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작가의 여행에세이 - 아들아, 지금 가자] 유레카
[한옥자 작가의 여행에세이 - 아들아, 지금 가자] 유레카
  • 한옥자 작가
  • 승인 2021.12.2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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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 아들과 한때 젊었던 엄마의 배낭여행 이야기

통일궁 인근의 반 호아 공원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인도를 기웃거리는 피둥피둥하게 살찐 시궁쥐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시내가 떠나가라고 비명을 지르고 나서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나의 호들갑에 놀란 쥐는 풀숲으로 냅다 사라졌다. 
 쥐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사람보다 더 클까. 이방인인 주제에 공원에 터를 잡고 사는 쥐를 쫓다니. 쥐의 입장으로 보면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 한다고 억울할 판이었다. 쥐도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하는 절박한 사명이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나와 정면으로 마주쳐 도망을 쳐야 했으니 운도 사납지. 
 하늘이 노랬다. 서로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이였다. 몸을 추슬러 보자고 산책 나왔다가 쥐를 만나는 바람에 엎치고 덮쳐 반실신상태가 되었다. 아들도 놀라 얼굴이 하얬다. 앞서가다가 어미의 비명을 들었으니 변고가 생긴 줄 알고 얼마나 놀랐을까? 그래도 그렇지. 얼마나 놀랐냐는 걱정은커녕 벌컥 화를 내다니. 어릴 때야 제가 어리광이나 심술을 부렸지만, 성인이 되었으면 아무리 놀랐더라도 이 상황은 어미인 나를 다독여주어야 마땅하지. 어미가 쥐나 바퀴벌레를 얼마나 무서워하는지 모르다니. 
 자식과 떠난 여행이라 어느 곳을 가도, 어떤 상황도 마른 솜이 물을 흡수하듯 수용했다. 이곳에 내가 왜 있는가, 자문이 들 때마다, 순간적으로 마음에 반란이 일 때마다, 가던 여행길을 멈추고 돌아서고 싶을 때마다 자식은 신념이 되었다. 그러나 생전 처음 자식한테 면박을 당해 보니 마음이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공원으로 들어가 젖은 벤치에 털썩 앉았다. 아들은 마른자리를 권하고 수풀 우거진 배경이 좋다며 사진을 찍어 주겠다는 둥 내 비위를 맞추었다. 사진 속 여자는 초라했다. 눈은 십 리쯤 들어갔고 광대뼈는 더욱 불거져 볼꼴이 사나웠다. 불쑥 화를 내놓고 내 눈치만 보고 있는 아들 때문에 못 이기는 척 자세를 취했으나 애써 웃어봐야 사진 속 그녀는 울상이었다.
 공원에서 돌아오자 아들은 욕조에 온수를 받았다. 온수는 냉수보다 더 흙물이었다. 섭씨 38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더구나 너무 놀란 나머지 남은 기운마저 소진됐는데 뿌연 물에 온욕을 하라니 못마땅했다. 어렸을 적에 일 년에 한두 번 명절 전이면 엄마 손에 이끌려 목욕탕에 갔는데 아주 싫었다. 강제로 열탕에 들어가야 했고 홀랑 벗은 몸을 남에게 보이기도 창피했다. 너무 뜨거워 몸을 비틀며 고통을 참고 있을 때 곁에서 시원하다고 하는 어른들의 말도 믿을 수 없었고 목욕을 마치고 나와서도 한동안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려 온욕을 꺼렸다.

