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민 음악칼럼니스트] 늦깎이 작곡가의 위대한 첫 걸음
[이영민 음악칼럼니스트] 늦깎이 작곡가의 위대한 첫 걸음
  • 이영민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05.3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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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교향곡 제1번 다장조 op.21
1800년 경의 베토벤
1800년 경의 베토벤

서양고전음악을 뜻하는 영단어 Classical music의 좁은 의미로 사용되는 고전악파(Classical period)라는 단어는 빈 고전파라 불리는 제1차 비엔나 악파(First Viennese School)의 작곡가들인 하이든,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 3인만을 위한 차별화된 수식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 세 작곡가가 후대에 남기고 간 유산은 실로 광범위하고 고전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처럼 교과서적인 모범사례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빈 고전파 3인의 마지막 작곡가로 우뚝 선 베토벤은 불굴의 투지와 천재성을 더한 근면함으로 두 선배의 음악적 유산인 소나타형식에 의한 고전적 양식을 완성시켰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시대인 낭만주의 음악을 태동시켰다. 그 역사적인 창작물들의 중심에는 그가 남긴 아홉 곡의 교향곡이 자리잡고 있다. 하이든이 100곡 이상의 작품으로 교향곡의 틀을 확립했고 모차르트는 하이든의 생의 중반에 혜성처럼 나타났다 사라질 때까지  41곡의 교향곡을 그만의 재기발랄함과 창의성에 근거해 주옥같은 멜로디로 만들어내었다. 이들의 업적을 발판삼아 베토벤은 그의 일생의 작업을 통해 교향곡을 19세기 가장 중요한 기악장르로 등극시켰다. 

21세의 청년 베토벤은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792년 그의 고향 본을 떠나 빈에 입성한다. 이미 훌륭한 피아니스트였고 모차르트를 이어갈 차세대 작곡가로 주목받는 베토벤이었지만 그는 바로 작품출판을 시작하지 않았다.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는 한편 하이든과 요한 알브레히츠베르거,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수업을 받으며 연구에 매진했고 1795년부터 작품번호 1의 트리오부터 시작해 소나타작품을 세상에 내보이며 작곡가로서의 첫 발을 내딛기 시작한다. 

 이 시기부터 이미 로브코비츠 공작을 비롯해 몇몇의 귀족들이 베토벤의 재능을 알아보고 금전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한다. 19세기를 통틀어 기악음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현악사중주와 교향곡 장르의 작품을 공개할 자신감이 생기게 된 베토벤은 30세가 되는 1800년, 드디어 습작기를 마치고 Op.18의 현악사중주 여섯 곡과 첫 번째 교향곡을 발표함으로써 빈의 음악계에 당당한 주역으로 자리매김하며 18세기에 작별을 고하게 된다. 

 사실 모차르트가 35세 슈베르트가 31세로 단명했으니 그들에게는 30세가 만년이라고 불릴 나이이지만 모차르트가 이미 38번 교향곡을 포함해 500곡 이상을 세상에 내놓았을 나이에 첫 교향곡을 만들었던 셈이므로 30세에 발표된 베토벤의 첫 교향곡은 모차르트나 슈베르트에 비하면 늦어도 너무 늦은 시작임이 분명했다. 이는 베토벤이 게으르거나 천재성의 부족함이 아니고 완벽한 작품을 위한 신중함 때문이었다. 그가 20대 까지 남겨놓은 교향곡을 위한 스케치들이 모두 작품으로 만들어지고 발표되었다면 이미 여러 편의 교향곡을 발표해 냈을 것이다. 

베토벤은 이 첫 교향곡을 통해 교향곡에서 이전시대에 당연히 여겨졌던 3악장의 미뉴에트를 과감히 퇴출시키고 스케르초 양식을 도입한다. 아직 미뉴에트의 제목을 붙여놓기는 했지만 내용적으로는 완전히 스케르초를 완성하고 있다. 이 미뉴에트가 귀족들의 취향에 맞춰 아부하는 음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 악장에 걸쳐 같은 음형이나 리듬을 일관되게 사용해 작품 전체의 통일성을 높인 것도 베토벤만의 차원높은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특징들은 그의 교향곡 5번 ‘운명’에서 완벽하게 발휘되지만 그에 앞선 이 교향곡들이 차근차근 밟아온 수순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렇듯 불가역적인 완성도와 논리적 정합성으로 촘촘히 쌓아올려진 베토벤의 이 아홉 교향곡은 당대 작곡가들에겐 거대한 절망이었고 후대의 음악가에겐 이정표이자 넘어서야 할 봉우리였고 인류에겐 여전히 희망의 메시지로 남아 있다. 늦깎이 작곡가였지만 위대한 명작의 숲을 일궈낸 베토벤의 젊은 시절의 초상인 첫 교향곡을 이달의 감상곡으로 추천해본다.

베토벤의 첫 교향곡이 초연된 빈의 부르크극장
베토벤의 첫 교향곡이 초연된 빈의 부르크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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