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돈 교수의 치유 인문학] 파랑새를 잡아요
[권희돈 교수의 치유 인문학] 파랑새를 잡아요
  • 권희돈 교수
  • 승인 2021.12.28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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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감동 받으면 다이도르핀이라는 호르몬이 나온다고 한다. 이 호르몬은 기쁠 때 분비되는 엔돌핀보다 5천 배의 강력한 호르몬이라서 암세포도 죽인다고 한다. 이런 논리로 보면 작가는 수많은 독자들의 생명을 구한 은인이라 할 수 있다. 

문학은 감동을 먹고 사는 예술행위이다. 그렇기에 문학은 치유의 기능이 강하다. 오늘날 학교의 문학교육에서는 치유의 기능을 소홀히 하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학교에서의 문학이 고사했다고 생각된다. 평생 문학을 가르쳐온 필자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다행히도 은퇴 후에 ‘문학치유’를 주제로 강의하고 강연도 하면서 문학이 치유의 매개임을 수없이 목격하였다. 

내면에 쌓인 열등감을 해소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책을 읽고 책속의 인물을 통해서 풀어내는 방법이 그 하나요, 글쓰기로 풀어내는 방법이 그 둘이다. 그 두 가지 방법은 둘 다 효과가 아주 크다. 열등감을 푸는 방식이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성찰적이기 때문이다.     
                  
키 작은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작은 키 때문에 늘 주눅 들어 지냈다. 소년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초등학교 졸업하고 2년 후에야 중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출석번호는 늘 1번이었다. 나이는 많았지만 키가 작아서 교실에서나 운동장에서나 그의 자리는 맨 앞줄이었다. 어딜 가나 ‘쥐방울만한 놈’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친구들이나 선생들이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는 말이 소년의 가슴엔 대못처럼 박혔다.

소년에게 유일한 위안은 책이었다. 학교 도서실에는 책이 빼곡히 꽂혀 있어 좋았다. 책 속에는 키 작다고 놀리는 사람도 없었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았으며 인류역사를 빛낸 위인들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역사적 위인들을 언제든지 호출하여 대화할 수 있어 좋았다. 소년이 중학교 2학년이던 어느 여름 <백범일지>에서 가슴 뛰는 구절을 발견하였다. ‘얼굴상이 좋은 것은 신체가 좋은 것만 못하고, 신체가 좋은 것은 마음이 좋은 것만 못하다.(相好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 청년 김 구가 이 구절을 읽고 외모열등감에서 벗어났으며, 마음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는 내용이었다. 마음이 좋다는 것은 마음가짐을 올바르게 갖는다는 뜻이었다. 

독자는 자기 소망대로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속성이 있다. 소년은 마음이 좋다, 는 의미를 마음의 키로 받아들였다. 순간, 소년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감동이 일었다. ‘그렇구나, 신체적인 키보다 마음이 큰 사람이 진짜 큰 사람이구나! 큰 마음을 가지려면 큰 사람을 만나야겠구나.’ 그로부터 소년은 키의 열등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키의 열등감을 벗어나자 가난의 열등감으로부터도 자연스럽게 해방되었다. 거친 보리밥, 바닥 뚫린 운동화, 빛바랜 교복, 가난에 피는 버즘 등등 그 어느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백범일지>가 소년의 삶의 방향을 결정해 준 셈이었다. 

책속에 길이 있다, 는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책속에서는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훌륭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훌륭한 사람을 만나면 자아를 보는 눈이 달라지고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책속의 훌륭한 인물들도 책을 통해 열등감을 극복하고 이상적 자아로 성장하였다.
    
이처럼 문학은 치유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 인류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돈을 버는 일이 아닌데도, 문학 강좌에 몰려드는 이들은 대부분 인생 이모작을 꿈꾸는 나이 지긋한 분들이다. 대형서점에는 오늘도 새로 나온 작풒들이 눈송이처럼 쏟아진다. 저 수많은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 감동을 받고 얼마나 많은 감동을 주었는가. 이렇게 보면 이들은 이미 꿈을 이룬 셈이다. 글 쓰는 일로 가장 안전한 노령연금을 들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늘 감동 속에 묻혀 살기 때문이다. 

전대미문의 코로나가 쓰나미처럼 덮쳐,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다. 코로나가 두렵다고 집콕방콕 하면서 우울에 빠지기 보다는, 한 권의 소설을 읽으며 팬데믹으로 날아간 파랑새(일상의 행복을 상징)를 잡아오면 어떨까 싶다.(時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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