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테마기행] 충북의 숲과 나무·영동-Ⅰ] 마을 숲에 전해지는 옛 이야기
[장태동의 테마기행] 충북의 숲과 나무·영동-Ⅰ] 마을 숲에 전해지는 옛 이야기
  • 장태동
  • 승인 2021.12.2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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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하면서도 살가운 난곡리 ‘마을숲’
난곡천에 놓인 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간다. 궁궐로 드나드는 다리인 금천교를 건너는 기분이 드는 것은 순전히 마을 앞 커다란 느티나무와 소나무가 어울린 ‘마을숲’ 때문이었다. 
‘마을숲’에서 신성성이 느껴진다. 단군의 신단수처럼 마을마다 ‘마을숲’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마을의 역사는 그렇게 숲에서 시작해서 숲으로 이어졌다. ‘마을숲’은 환경에 따라 방풍림이 되고, 풍수적으로 약한 기운을 도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역할도 했다. 사람들은 ‘마을숲’을 근간으로 계를 만들어 마을을 일구었다. 아이들에게 ‘마을숲’은 놀이터였다. ‘마을숲’은 그렇게 경외의 신성이 아니라 살가움으로 마을 사람들과 함께 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은 ‘마을숲’에 서낭을 두었다. 돌무지로, 오래된 나무로, 때로는 당을 짓기도 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숱한 기원이 침묵으로 깃든 ‘마을숲’은 그래서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위안이기도 했다. 
충북 영동군 황간면 난곡리 마을 앞 ‘마을숲’으로 들어간다. 느티나무와 소나무가 어울린 숲에 단풍나무 붉은 단풍이 아직 남아 있었다. 400년을 훌쩍 넘긴 느티나무와 바로 옆 커다란 돌무지가 새끼줄로 엮였다. 서낭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을숲’은 많이 작아졌다. 옛날에는 느티나무, 소나무는 물론 참나무와 아카시나무도 울창했다. 
‘마을숲’은 마을 사람들의 쉼터이자 모임의 장소이기도 했다. 예로부터 황간 일대 청년들이 힘자랑을 했던 들독(돌)이 ‘마을숲’에 남아 있다. 커다란 계란 모양의 돌을 들어 힘자랑 내기를 했었다고 한다. 돌 크기가 예전 보다 많이 작아졌지만 아직도 둥근 모양은 유지하고 있다.

서송원리 느티나무 마을 숲
난곡리에는 난곡(도라니·토라니)과 소난곡(주막거리·오도티)이 있다. 난곡의 고려시대 이름은 ‘토한’이었다. 마을에서 큰 인물이 날 때 땅(흙)이 땀을 흘렸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토한’이 일제강점기 때 ‘토라니·도라니’로 변했다고 전한다. 
‘마을숲’에서 마을로 들어가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산골짜기의 옛 지명은 ‘달밝골’이다. 마을 동쪽 산 위로 달이 떠오르면 달밝골이 훤했다. 난곡리는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과 경계를 나누고 있다. 마을 서쪽 산 너머에 신작로가 나기 전에는 모동 사람들이 난곡리 ‘마을숲’을 지나 대처로 나갔다고 한다. 
영동군에는 난곡리 ‘마을숲’ 말고도 ‘마을숲’이 꽤 남아 있다. 그중 한 곳이 황간면 서송원리다. 커다란 느티나무 여러 그루가 ‘마을숲’을 이루었다. 큰길에서 마을로 진입하는 도로로 접어들어 조금 가다보면 길 오른쪽에 있다. 수령이 250년이 넘은 나무들도 있다. 다섯 그루는 보호수로 지정됐다. 매년 봄 다섯 그루의 나무에 새 잎이 동시에 피면 그해에 풍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간신히 남아 있는 잎들이 고목의 겨우살이를 걱정하는 듯하다. 앙상한 가지 드러난 모습이 을씨년스럽다. 자연의 순리라지만 보는 사람들 마음은 그렇지 않으니, 사람의 마음이 초겨울 ‘마을숲’에 남는다.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
예로부터 사람들은 느티나무를 괴목이라 부르며 나무의 으뜸으로 쳤다. 마을 입구에 심어 마을의 경계를 이루기도 하고, 마을로 드나드는 사람들의 쉼터를 만들었다.  
용산면 법화리 160년 정도 된 느티나무도 그 중 하나다. 도로에서 마을길로 접어들어 300m 정도 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길이 갈라지는 가운데 느티나무 고목이 있다. 고목 주변에 의자가 놓였고 나무 옆에 정자도 있어 마을 사람들은 물론, 지나가는 나그네들도 팍팍한 다리를 쉬어가게 했다. 지금의 느티나무 이전에는 수백 년 된 고목이 있었는데, 죽는 바람에 지금의 나무를 심었다.
황간면 우천리에는 500년을 훌쩍 넘긴 느티나무가 살고 있다. 우천(牛川)리를 풀어 쓰면 ‘쇠내 마을’이다. 예로부터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마을을 수호하는 고목 두 그루와 선돌 세 개가 있는데, 그 다섯 개의 징표들을 선으로 연결한 안쪽 지형이 소가 누운 형국이라고 해서 ‘쇠내 마을’이 됐다. 옛 이야기에 나오는 고목 두 그루 중 한 그루가 지금 남아 있는 500년 넘게 살고 있는 느티나무는 아닐까? 논밭 펼쳐진 개울가 길 옆 느티나무 고목이 정겹게 생겼다. 넓게 퍼뜨린 가지 아래 정자를 지었다. 나무 그늘은 넓어 마을길도 덮었다. 논밭일 힘들 때, 땡볕에 지칠 때 사람들을 다 쉬게 하니, 그 나무 생김새대로 참 정이 많다.   
 글·사진 장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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