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큐레이터 변광섭의 마을이야기25] - 청주 안덕벌 문화제조창
[로컬 큐레이터 변광섭의 마을이야기25] - 청주 안덕벌 문화제조창
  • 글=변광섭, 사진=김영창
  • 승인 2022.05.3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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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담배공장, 문화의 불을 켜다
청주국립현대미술관
청주국립현대미술관

청주시 청원구 내덕동 안덕벌에 위치한 문화제조창. 옛 청주연초제조창(담배공장)을 문화로 재생한 곳이다. 청주연초제조창은 1946년에 첫 문을 열었는데 그 당시에는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담배공장이었고, 청주에서는 복대동의 대농방적공장 다음으로 큰 공장이었다.
'덕벌'이란 '다른 지역보다 조금 높은 언덕에 해당하는 들판'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 '안덕벌'은 '안터벌'과 같은 말로서, '덕벌의 안쪽' 또는 '안쪽에 있는 덕벌'의 의미를 갖는다. 바로 옆에 있는 밤고개는 밤나무가 많이 있던 고개였던 것처럼.
충북은 예로부터 담배 주산지로 알려져 있다. 필자의 고향에서도 두 집 건너 하나꼴로 담배 농사를 지었다. 봄에 씨 뿌리고, 여름 내내 수확하면 담배건조장에 넣고 말렸다. 노랗게 익은 담뱃잎을 대청마루에서 선별하고 포장한 뒤 가을에 리어커나 소달구지에 싣고 가져가 팔았다. 농촌에서는 벼농사보다도 더 많은 목돈이 되기 때문에 고되고 힘들어도 이 일을 계속해야 했다.
그 당시에는 기계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손으로 해야 하는 일이 더 많았기 때문에 90,000㎡ 규모의 드넓은 공장에 2천여 명의 노동자가 일을 했다. 담배 한 갑이라도 유출되면 안되기 때문에 높은 담장을 치고 출입구에서는 소지품 검사도 했다. 담배 말기대회(궐련대회)도 열었고, 만약을 대비해 전시훈련도 했다. 공장 안에는 교회, 법당, 목욕탕, 운동장, 강당 등의 시설이 있었다. 청주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깃든 곳이고, “잘살아 보자”는 희망을 갖게 하는 곳이었다.
기계화가 가속화되면서 더이상 도시 한 복판에 거대한 공장이 필요 없어졌다. 전매청, 연초제조창, 담배인삼공사, KT&G로 이어지던 60년의 역사는 1990년대 초에 결국 문을 닫게 되고 10여 년 방치돼 있었다. 이곳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은 2011년 가을이다. 버려지고 방치돼 있는 공장 건물을 활용해 공예비엔날레를 개최했는데 나라 안팎의 높은 관심을 얻었으며, 정부의 도시재생 선도사업으로 선정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을 유치했고, 담배 원료를 보관하던 동부창고도 하나둘 리모델링을 통해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또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도 운영 중이다.
자랑같아 죄송하지만 필자는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연초제조창을 문화공간으로 변모시킨 장본인이며 가씀뛰는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 당시 필자는 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이었는데, 예술의전당에서 개최하던 공예비엔날레가 부끄러웠다. 베니스비엔날레처럼 상설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6개월 이상 개최하고 싶었다. 이왕이면 공예클러스터 기능까지 할 수 있으면 청주가 진정한 공예도시로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러던 중 청주시가 연초제조창을 매입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곳으로 달려가 1층부터 5층까지 샅샅이 흩어보았다. 쾌쾌한 담배 냄새와 비둘기 똥으로 가득했지만 거칠고 야성적인 콘크리트 구조물과 높고 넓은 공간을 보면서 피가 거꾸로 솟았다. 이곳을 문화의 바다로 만들면 세계적인 명소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일 년간의 준비 끝에 공예비엔날레의 문이 열렸다. 세계 40여 개국에서 3천여 점의 아름다운 공예작품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나니 연초제조창이 눈부시게 빛났다. 외국에서 온 전문가들은 공간과 예술작품이 너무 잘 어울린다는 칭찬이 이어졌다.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이 들어섰다. 우리나라 최초의 보는 수장고인 샤울라거형 미술관이다. 또 도시재생 선도사업으로 선정되면서 이 일대를 문화와 쇼핑이 있는 곳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20여 회의 시민 토론회가 있었다. 국내외 건축 전문가들이 모여서 이곳의 가치와 활용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철거냐 활용이냐를 놓고 논쟁이 붙을 때 시민과 전문가들이 보존하자는 의견을 모았기 때문에 오늘의 문화제조창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문화제조창이라고 불리는 이곳에는 시청자미디어센터, 열린도서관, 한국공예관, 쇼핑몰 등의 공간이 배치돼 있다. 바로 옆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이 있고, 광장에서는 시민들이 예술로 쉬고 놀 수 있도록 했다. 담배 원료를 보관하던 동부창고는 공연, 전시, 체험 등 시민들의 다양한 문화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재탄생했다. 불 꺼진 담배공장에 문화의 불이 켜진 것이다. 버려진 공장을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을 아트팩토리라고 부르는데, 청주가 ‘큰 일’을 해낸 것이다.

공예비엔날레 관람모습
공예비엔날레 관람모습

 

문화와 경제는 따로 갈 수 없다. 최고의 경제는 바로 문화경제이기 때문이다. 이 일대는 문화제조창이라는 글로벌 예술공간, 시민예술촌(동부창고), 첨단문화산업단지 등 세 개의 축이 함께 작동하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문화제조창이 주변의 안덕벌도 서서히 문화가 있는 골목길로 변모하고 있다. 
이곳은 더이상 담배는 생산되지 않지만, 문화를 생산하고 예술의 꽃을 피우는 곳이다. 도심에서 즐기는 문화놀이터, 예술여행이다. 그러니 이곳으로 오라. 마음껏 희망하자. 예술여행의 달콤한 하루를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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