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돈 교수의 치유 인문학] 아픈 곳이 중심이다
[권희돈 교수의 치유 인문학] 아픈 곳이 중심이다
  • 세종경제뉴스
  • 승인 2022.09.1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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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돈 교수

산다는 것은 마음에 상처를 쌓는 일이다. 타자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하고, 타자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손톱 밑에 가시도 빼내야 편안해지듯, 마음의 작은 상처도 치유해야 편안해진다. 몸도 마음도 아픈 곳이 중심이다.
  
몸에 생긴 상처를 흉터라 하고, 마음에 생긴 상처는 트라우마라 한다. 트라우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뜻하는 말로 충격적인 사고(상실, 배신, 폭력, 따돌림, 굴욕, 편애, 왕따, 죽음)를 경험한 뒤 겪는 고통을 가리킨다. 마음의 상처(트라우마)도 상처의 원인을 알고 올바로 치유해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기폭제가 된다. 그러나 치유하지 않고 방치하면 만성우울, 불안, 인격 장애를 일으켜 일상생활에 불편을 초래한다. 
   
우리의 의식계는 의식意識과 무의식無意識으로 나뉘어져 있다. 의식이 빙산의 일각(1/4)에 지나지 않는 데 비하여, 무의식은 바닷물에 잠기는 빙산(3/4)과 같다. 현실에서의 충격적인 사고는 억압되어 모두 무의식의 창고에 저장된다. 지하저장고와도 같은 곳에 숨어 있으면서 돌덩어리처럼 굳어간다. 그러다가 틈만 생기면 수면 위로 떠올라 사고 당시의 고통을 재현시킨다. 작은 마음의 상처도 원인을 알아내어 치유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80이 넘은 할머니의 이야기다. 할머니는 가족들을 만나면 어렸을 적에 어머니한테 심하게 맞은 일을 끊임없이 되풀이 한다고 한다. 가족들은 그 할머니를 만나기를 꺼려하게 되면서 가족들로부터 소외를 당하게 되었다. 할머니가 과거의 아픔을 자꾸 되풀이하는 것은 할머니에게 그 사건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자꾸 가족들에게 동조해주기를 기대하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소외시키니까 마음 속 응어리는 더욱 커지고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 그 아픔은 타인에 대한 부정적 감정으로 발전하고 확산된다. 주변인들을 가해자처럼 인식하면서 스스로 만든 갑옷 속에 갇히고 만 것이다.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아이(내면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사랑하는 아가야, 내가 여기 네 곁에 있어, 너의 말을 다 들어 줄게. 내게 너의 고통과 아픔을 내게 말하지 않으련!’ 그리고 그 아이를 어머니처럼 안아 주어야 한다. 그러다가 함께 울어 주어라. 만약 그 할머니 이야기를 타인이 이렇게 따뜻한 감정으로 들어준다면 역시 치유가 일어난다. 
상처는 말로 꺼내내면 가슴이 시원하고 글로 풀어내면 머리가 시원해진다. 글쓰기 치료 방법 중 제일 먼저 권하고 싶은 방법이 자동기술법이다. 띄어쓰기, 맞춤법 등 이성적인 글쓰기규칙을 무시하고 무의식에서 나오는 대로 쓰는 방법인데, 트라우마 치유에 아주 큰 효과를 갖는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분출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끼면 더욱 효과적이다. 하루에 20분 정도씩 연달아 4일 쓰거나, 일주일에 한 번씩 쓸 경우에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의식을 치르듯 쓰면 좋다.

치유의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함께 글쓰기를 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매일매일 혼자서 쓰는 일기도 기록에 의존하지 않고 감정의 해소에 초점을 두어 쓰면 효과적인 치유의 글쓰기가 된다.  

아픔은 분명 고통이다. 그러나 고통은 행복과 관련이 있다. 고통을 다룰 줄 모르면 고통의 바다에 익사한다. 진흙 속에 뿌리를 박고 꽃이 피어나듯이 행복은 고통 속에서 피어난다. 그러므로 고통을 피하지 말고 깊이 들여다보며, 부드럽게 감싸 안아 주자. 그런 마음을 가지는 순간부터 삶은 이전만큼 고통스럽지 않고 행복해진다.(時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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