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큐레이터 변광섭의 마을이야기⑳] - 옥천 용암사
[로컬 큐레이터 변광섭의 마을이야기⑳] - 옥천 용암사
  • 글=변광섭, 사진=김영창
  • 승인 2021.12.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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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의 기운 가득한 새해 새 아침. 가파른 곡선을 따라 올라갔다. 바람은 차고 햇살은 눈부셨다. 이마에 땀이 흐르는가 싶더니 소나무 숲에서 맑은 향기가 끼쳐왔다. 대웅전의 자태가 나그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릴 틈도 없이 두 개의 석탑이 보였다. 햇살과 그림자가 그곳에서 놀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누가 그랬을까. 궁금증이 발동했다. 대웅전 앞에 있어야 할 3층 석탑이 아니던가. 필시 산천의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전망 좋은 곳에 자리잡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홀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두 개의 석탑이 오붓하게 정담을 나누도록 했을 것이다. 견고하되 간결하다. 강인하되 부드럽다. 소나무 숲을 품으며 드넓은 대지를 바라보고 있어 더욱 기품 있다.

들녘에서 바라본 팔봉마을과 팔봉산용암사 장령산 정상에서 본 새해 일출장면이다.

이곳은 생성과 소멸이 함께하는 곳이다. 아침에는 해 뜨는 모습이 장관이고 저녁에는 해지는 노을이 일품이다. 억겁의 시간 속으로의 여행을 하는 듯하다. 하늘과 산과 들과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억겁의 시간 속으로 한발 다가가니 욕망으로 얼룩졌던 내 마음에 일침을 가한다. 매화는 평생을 춥게 살아도 자신의 향기를 팔지 않고, 오동나무는 천년이 되어도 제 곡조를 간직한다고 했던가. 나의 삶은 어떠한가.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사찰이라고 모두 똑같지 않다. 사찰의 역사와 내력과 가람의 형태와 스님들의 도량에 따라 느낌과 감동이 다르고, 수련과 정진이 다르며, 생명의 기운이 다르니 찾는 사람의 마음도 다를 수밖에 없다.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가사(袈裟)를 봉안한 불보(佛寶)사찰이고, 해인사는 부처님의 말씀인 팔만대장경을 간직하고 있는 법보(法寶)사찰이다. 그리고 송광사는 보조국사(普照國師)이래 열여섯 명의 국사를 배출했기 때문에 승보(僧寶)사찰로 알려져 있는 것처럼 각각의 내밀함이 담겨 있다.

또한 산속 깊이 들어앉아 고고하고 풍광이 수려한 가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에 섞여 번잡하지만 흥미로운 가람도 있다. 사람들은 관광을 위해, 참배를 위해, 비루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마음 따라 입맛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가람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그곳에 있는데 인간들만 부산할 따름이다.

용암사는 옥천IC를 나와 구읍으로 가지 않고 우회전해야 한다. 옥천역 방향으로 가다 역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가면 옥천읍 삼청리 장령산에 자리한 용암사에 닿는다. 신라 진흥왕 13년에 창건됐다는 이 사찰의 매력은 뛰어난 조망이다. 대웅전 앞에만 올라서도 옥천군의 푸르고 맑고 기운찬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처럼 멋진풍경을 바라보며 중생의 안녕을 비는 공간도 있다.

대웅전에서 천불전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마애불이 나그네를 반긴다. 마치 하늘에 떠 있듯 바위에 조각된 마애불과 시선의 방향을 같이하면 옥천의 그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 마애불에는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새겨놓았다는 이야기와 마의태자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새겨놓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느 것이 맞든 마애불은 꽤 오랜 세월, 이곳에서 중생들의 기원을 듣고있는 것이다. 소원명당으로도 손꼽히는 장소다.

대웅전 안쪽에도 문화재가 있다. 조선 효종 2년인 1651년에 경북 문경 오정사에서 만들어 용암사로 옮겨온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다. 대웅전을 나오면 으레 있어야 할 석탑이 보이지 않는 것도 용암사의 특징이다. 이 사찰의 석탑은 오른쪽 능선에 세워졌다. 그것도 석탑 두 개가 나란히 선 쌍 3층석탑(보물 제1338호)이다.

용암사의 백미는 이른 아침 해 뜨는 풍경이다. CNN도 극찬할 정도니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이곳에서 찰나의 미학을 즐긴다. 구름과 태양이 합궁하는 성스러운 장관, 대자연에 쏟아지는 일출의 순간을 영원히 담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은 선하다. 어디 일출뿐이던가. 일몰은 황홀하다 못해 신비롭다. 햇살이 내 어깨를 스쳐간다. 구름과 바람도 짙은 향기를 품고 내 곁으로 다가온다. 나는 이곳에서 낡은 생각을 토해내고 맑은 기운으로 새해를 맞이한다. 마음속에 영원히 지지 않는 햇살을 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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