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돈 교수의 치유 인문학] 노년의 외로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권희돈 교수의 치유 인문학] 노년의 외로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 권희돈 교수
  • 승인 2022.05.3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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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돈 교수
권희돈 교수

울지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종소리도 외로워 울려 퍼진다(정호승/수선화에게)

가버리고 오지 않는 사랑의 쓸쓸함과 인간이란 존재의 숙명과도 같은 외로움을 대상으로 한 시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도요새도 산도 하느님도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외로움에 지친 모든 이들을 위로하고 있다. 이 시를 읽고 있노라면 물속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움에 홀려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나르시스가 떠오른다. 나르시스는 곧 우리 인간들을 상징한다. 저마다 어떤 바람 때문에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가여운 인간 초상인 것이다.

외로움의 끝은 자살이다. 매년 자살통계수치를 보면 우리나라 자살률이 세계 1위 자리에 올라 있다. 특히 노년층의 자살률은 우리나라가 월등히 앞선다. 우리나라에서도 충청도 지방의 자살률은 언제나 상위 자리에 놓인다. 참다 참다 에이 잉 ~ 하고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속설이라 믿고 싶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꾹꾹 참다 폭발하는 잠재적 분노가 작용하였기 때문이리라.

요즘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의 자살률이 높다고 한다. 부모 모시랴 자식 키우랴 정작 자신의 노후를 준비할 여유가 없었던 터이리라. 이런 이유로 이 세대의 우울증과 자살률이 유독 높다고 한다.
 

얼마 전 충북 영동의 Y할아버지는 자신의 문제를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혼자만 끙끙 앓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시달려왔다고 하는데, ‘외로움을 못 견뎌 떠난다’ 는 단 한 마디만 쪽지에 남기고 떠났다고 한다. 특이한 사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현금은 자식들에게 나눠주지 않고 공공단체에 적당히 나눠줬다고 한다. 
 

사람은 아파서 죽는 게 아니라 외로워서 죽는다고 하는데 꼭 이 할아버지를 두고 하는 말인 듯싶다. 사람은 누구나 주변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도 외롭다고 느낀단다. 할아버지는 스스로 일어설 힘을 잃었으며, 할아버지를 일으켜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가장 큰 외로움을 느낄 때는 가족과의 소통이 단절되었을 때이다. 할아버지가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가족조차 먼 곳에 타인처럼 있었을 뿐이다. 만약 할아버지가 자신과 소통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죽기 전에 이웃에 나눠준 현금으로 병원을 찾았을 것이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A씨는 20대에 직장에 들어가서 50대 초반에 그만 휴직하였다. 대인관계가 힘들어지고 혼자인 듯한 고독감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작은 업무처리를 하는데도 너무 힘이 들었다. 정신과에 찾아갔더니 심한 우울 증세라는 진단이 나왔다. 의사는 약물처방과 함께 친구들과의 소통을 적극적으로 가져보라고 권하였다. 그는 지금까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여 회사에서 인정은 받았지만, 친구들과의 관계는 모두 끊고 지내왔음을 깨닫고 고교동창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하였다. 친구들과 만나면서 먼저 자기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꼭 자기가 먼저 음식을 대접하였다. A씨는 점차 우울 증세가 호전되어 갔다. 친구들이 그를 돕기 시작하였다. 그는 다른 사람으로 변했고 복직하여 아주 큰 실적을 올렸다. 퇴직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는 그를 붙잡아 두었다.

 A씨는 자기를 솔직히 드러내는 것을 소통의 1차 목표로 삼았다. 그 간에 친구들과 관계를 끊고 살았던 것이 얼마나 잘못된 삶이었던가를 고백하였다.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앞으로 친구들과 관계의 끈을 돈독히 하고 싶다고 표현하였다. 문제를 밖으로 드러내야 치유를 이뤄낸 좋은 예라 하겠다.

영국의 통계청에서는 900만 명의 국민이 외로움 병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국민의 외로움을 관리하는 외로움관리청을 신설하였다고 한다. 이로 비춰보면 행복지수가 높은 부탄 같은 국가보다는 소위 부유한 국가사람들이 외로움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듯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단기간 내에 고도성장을 하다 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이 심하여 이런 반갑지 않은 통계지수의 윗자리를 차지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상실은 마음의 아픔을 낳고 마음의 아픔은 우울증을 낳고 우울증은 자살을 낳는다. 자식들도 떠나고 배우자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친구들과도 뜸해지고 건강은 여기저기 무너지고 이렇듯 하나하나 상실해가는 노년의 쓸쓸함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을 아무도 모른다.

매사 슬프고 울적하다든가, 자주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낸다든가, 친구와 가족에게 관심을 잃었다든가, 불면증에 시달린다든가, 식욕이나 성욕이 없고 먹을 때는 폭식을 한다든가 무가치감으로 죽는 게 유일한 길이라고 느낀다든가, 이런 현상은 모두 우울증의 징조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어도 숨기지 않으면 희망이 있다. 그러므로 우울증환자가 제일 먼저 소통해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자신에게 힘을 주는 말로 토닥거리는 행동으로 자신을 위로해 보자.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 사이로 나와 소통하자. 고통은 나눌수록 작아진다. 중증환자는 주변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이런 사람을 발견했을 때는 도움의 손길로 다가가자. (時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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