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돈 교수의 치유 인문학] 실패한 자식에게 잔치를 베풀어라
[권희돈 교수의 치유 인문학] 실패한 자식에게 잔치를 베풀어라
  • 권희돈 교수
  • 승인 2021.09.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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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돈 교수

노인복지관에서 ‘노년의 행복한 삶’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노인 분들에게 백지 한 장씩 나눠주고 자신의 삶을 곤충이나 동물이나 다른 무엇으로 그려보게 하였다.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는데 다채롭기도 하거니와 여러 감정들이 섞바뀌어 갔다. 
  개미를 그린 노인은 평생 일만 하고 살았다 하고, 돼지를 그린 노인은 평생 먹기만 하였다 하고, 둥그런 원을 그린 분은 자신이 마신 술이 마을 앞 저수지만큼 된다 하여 좌중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캥거루를 그린 노인분이 말은 좀 심각하였다. 자신은 딸 넷에 아들 하나를 두어 애지중지 키웠는데, 그 아들이 대학원까지 나와서 취직도 못하고 집에 와서 두문불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갑자기 분위기가 물밑처럼 가라앉았다.
  탈무드에 ‘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전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준비했던 노트를 덮고 얼굴이 납덩이처럼 무거운 노인분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 나눔을 이어 갔다.
  기대했던 자식의 실패보다 더 참담한 일이 있을까?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일하지 않는 젊은이(니트족)이란 말이 엊그제까지 떠돌았다. 그런데, 요즘은 취직을 하였으나 직장에 적응을 못하여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부쩍 늘어서 늙은 부모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K여사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한밤중 갑자기 대도시의 종합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일하는 딸아이로부터 전화가 왔어요. 너무 힘들어서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는 거예요. 그 순간 여러 가지 생각들이 필름처럼 흘러갔죠. 딸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딸의 마음에 다가갔죠. 그래 네가 정 힘들면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봐. 그랬더니, 딸이 그 다음 날 곧바로 짐을 싸가지고 왔지 뭐예요. 그 후로 딸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어요. 정말 열심히 했어요. 보건소 공무원으로 덜컥 합격했어요. 먼저 직장에서 일이 고돼서 힘들었는데, 보건소 공무원이 되자마자 코로나가 쓰나미처럼 밀려와 더 바빠졌어요. 그런데도 신나게 잘 다니고 있답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자식을 바라본다. 상처받은 자식에게 일장 훈계나 더 버텨보라거나 하나마나한 말들은 상처를 덧나게 할 뿐이다. 이에 비해 K여사는 현명하게 판단하고 결정하였다. 딸의 아픔에 공감하여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K여사가 훌륭한 어머니라는 점이다. 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어머니였기에 딸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탕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먼 곳으로 가서 탕진을 하였다. 농장에 가서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라도 배를 채워보려 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많아서 그 많은 일꾼들이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죽게 되었구나. 어서 아버지께 돌아가 아버지, 제가 하느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으니 저를 품꾼으로라도 써 주십시오, 하고 사정해 보리라.’ 그는 자기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버지는 좋은 옷을 입히고, 제일 좋은 신발을 신겨주고, 금가락지를 끼워주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 (루가15:11-32)
 
 탕자의 아버지는 공감의 대가이다. 아버지의 공감의 태도가 우리를 감동케 한다. 작은아들의 눈으로 보고, 작은아들의 입장에서 이해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한 아들에게 잔치를 베풀 수 있었다. 탕자의 모습으로 돌아온 아들의 과거를 묻지 않았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매를 들지도 않았으며 일장 훈계도 하지 않았다. 다만 아들이 돌아왔다는 사실만을 기쁘게 여겼다. 아들에게 새 옷을 입히고 금가락지를 끼워주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었다. 작은아들에게 가족임을 인정해주고 사랑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로 말미암아 작은아들은 자존감이 온전히 회복되었다.
공감이라는 낱말 속에는 숱한 의미가 담겨 있다. 경청, 소통, 역지사지, 관용, 용서, 화해, 회복, 지혜, 사랑, 내면터치 그리고 상대의 눈으로 보고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 등등이 공감이다.
우리 사회, 우리 가정이 심하게 파괴되고 있다. 치료가 시급한 지경에 이르렀다. 공감은 파탄난 우리 사회, 우리 가정을 치료할 최상의 백신이다. 
 
우리의 가정에서도 실패한 아들에게 잔치를 베풀면 어떨까. 우리의 학교에서도 꼴찌에게 상을 주면 어떨까. 우리의 회사에서도 실적이 가장 나쁜 사원에게 보너스를 준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람마다 각각 가진 것과 못 가진 것이 있듯이, 사람마다 가진 재능이 있고 못 가긴 재능이 있다. 만약에 어느 곳에든지 윗사람이 K여사나 탕자의 아버지처럼 공감적 소통을 한다면 그곳의 구성원들은 자존감이 넘치고 평화롭고 신명나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時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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