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돈 교수의 치유 인문학] 따로 또 같이
[권희돈 교수의 치유 인문학] 따로 또 같이
  • 권희돈 교수
  • 승인 2022.01.25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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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대웅전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배흘림기둥과도 같다. 각각의 배흘림기둥은 튼튼해야 할 뿐 아니라, 그 거리를 적당히 유지해야 지붕을 너끈히 떠받친다. 그 적당한 거리유지란 늘 떨어져 지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따로’ 어떤 때는 ‘같이’ 지내야 함을 뜻한다.  
  부부란 스킨십이 멀어지면 관계가 멀어진다. 마음이 멀어지면 몸도 멀어진다. 각방을 쓰다가 결국 한 집에 있어도 늘 떨어져 산다. 그러다가 어느 한쪽이 심한 트랜스(무기력)에 빠져 자리보존하고 눕는다. 
  이때라도 늦지 않다. 그래도 건강한 사람 쪽에서 가까이 다가가 부드럽고 따뜻한 스킨십을 하면 회복탄력성이 몰라보게 달라진다. 
  
  맞벌이부부가 은퇴해서 경험했던 이야기이다.
  
  아내는 드라마를 좋아했다네. 허구한 날 화면 속의 이야기에만 빠져 있었지. 나한테는 말을 걸지도 않고, 내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어. 
밖에서 들어와 그 모습을 볼 때면 텔레비전을 부수고 싶더라고. 몇 년 동안 그렇게 서로 마음속에 분노를 키우면서 산 것 같아.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아내는 거실에 누워서 드라마를 보고 있고, 나는 소파에 앉아서 드라마와 아내를 번갈아 바라보았어. 주말드라마라 그런지 전개과정이 꽤 길더라고. 한참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운명처럼 어떤 속삭임이 들리는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그 속삭임의 주인공은 익명匿名으로 떠돌던 신神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이 바보야, 자존심을 내려놓아.”

  어차피 같이 살 거라면 자존심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놓으라는 말인 것 같더라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아내에게로 다가갔지.
  
  “여보, 내가 마사지 좀 해 줄까?”

  아내는 심드렁한 표정을 짓더니, ‘됐어’ 하고는 다시 화면만 응시하고 있었어. 나는 아주 큰 결심을 굽히지 않는 사람처럼 아내의 팔을 주무르기 시작했어. ‘저리 비켜’ 하고 소리칠 줄 알았는데 말이 없었어. 그러니까 용기가 생기데. 손에서 발로, 발에서 어깨로, 족히 두어 시간은 주물렀던 것 같아. 참 희한하게도 처음엔 서먹서먹하더니 점차 마음이 가라앉았어.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똑같이 해봤지. 며칠이 지나니까 똑바로 누우라면 똑바로 눕고 엎드려 누우라면 엎드려 눕더라고. 그런 날이 반복될수록 귀가하는 나의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집 가까이 올수록 가빴던 호흡도 가벼워졌어.
  
  어떤 때는 미운 생각에 힘을 주어서 아프게 누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속생각과는 반대로 말을 걸었어. ‘여긴 어때? 좀 시원하지?’ 아내는 긍정도 부정도 하진 않았지만 표정은 훨씬 부드러워졌어. 열흘 정도 지났을까. 아내의 몸을 여기저기 만져보고 있는데 근육은 하나도 없고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고 느껴진 거야. 내가 울고 있었나봐. 눈물은 감염 속도가 빠르더라고. 아내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어.
 
  그날 이후로 뻣뻣했던 아내가 부드러워지기 시작했어. 내 가슴에 켜켜이 쌓인 미움도 사라졌어. 마치 전등 스위치를 올리자 새까만 어둠이 일거에 물러가는 것 같았어. 한 달 정도 지나니까 아내의 몸 구석구석을 알게 됐지. 덜 아프고 더 아픈 곳만 있을 뿐이지 안 아픈 곳이 없는 게 아내의 몸이었다네. 그 사실을 받아들이니까 내가 아픈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어. 그래서 마사지 그 자체를 즐기게 되었지. 마사지하면서 농담도 하고 결혼 전의 낭만과 아이 낳고 기를 때의 행복감 등을 주고받게 되었어. 아내는 며칠 하다 그만두겠지 하고 생각했나봐. 
 
  “나이 육십이 넘어서야 철드네.”
 
  “그렇지? 내가 원래 대기만성형大器晩成形이잖아.”

  아내의 두 입술 사이에서 ‘피’하고 아주 묘한 감탄사가 튀어나왔어. 나는 그 짧은 감탄사에서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읽었지. 그리고 나와 아내가 원래의 부부의 관계로 되돌아왔다는 느낌을 받았지.

  이 부부는 정말로 현명하게 위기를 극복하였다. 사랑하고 화해하고 용서하는 부부로 거듭났다. 따뜻한 손길로 부드럽게 다가서는 마사지로 어려움을 이겨냈다. 그 마사지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었으며, 그 마사지로 기울었던 배흘림기둥을 다시 세워 가정을 튼튼하게 일으켜 세웠다. 이름도 성도 모르지만 다시 ‘같이’의 길을 걷게 된 멋진 부부의 앞날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時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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