 수면이 파르르 떨렸다. 물은 버틸 만큼 버티다가 경계를 넘어섰다. 그때서야 욕조 안으로 들어갔는데 물과 사람이 섞이자 고요는 깨졌다. 뽀얗게 피어오르던 수증기의 질서도 흐트러졌다. 따듯한 물속에서도 추웠다. 이와 이가 딱딱 부딪쳐 혀를 깨물 것만 같았다. 온수 밸브를 계속 열어놔도 오한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물은 하염없이 넘쳤다. 그러길 십여 분이 지났을까, 제어되지 않던 이의 부딪침이 멈추었다. 덜덜 떠느라 쥐였던 힘도 풀리고 이마에서는 땀이 나기 시작했다. 
 몸 안에 쌓여있던 냉기가 빠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차가운 것만 밝히다가 더위를 먹어 냉방병에 걸렸으니 이열치열의 섭리를 무시한 죄였다. 목욕탕에서 부력의 원리를 발견하고 ‘유레카!’라고 소리쳤다던 아르키메데스를 떠올렸다. 그는 넘친 물의 부피가 물속에 잠긴 물체의 부피임을 알아냈지만, 아들은 더위 먹은 몸을 온욕으로 일으키는 유레카를 알고 있었다.
 이마의 땀은 눈썹 위에 고였다가 눈으로 흘러들었다. 눈이 따가워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았다. 텅 빈 듯 고요했다. 형체도 없는 더위를 먹고 차가움만 찾다가 맥없이 밀린 나, 몸 안에 퍼부은 냉기의 반란이 온수로 평정되자 노곤함이 밀려왔다.
 “똑·똑·똑…”
 천장에 고인 수증기가 물이 되어 얼굴로 떨어졌다. 
 “사·사·삭…” 
 소리가 들렸다. 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느낌의 소리였다. 수증기로 가득 찬 욕실 천장에 뭔가 움직였다. 손가락 한 마디쯤 움직이다가 한 뼘쯤으로 멀어졌다. 한 뼘은 두 뼘이 되고 조금만 더 가면 환풍구 입구였다. 
방비엥의 쏭강 근처 음식점에서 처음으로 도마뱀을 봤다. 한두 마리가 아니고 벽과 천장, 심지어 바닥까지 떼로 몰려다녔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도 도마뱀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곳은 강가라 사람과 도마뱀의 공존이 일상화되고 도마뱀의 입장으로 보면 사람이 이방인이었다. 

 

루앙프라방의 강가 숙소에 들어섰을 때 또 도마뱀을 보았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빈방의 고요를 즐기던 도마뱀은 벽에서 천장 모서리로 살빛의 몸을 숨기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세 번째 본 도마뱀도 얼룩처럼 착 붙어 죽은 체하고 있다. 여차하면 사라질 기세라, 졸지에 침입자 신세가 되어 물소리는 물론이고 숨도 가만가만 쉬고 있다.
호치민에는 사이공 강이 흐른다. 강은 도마뱀의 서식지이고 강과 우리가 묵는 숙소는 제법 먼데 도마뱀은 징그러운 존재로 푸대접을 받으며 사람 세계를 기웃거렸다. 타관바치는 발도 붙이기 어려운 인간 세상에 무슨 만행을 당하려고 왔을까? 그러기로 말하면 우리는 더위에 지치며, 낯선 문화를 견디며, 왜 이곳까지 왔을까. 아들과 나는 타국의 문화 협곡에서 길을 찾고 있다. 태국과 라오스, 그리고 베트남의 북부에서 중부를 거쳐 남부까지 떠돌아 온 나그네이며 도마뱀과 우리는 한 끗 차이도 없다.
여권과 지갑을 몸에 품고 다녔다. 노트북과 핸드폰도 꼭꼭 숨겼다. 타인의 친절을 흑심으로 치부했다. 불신과 긴장, 압박감을 견디느라 날이 갈수록 컨디션이 떨어졌다. 배낭 살림을 풀고 싸며 떠돌아다니다 보면 도중하차할까 봐 두렵다던 아들의 말은 생생한 경험에 의한 말이었다. 
한기와 열기의 교집합 속에서 빠져나왔다. 반신욕은 더위 먹은 몸을 일으켰고 그 밤이 지나고 나서 거뜬하게 길 위에 섰다. 빙빙 돌던 하늘이 머리 위에 안착했고 발을 디딘 땅도 단단했다.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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