금 여기’를 살지 못하고, 지금 여기에서 과거의 근심 걱정에 얽매어 살고 있는 것이다.

빨래가 마르는 때, 씨앗을 뿌릴 때, 낙엽이 떨어질 때, 어부가 그물을 거두고 돌아오는 저녁,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올 때, 자신이 걸어온 길을 바라볼 때, 죽음의 순간. 이 모든 ‘제때’가 골든타임이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거냐고 묻는다면, 나는 때를 잘 맞추어 사는 게 잘 사는 거라고 주저 없이 대답할 것이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인생이 되지 않을까 싶다.(時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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