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민 음악칼럼니스트] 또 한 명의 모차르트 프란츠 사버 볼프강
[이영민 음악칼럼니스트] 또 한 명의 모차르트 프란츠 사버 볼프강
  • 이영민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07.2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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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년 경의 프란츠 사버 모차르트 초상
1825년 경의 프란츠 사버 모차르트 초상

 

누구나 한번쯤은 재벌2세의 삶을 동경하게 되는 때가 있다. 부모가 성취해놓은 거대한 업적의 후광으로 꽃길만 걸으며 안락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내 앞에 놓여있는 고민들은 사소한 문제 축에도 들지 못할 것이라며 아쉬운 한숨을 내뱉는 그런 순간들이 존재한다. 재벌2세의 경우에도 자신의 유산을 후대에 전해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지만 거장의 아들은 생존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내야 하고 작은 구설에도 큰 위험부담을 감수해야만 한다. 

여기 모차르트를 아버지로 둔 음악가의 삶이 있다. 일반인의 범주를 훌쩍 뛰어넘는 천재적 재능을 가졌고 인품도 좋았지만 모차르트의 아들이라는 양날의 검을 품고 살아가야만 했던 인물이 바로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Franz Xaver Wolfgang Mozart, 1791. 7. 26 ~ 1844. 7. 29)였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표현되었던 것처럼 모차르트는 35세의 짧은 생의 마지막 해인 1791년 여름, 죽은 이를 위한 미사인 레퀴엠의 작곡을 청탁받는다. 이를 받아들인 모차르트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며 작품을 써내려 가는데 프란츠는 바로 이 시점에 태어난 막내 아들로 그와 아버지가 공유한 시간은 불과 5개월이 채 되지 않는다. 유복자와 다름없었던 그였지만 아버지의 중간이름인 볼프강과 더불어 음악적 재능을 아낌없이 물려받았고 어머니 콘스탄체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두각을 나타낸다.

 모차르트와 콘스탄체 사이에는 딸 둘을 포함해 모두 여섯 명의 아이가 태어났지만 유아기 때 넷이 세상을 떠나고 둘째인 칼 토마스와 막내 프란츠 사버 볼프강만이 성인으로 성장했다. 칼 토마스 또한 음악가를 꿈꿨지만 중도에 포기하고 공무원으로 생을 마감한다. 결국 모차르트의 음악적 유산은 막내 프란츠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 외모마저 아버지를 쏙 빼닮았던 프란츠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주니어의 이름으로 작곡활동을 이어나가게 된다. 하지만 이 때문이었을까, 아버지 대의 시대사조에 머물러 새로운 낭만시대양식에 따라가지 못했다는 평에 시달려야만 했던 프란츠였다. 최근에 다시 재조명받으며 그의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고 있긴 하지만 거장의 아들의 삶은 고단했다.

모차르트의 성장한 두 아들 칼과 프란츠
모차르트의 성장한 두 아들 칼과 프란츠

 

불과 5세 때 음악활동을 시작했으며 바이올린과 피아노에 능숙했던 그는 젊은 시절의 베토벤과 마찬가지로 알브레히츠베르거와 하이든, 그리고 살리에리(영화에서처럼 모차르트를 시기해 죽음에 몰아넣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로부터 작곡을 배워나갔다. 아버지가 모차르트인데 베토벤과 동문후배라니! 음악가로서 이보다 더 큰 불운이 또 있을까? 프란츠가 감당해내야 했을 그 중압감은 가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13세에 모차르트의 재래라는 극찬을 받으며 성공적인 연주회를 가진 이후 합창단의 지휘자로, 작곡가로, 또 피아니스트로 유럽을 종횡무진하며 활동할 수 있었던 것에는 신중하고도 겸손한 성품이 크게 작용했다. 모차르트의 아들로서 그의 후광을 등에 업고 명성을 얻기 보다는 꾸준히 제자를 양성해나가고 성실한 음악가로 활동하며 대중들로부터 신뢰를 쌓아갔다.
1820년대에는 출판계의 큰손이었던 안톤 디아벨리가 자신이 만든 왈츠를 주제로 50명의 당대 최고 작곡가들에게 변주곡을 의뢰한 큰 이벤트가 있었다. 베토벤을 비롯해 체르니, 슈베르트 ,그리고 젊디젊은 리스트와 더불어 프란츠도 이 디아벨리 변주곡 프로젝트에 초대받았을 정도로 실력과 인망이 두터웠던 그였지만 아버지와 달리 내성적인 성격과 사람들의 선입견으로 인해 마땅한 평가를 받아내지 못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프란츠는 53세를 일기로 칼스바드에서 위암으로 삶을 마감하게 된다. 재능있는 예술가였고 성공한 연주자의 삶을 살았지만 아버지와의 부담스런 비교에 짓눌려 살았고 사후에는 모차르트의 그늘에 묻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말았던 그의 명작들이 이제는 다시 빛을 받고 있다. 일례로 긴 세월동안 리스트의 젊은 시절 작품으로 알려져 있었던 요제프의 로망스주제에 의한 다섯 개의 변주곡이 지난 1994년 프란츠의 작품으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고 그가 남긴 피아노 협주곡의 연주와 해석이 거듭됨에 따라 슈만과 쇼팽의 바로 윗세대 작곡가로서의 가치를 조금씩 인정받아나가고 있다.
뜨거운 햇살이 가득했던 7월에 탄생하고 타계했던 또 한 명의 모차르트,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유산을 이달의 클래식 감상곡으로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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