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민 음악칼럼니스트] 대기만성의 큰 별, 세자르 프랑크
[이영민 음악칼럼니스트] 대기만성의 큰 별, 세자르 프랑크
  • 세종경제뉴스
  • 승인 2022.10.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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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간을 연주하고 있는 프랑크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는 프랑크

지금으로부터 이삼백 년 전의 인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클래식 작곡가들에게 10년의 나이차는 지금의 우리에게 그다지 크게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 세자르 프랑크와 그보다 십여 년 선배 작곡가들인 쇼팽과 슈만, 멘델스존은 음악사에서 전혀 다른 입지를 가지고 있다. 슈만 등의 작곡가들이 낭만음악을 꽃피웠던 인물이라면 프랑크는 이른바 후기낭만주의 작곡가로 분류되고 있다. 이는 프랑크가 남긴 대표작의 대부분이 그의 만년에 쓰여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프랑스로 한정해 보더라도 베를리오즈와 생상스의 중간에 위치한 프랑크의 위상은 독특하다.

 프랑크는 1822년 벨기에의 리에주에서 독일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주된 활동지가 파리였고 프랑스로 귀화했기 때문에 프랑스 작곡가로 분류되지만 독일적인 작풍을 띄는 것은 이러한 태생적 배경 때문일 것이다. 은행가였던 그의 아버지 니콜라-요셉은 베토벤의 아버지에 못지않게 아들의 피아니스트로서의 성공을 꿈꿨다. 아들의 음악적 재능에 쏟아진 아버지의 비뚤어진 욕심과 간섭은 프랑크의 성장기를 힘겹게 했고 결국 파리에서의 유학을 중단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프랑크의 내성적인 성격과 작풍은 이런 학창시절의 고난으로부터 유래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그의 초기작품인 피아노 트리오는 리스트에게 극찬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젊은 시절의 작품들은 혹평에 시달려야만 했다. 당시 프랑스음악의 주류였던 살롱풍의 감성적인 낭만주의 물결에 편승하기엔 그의 작품은 너무 고전적이고 내적 성향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피아니스트와 오르가니스트로서의 프랑크의 입지는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으로 쇼팽과 리스트의 찬사를 받았으며 바흐 이후 최고의 오르간 즉흥연주자로 불렸다. 그는 이 시기를 통해 바흐를 연구하고 바그너를 받아들이며 베토벤을 익혀나가며 독일의 음악적 성과를 프랑스적인 결과물로 녹여내는 작업을 차곡차곡 진행해 나갔다. 

프랑크의 초상

 그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프랑스 전역에서 프랑크를 초청해 오르간 연주회를 열고 새로운 오르간이 설치될 때엔 그에게 자문을 얻는 과정이 필수로 여겨질 정도로 음악계의 주요인사로 떠오른 프랑크는 작곡가로서도 차츰 인정받아 나가게 되었다. 한스 폰 뷜로를 비롯한 독일의 음악가들이 프랑크의 작품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한때 적대적 관계였던 생상스는 그를 파리음악원에 추천해 1873년 교수로 부임하게 된다. 댕디, 쇼송, 뒤파르크 등 걸출한 제자들도 그의 문하에서 길러졌고 제자들은 존경의 의미로 프랑크를 아버지라 부를 정도였다고 하니 그에 대한 후배들의 신망이 얼마나 두터웠는지 알 수 있다.

그의 나이가 60대에 접어드는 1880년 이후 만년의 열정을 작품에 쏟아내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가 작곡가로서의 프랑크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그가 아끼던 제자들과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작품에 대해 토론하고 수정해가며 써내려간 이 만년의 작품들이 바로 프랑크의 진정한 유산들이다. 전주곡, 코랄과 푸가(1884)를 비롯해 바이올린 소나타 가단조(1886), 교향곡 라단조(1888), 현악사중주 라장조(1889)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명곡의 숲이라 일컬을만하다.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헌정받은 이자이

순환주제를 탁월하게 활용해 만들어진 거대한 건축물이라 할 수 있는 그의 교향곡 라단조는 비록 초연에 사람들의 이해를 얻지 못하였지만 교향곡 역사에 중요한 획을 그은 걸작으로 여겨지고 있고, 벨기에의 비르투오소 바이올리니스트인 외젠 이자이에게 결혼 선물로 헌정한 바이올린 소나타 가장조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나타로 자리잡았다. 더불어 만년의 제자들은 스승의 이름을 딴 ‘프랑키스트’라는 그룹을 만들어 프랑스의 근대음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렇게 대작을 쏟아내던 프랑크는 1890년 불의의 마차사고가 원인이 되어 불과 넉 달만에 67세를 일기로 황망히 삶을 마감하게 된다. 대기만성의 큰 산을 일궈내며 대중적인 인정을 이제야 받던 그의 갑작스런 서거에 많은 아쉬움이 남아있지만 그의 작품들 하나하나에 서려있는 내면으로의 깊은 성찰과 우직함은 지금까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12월이면 탄생200주년을 맞이하는 세자르 프랑크의 대표작들을 이달의 감상곡으로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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