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죽음
계속되는 죽음
  • 박상철
  • 승인 2022.02.1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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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800~900명 산재 사망자가 발생한다. 4년 안에 이 숫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정부 목표가 무색하게 우리나라는 아직도 산재사망률 상위권을 달린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전체 산업 노동자 10만 명 당 사고 사망자 수는 3.61로 OECD 평균(2.43)보다 훨씬 높다. 국가별로는 캐나다, 터키, 칠레, 룩셈부르크에 이어 다섯 번째다. 지난해에도 828명이 산재로 사망했다.

그동안 숱한 논쟁과 토론의 중심에 있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이 지난 1월 27일 시행됐다. 중대재해법 골자는 사업장 현장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형,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형을 선고하도록 했다. 또 양벌 규정에 따라 법인에도 사망사고 시 5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상이나 질병 사고 시 10억원 이하 벌금을 각각 부과하도록 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20일 만에 노동자 16명이 사망했고 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매일 한 명 꼴로 노동자가 죽거나 다친 셈이다. 이 중 현재 4건(2월 15일 기준)의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한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고용부가 중대재해법 수사에 착수한 사고는 양주시 채석장 붕괴사고(삼표산업), 성남시 판교 신축공사 추락사고(요진건설산업), 여수산단 폭발사고(여천NCC), 한솔페이퍼텍 트럭 전도사고 등 4건이다. 나머지 사고는 대부분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해 수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4년 1월까지 법 적용을 유예받기 때문에 현재는 수사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고용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사고 대부분은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50인 미만 사업장 사망사고 비율은 전체 78.6%였고, 공사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 비율은 71.5%였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811곳 중 621곳이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야말로 반쪽짜리 법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진 배경은 일명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이 이루어졌지만 산업재해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38명이 사망한 2020년 4월 이천 물류센터 공사장 화재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여론이 확산된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특히 최근 발생한 광주 아파트 사고는 처벌법 시행 당위성을 더욱 확고히 하게 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선 모호한 법 규정이 보완돼야 한다. 현재 법에서 명시한 경영책임자 개념과 범위가 불명확하고, 재해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올바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보완 입법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모호한 규정을 명확히 하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는 경영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한 법이 아닌, 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법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근로자들의 완전한 안전을 담보할 수 없고, 아직까지 현장에서 바뀌어야 할 것들은 산적하다. 그러나 완벽한 답안보다 중요한 건 답안을 풀기 위한 의지와 과정이다. 기업과 노동자 각각 입장을 아우른 보완입법을 통해 헛된 죽음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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